[연재-평양24시]北 농촌지원전투에도 빈부격차가 있다

조선에서는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정식 농촌지원전투에 나간다. 처음 나가는 중학생들은 집을 떠나 동무들과 함께 생활하며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들뜨게 된다.

원래 농촌지원전투에 참여하면 식량정지증명서를 가지고 해당 농촌 지역에서서 배급을 받게 돼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농촌지원전투 기간 자기가 먹어야 할 식량을 집에서 마련해서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배급량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배급을 받는다 해도 학생들의 배를 채울 수 없으니 보통 10~15kg의 식량을 더 지고 가서 배급식량에 보태 먹는다.

식량 외에 미역, 인조고기, 말린 무 같은 부식물과 콩기름, 고춧가루, 맛내기, 소금 된장, 간장, 식초 등의 조미료도 자체로 조달해야 한다. 그리고 농장 작업 중 사용할 신발, 모자, 장갑, 비옷 등도 모두 개인이 준비한다.

이외에 부잣집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술, 담배, 현금을 따로 챙겨준다. 농장의 분조장이나 작업반장과 사업을 잘 벌여 힘든 일에서 빠지기 위해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다.

농촌지원전투 준비물 마련부터 빈부격차

이 준비품은 군인을 제외한 중학생, 대학생, 사회근로청년들에게 하나의 공식처럼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이런 농촌지원 준비는 일반 백성의 가정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사랑하는 자식을 타지로 내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이웃에게 돈을 빌려가며 준비물을 마련한다. 때문에 간식은커녕 자기가 먹을 강냉이도 없이 농촌으로 떠나는 학생들이 많다.

간식으로는 사탕, 과자를 최고로 여긴다. 보통 강냉이, 콩, 미숫가루, 강냉이 변성가루(일명 ‘속도전 가루’로 불리며 즉석으로 물에 풀어 먹을 수 있음)가 간식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15살 중학생이나 30살 제대군인 대학생이나 매 한가지다.

준비물을 챙겨서 해당 농촌의 농장관리위원회에 도착하면 각 작업반에서 보낸 뜨락또르나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이동한다. 조선의 농촌은 포장도로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소달구지나 뜨락또르에 실은 짐 속에서 기름병과 술병이 깨지기도 한다.

오전 7시 30분부터 저녁 8시까지 작업

작업반에 도착하면 분조 배정이 있다. 농장의 분조장이 학급을 인계 받아 식당집부터 정해준다. 식당집이란 학생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소를 제공하는 집을 말한다. 학생들은 보통 3~5명씩 나누어 분조내 농장원들의 집에 분산시킨다.

자기 숙소집을 배정 받아 가면 그 집에서 이불을 내준다. 그 집에서 자고 식당집에서 식사하고 분조에서 일하면 되는 것이다.

중학생들은 아침 6시에 기상해서 학급별로 아침달리기를 하고, 세면을 마친 다음, 조기학습을 진행한다. 대체로 이 때 간단히 외국어 자습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리고 아침 식사 후 7시 30분에 하루 작업이 시작된다.

오후 1시에 오전 작업이 끝나고, 오후 2시까지 점심식사시간이다. 오후 2시부터 밤 7~8시까지 오후작업이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참으로 힘겨운 노동이다. 아침이면 눈조차 제대로 떠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모내기나 모뜨기를 하고 나면 허리에 마비가 올 정도이다.

그리고 항상 배가 고프다. 준비해온 간식이 아무리 많아도 남학생들 경우에는 보통 3~4일이면 다 먹어 치운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들보다 아껴먹는 편이지만 마지막 날까지 간식을 조절하는 학생들은 없다. 간식이 떨어지고 나면 아이들은 밤마다 집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 때부터는 집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부잣집의 후방사업에 농촌사람들 충격받아

평양의 중학생 학부모들은 서로 조를 묶어 해당 날짜에 농촌지원전투에 나간 자식들을 찾아가는 ‘후방사업’을 조직한다. 대체로 학부모들이 5~7명씩 40일 동안 4~5번 정도 학급학생들에게 떡, 꽈배기, 국수 등을 만들어 간다. 열성적인 부모들은 자기 차례의 후방사업에도 참여할 뿐 아니라 자체로 준비하여 자식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물론 이런 풍경도 일반중학교와 1중학교 및 외국어학원(외국어 전문 중학교에 해당 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평양의 일반 중학교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일반 노동자들의 자식들이다. 1중학교나 외국어학원은 대부분 당 간부들이나 외화벌이 일꾼들의 자식들이다. 1중학교 학생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후방물자는 일반 중학교 학생들과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필자가 중학교 시절에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니는 한 학생의 부모가 평양시 상원군에 농촌지원전투에 나간 아들에게 상상도 못할 간식을 보내줘 농촌지원전투에 나간 학생들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든 적이 있다.

이 부모는 아들의 학급학생 1인당 훈제 닭 1마리, 1달러짜리 아이스크림 1개, 고급 카스테라 3개를 싸가지고 후방사업에 나갔다. 또한 그 학급 식사소조에 백미 50kg과 오이 10kg을 지원했다.

농장 사람들은 다름이 아닌 오이 10kg에 경악했다. 평양에서는 보통 7~8월이 되어야 오이를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5월 말에 오이 10kg을 자동차에 싣고 온 그 부모의 실력에 대해 모두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잘나가는 부모들은 초여름에 냉동물고기를 서너 상자씩 가져오기도 한다.

평양 학생들과 농장원간 위하감 커져

이렇게 평양에서 잘나가는 부모들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학생들과 해당 농촌 사람들 간에 심각한 위화감이라는 후과가 남는다. 철없는 부잣집 학생들이 외제 옷을 입고 고급 당과류 간식만 먹으면서 농장원들의 식사를 보고 “돼지 뜬물보다 못한 것을 먹는다”며 놀리는 바람에 농장원들이 분노하는 일도 있었다.

또한 농촌을 방문한 부잣집 부모들이 학급 담임이나 작업반장과 ‘사업’을 벌여 ‘식사소조’ 같은 곳으로 자식을 빼돌리거나, 일을 하지 않고도 공수를 벌어들이도록 조치해 학생들 사이에서도 뒷소리가 무성해진다.

해당 농촌에 살고 있던 중학생들은 평양의 중학생들과 달리 옷도 신발도 변변한 것이 없이 통강냉이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농촌지원 전투에 처음 참여해 신발을 신지 않고 돌아다니는 농촌의 내 또래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새까맣게 탄 피부는 기름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거북이 등처럼 갈라터진 손 등에는 허옇게 살갗이 도드라져 있었다. 이들에게 말을 걸어보니 강냉이 밥이라도 실컷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평양의 일반 중학교 학생들의 봄철 농촌지원전투 기간은 3~40일이고, 1중학교와 외국어학원은 2~30일이다. 가을철 농촌지원전투는 봄철에 비해 많이 낫다. 콩밭일을 하면서 생 콩을 먹을 수도 있고, 강냉이 이삭 따기를 하다가 강냉이기를 구워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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