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③] 김정일, ‘노리에가 방식’ 대입은 어렵다

▲ 파나마의 수령이었다가 미국 교도소에서 수인번호를 들고 서있는 노리에가(좌). 김정일의 운명은?

최근 일각에서 북한의 김정일을 노리에가 식으로 기소하는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기소는 어느 나라 법정해서든 하면 된다. 그러나 노리에가 식으로 체포하는 것은 가능할까? 답은 ‘매우 어렵다’이다.

북한이 파나마처럼 되거나 김정일이 노리에가처럼 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 몇 가지 때문이다.

첫째, 미국이 파나마와 북한에 갖는 이해관계의 수준이 현격히 다르다.

미국과 파나마는 80년 이상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고, 미국에게 파나마운하의 전략적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반면 북한은, 거기서 김정일이 호화 사치 생활을 하든 포악한 독재를 하든 말든 사실 미국에는 별 상관이 없다. 한반도가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이긴 하지만 미국의 이해관계에 사활적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김정일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마약과 위폐를 생산하는 등 미국의 신경을 자꾸 건드리고 있으니, 북한문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파나마 침공 때처럼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면서 단시간에 거칠게 문제를 처리할 만큼 미국이 북한문제를 성급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미국에게 북한문제의 절박성이 갑자기 높아질 가능성은 낮다.

둘째, 파나마의 배후에는 지원자가 없었지만 북한의 배후에는 지원자가 있다.

미국과 결별하면서 노리에가는 쿠바와 가깝게 지내려 하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내부의 과격주의 그룹, 콜롬비아 마약 조직 등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들이 노리에가의 ‘배후’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노리에가의 반미(反美)는 ‘혼자만의 반미’였다.

그러나 김정일에게는 제법 여러 배후가 존재한다. 후견인의 역할을 해주는 중국이 있고, 북한문제를 기회 삼아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보해보려는 러시아가 있고, 쏠쏠하게 지갑을 채워주는 남한의 햇볕주의자들이 있고, 남한 내에 든든한 친(親)김정일주의자들이 있으며, 세계적으로 상당한 반미여론을 활용할 수도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차원에서 김정일을 사법처리하려고 해도 거부권을 행사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유엔안보리에서는 미국만큼이나 북한도 우군(友軍)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1980년대 후반에는 국제연합(UN)이 유명무실 했고 미국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 UN안보리 차원에서 대미 규탄결의안이 상정됐으나, 당연히,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총회에서 결의안이 채택되었지만 미국은 무시했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미국의 행동을 제재할 방법이 없었다.

파나마 침공이 단행된 1989년은 냉전이 종지부를 찍던 무렵이지만, 이때에도 자본주의권-사회주의권은 상대 진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특별히 간섭하지 않았다. 소련군이 체코와 헝가리에 들어가 민주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할 때 자본주의 진영이 ‘규탄’만 하다 그쳤듯,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 것도 ‘집안 문제’로 여겼다.

지금도 UN의 실천적 힘은 미약하나,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 지구상의 어떤 문제든 ‘저쪽 진영의 일’이라고 치부되는 문제는 없다. 특히 미국과 북한과의 문제는 ‘서로 다른 진영 간의 문제’여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내버려 둘 사안이 아니다. 이는 미국의 행동을 제약하는 하나의 요인이다.

넷째, 파나마에는 미국이 직접 들어가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었지만 북한은 어렵다.

미국은 파나마 내부의 민중봉기를 노리에가 제거에 활용했다. 군사 쿠데타에도 협조했다. 이렇게 내부에서 쉼 없이 흔들어대니 노리에가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흥분한 독재자는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더 큰 실수와 항쟁을 낳는다.

미국은 수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파나마 민주화 운동을 음양으로 지원했다. 야당후보에게 선거자금을 대주기도 하고, 지하 라디오 방송국을 파나마의 수도인 파나마시티에 설치해 운영하기도 했다. 북한에게는 이런 과감한 방법을 적용할 수 없다.

물론 지금도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인권단체과 대북 라디오 방송을 지원하고 있지만, 파나마에서와 같은 직접적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섯째, 미국은 파나마에서 차기 정권을 세워놓고 있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노리에가를 쳐낼 수 있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파나마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있었다. 노리에가가 그들을 인정치 않아 결국 비참한 사태에까지 이르렀지만, 여하튼 미국이 노리에가를 제거하기만 하면 곧장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세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것을 장담할 수 없다.

