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기-평양24시] 남조선에서 선군정치 토론회요? 참…

▲ 4월 19일 열린 2차 선군정치 토론회 ⓒ데일리NK

한국사람들 사이에서 조선의 선군정치에 대한 토론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조선의 정치에 대해 토론회를 벌일 만큼 조선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도대체 한국 사람들이 선군정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기에 거창한 토론회까지 벌이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한국 사람들이 선군정치에 대해 뭘 안다고 토론회를 벌이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선군정치라는 것이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논쟁할 만큼 특별한 사상이나,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1995년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 방문

조선에서 ‘선군’이라는 말이 정식으로 등장한 때는 1998년이다. 선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다박솔 초소’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에서는 “1995년 1월 1일, 온 나라 인민들이 장군님의 모습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여 앉았고, 설 맞이 공연 무대위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장군님을 뵙기위해 안타까이 기다리고 있을 때 장군님께서는 다박솔 초소를 찾으셨다”고 말한다. 다박솔 초소는 평양시 만경대 구역 교외에 위치한 군 부대다.

당시 해마다 1월 1일이면 신년사 발표와 설맞이 공연 등 국가적 연례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김정일은 온 인민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장에는 나타나지 않고 중대급 규모밖에 안되는 평범한 군대초소를 전격적으로 방문함으로써 ‘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조선의 혁명역사에서는 다박솔 초소에 대한 김정일의 현지지도를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조선노동당출판사에서 발간한 <붉은기를 지켜 준엄한 6년>에 매우 상세히 선군정치에 대해서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1995년부터 6년간을 언급하고 있는데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1994년 7월 수령님을 잃고, 유례없이 악랄해진 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의 경제봉쇄 책동과 고립압살 정책 – 한마디로 나라가 처한 엄혹한 환경속에서 우리가 사회주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인민군대를 강화하고 인민군대를 앞세워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길임을 확신하셨다”고 주장한다.

김정일의 혁명역사를 다룬 시리즈 <불멸의 향도> 중 작가 송상은이 쓴 ‘총대를 들고’에서도 선군의 시작을 1995년 다박솔 초소 방문으로 묘사한다. ‘총대를 들고서’는 조선의 혁명역사 서적 중 선군정치에 대한 묘사가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 받았던 소설이다.

선군정치 = 일당독재+군사독재

어쨌든 김정일이 자주적 인민으로 사는가, 아니면 제국주의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준엄한 갈림길에서 결연히 총대를 높이 들었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부분에서 김정일의 ‘말씀’까지 인용되는데, 대략 다음과 같다.

“내가 선군정치를 결심했을 때 인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들이 이해하고 나를 따르리라 생각하고 선군정치를 결심했습니다. 사탕알이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인민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 선군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선군이라고 하면 군사독재가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선군의 위력이 만방에 과시되고 있으므로 정식으로 ‘선군정치’라고 명하고, 우리 당의 기본 정치방식으로 앞세워야 합니다”

이때부터 온 나라에 군사중시, 총대중시 기풍이 퍼지기 시작했고,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이 선군정치에 관한 문답식 답안을 베껴 외우느라고 소동이 일어났다. 2000년부터 선군정치의 정당성, 우월성이 크게 발휘되고 있다고 강조하며 본격적으로 ‘선군정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평양에서만 발행되는 외국인용 영어신문 에서는 선군정치를 원래 ‘Army-first police’로 번역했었는데, 2002년 후 부터는 ‘Sungun policy’로 바꾸어 번역했다. 조선중앙TV에는 김정일이 현지지도 했던 당시 다박솔 초소의 중대장이 출연하여 선군을 외치기도 했다.

2002년부터 선군정치를 독창적인 사상이론처럼 부풀리고 미화하는 작업들이 이어졌다. 솔직히 선군정치라는 것이 별다른 사상이나 이론에 의해서 뒷받침될 만한 내용이 전혀 없다. 더군다나 군대에 대한 통솔권이 장군님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는 조선의 정치현실에서 ‘군대를 앞세운다’는 것은 ‘장군님께서는 일당독재뿐만 아니라 군사독재까지 병행하신다’는 뜻일 뿐이다. 하지만 조선의 선전일꾼들과 혁명역사 교원들은 ‘장군님의 군사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감추기 위해 경쟁적으로 선군정치에 대해 혁명전통과 사상이론적 근거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1932년 VS 1962년

원래 혁명역사 과목 교원들이 학생들 수업에서 제일 강조하는 것이 ‘선군정치의 시작’이다. 2002년까지 학생들은 혁명역사 시험지에 선군정치의 시작을 ‘1995년 1월 1일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 라고 쓰면 무난히 5점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2년 말부터 시험지의 정답이 바뀌기 시작했다.

혁명역사 교원들은 “원래 수령님께서도 군대를 중요시하셨고, 그 때문에 장군님께도 군대를 체계적으로 넘겨주셨지요? 오늘의 선군정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총대중시, 군사중시 사상을 그대로 계승해서 변화된 현실에 맞게 발전시킨 것입니다”라고 설명하며 김일성 노작을 인용했다. 그러면서 “선군정치의 시작은 수령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신 1932년 4월 25일부터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3년 평양의 각 대학에서 펼쳐진 ‘김정일 혁명역사 학과경연대회’에서는 선군정치의 시작에 대해 ‘1962년 설(說)’이 등장하며 교원들간에 말싸움이 시작됐다.

1962년 2월 5일은 김정일이 ‘일당백’의 고향 대덕산 초소를 방문한 날인데, 이 날이 김정일에 있어서는 인민군대에 대한 첫 현지지도였으므로 이때를 선군정치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결국 ‘1932년 설(說)’을 주장하는 교원이 채점한 시험지에는 1932년이 정답이고, ‘1962년 설(說)’을 주장하는 교원들이 채점한 시험지에서는 1962년이 정답으로 인정되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같은 답을 놓고서 최우등과 낙제생이 갈라지는 희극이 연출된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선군정치와 관련된 모든 노작들, 저서들, 노동신문 사설들, 문답식 학습자료들에서 선군정치의 시작에 대한 부분이 모두 삭제되기 시작했으며 ‘다박솔 초소’도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학생들과 인민들 사이에서 빈번히 진행되는 문답식 학습에서도 선군정치의 본질, 정당성, 위대성에 대해 언급할 뿐 선군정치의 시작에 대한 부분은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1960년 류경수 탱크사단 방문

그러던 중 2006년 8월 25일 갑자기 선군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중대보도로 조선이 시끄러워졌다. 1960년 8월 25일 김정일이 ‘류경수 105 탱크사단’을 방문했는데, 이때부터가 선군정치의 시작이라며 8월 25일을 공식 휴일로 정했으며, 선군정치 46주년을 경축한다는 선전 포스터들이 평양거리 곳곳에 설치되었다. 조선중앙TV도 연일 선군정치를 찬양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이때 입장이 난처해진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혁명역사를 가르치는 교원들과 각급 단위의 선전일꾼들이었다. 그들은 대학 5년간 전문적으로 혁명역사만 공부했으며, 그 혁명역사로 박사칭호까지 받은 실력가들이었지만 학생들과 인민들 사이에서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우리대학의 혁명역사 교원은 강의 중에 “위에서 이 날이다 하면 이 날이고, 저 날이다 하면 저 날이다”면서 “학생들에게 자꾸 거짓말 강의를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고 실토한 적도 있었다.

민충이 쑥대 올라간 듯

김정일의 선군정치 기간이 10년이든, 반세기든 간에 남은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 몇 개뿐이다. 선군정치의 성과로 조선이 국방에서 자주권을 완성했다고 떠드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선군정치가 없이도 세계에서 핵무기가 가장 많은 군사강국이 되었고, 일본은 선군정치나 핵무기가 없어도 세계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는 경제강국이 되었다. 선군정치는 커녕 군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투쟁했던 남조선은 분단 반세기 만에 조선과 비교도 안 되는 선진국이 되지 않았나? 조선의 선군정치 10년은 UN과 외국정부를 향한 구걸과 동냥의 10년이었을 뿐이다.

선군정치는 그저 단순한 군사독재다. 일당독재로도 양이 차지 않아 군대까지 앞세워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는 낙후된 정치체제에 불과한 것이다.

김정일의 군사독재의 총부리는 미 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정권만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 기간 동안 가난한 평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쓰러져갔으며, 군인들조차 ‘강도질 아니면 허약병’이라는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선군정치라는 빛깔조차 나쁜 개살구를 가지고 남조선 사람들이 무슨 토론을 벌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조선의 혁명역사 전문가들이 한국의 선군정치 토론회 소식을 들었다면 모두 웃음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에는 “민충이 쑥대 올라간 듯하다”는 말이 있다. 쑥 줄기 위에 올라간 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라온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는 뜻이다.

조선을 제대로 알려면 백성들의 생활을 먼저 고찰해야 옳다. 김정일을 찬양하는 정치구호에는 백성들의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 선군정치는 조선사람들을 그저 생으로 잡는 군사독재일 뿐이다. 그런 선군정치를 무슨 학자들까지 모여 토론했다니, 그저 자다가도 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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