물론 미국이 김정일을 제거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이것은 특별히 큰 고려사항이 아니다. 북한문제에는 ‘남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라크에서도 후세인 제거 이후 대안 준비가 미흡했다는 비난이 거센 마당에 북한마저 충분한 대책 없이 꼬이게 만들 수는 없어 상당히 망설여질 것이다.

여섯째, 파나마 침공 이전에 미국 내부에서는 ‘노리에가 퇴진’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금 북한에 대해서는 아직 ‘김정일 퇴진’ 목소리가 높지 않다.

파나마 침공 이전에 미국 언론에는 끊임없이 ‘노리에가 퇴진’을 촉구하는 기사와 사설, 칼럼이 실렸다. 이러한 여론이 1차로 몰아쳤고, 이에 탄력을 받아 상원에서 ‘노리에가 사퇴 촉구 결의안’이 채택됐다. 상원의 결의안은 행정부의 강경한 대책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지금 미국에서 북한에 대한 여론은, 김정일이 포악한 독재자이고 북한에서 끔찍한 인권탄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빠르게 알려지고 있긴 하지만 ‘김정일 퇴진’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저 ‘인권 개선’ 정도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도 초기에는 김정일 정권 붕괴를 염두에 두었다가 점차 그 내용이 약화되어 인권분야로만 축소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을 비롯하여 지금 미 행정부의 핵심수뇌부들이 김정일 정권에 대한 극심한 도덕적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직설적으로 ‘김정일 사퇴’를 요구하고 있지는 못하다. 따라서 김정일이 미국에 대한 치명적 공격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미국이 ‘김정일 제거’를 공개적으로 천명할 가능성은 현격히 낮다.

◆ 노리에가에게 안 먹혔던 ‘경제봉쇄’, 김정일에게는?

이상이 미국이 김정일을 노리에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이 독재정권을 제거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파나마처럼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은근하고 끈질기게 북한을 대상으로 추진되고 있다. 아래 표는 미국이 과거 파나마에 실행했던 전술과 지금 북한에 대응하는 방법을 비교 정리한 것이다.

 

 파나마

북한

회유와 협상

• 노리에가 자진 사퇴 권유

  (망명지 및 보상액 제시)

• 6자회담

• 핵포기 시 경제지원,

  불가침 등 약속

민중항쟁,

쿠데타 지원

• 파나마 민주화운동 지원

  (라디오 방송 운영)

• 군부쿠데타 협조, 지원

• 북한인권법 제정 (인권

  단체 지원, 대북라디오방송

  지원,탈북자 수용)

• 北인권특사 임명

경제압력

• 경제 및 군사원조 중단

• 세계은행 차관 제공 반대

• 미국내 파나마 자산 동결

• 파나마 송금 봉쇄

• 미국내 北기업 자산 동결

• 돈세탁 의심 은행 차단

• 마약, 위폐, 위조담배, 무기

  판매 등 음성적 자금루트

  차단

합법적

정권교체 시도

• 야당후보 당선 지원

국제적 압력

• 美법원 기소

• 특사파견, 평화적 퇴진

방법 제시

• 다자기구 통한 중재

• 유엔인권결의안, 北인권

  특별보고관 임명

• 세계 각국 北인권 압력

• 중국, 러시아 설득

전쟁

• 노리에가 체포, 미국 압송

여기서 한번 살펴볼 것이 있다. 미국이 파나마를 상대했던 여러가지 전술 가운데 어느 것이 노리에가에게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까 하는 문제다.

단정해 말할 수는 없지만 파나마 내부의 민주화 운동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노리에가에게 가장 골치거리였을 것이다. 민주화 운동을 탄압할수록 국내외적으로 노리에가는 입지를 잃어갔다. 군대를 동원해 투표함을 빼앗고 개표를 방해하면서 대통령 선거 무효를 선언하자 국제사회도 완전히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래서 나중에 미국이 노리에가를 체포했을 때, ‘미국의 방법이 옳진 않지만, 노리에가가 제거된 건 잘된 일’이라는 인식을 대부분 갖고 있었다.

한편으로, 미국이 파나마에 취한 경제압력이 별로 실효성이 없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1987년부터 미국은 파나마에 대한 경제 및 군사원조를 중단하고, 세계은행의 차관 제공을 봉쇄했으며, 미국 은행 내 파나마 자산을 동결하는 등 경제압력을 가한다. 이로 인해 파나마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그것이 노리에가를 퇴진시키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우선 경제압력이 노리에가 세력보다는 파나마의 기업인과 일반 국민에게 더 큰 손실을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압력으로 파나마에서는 소요가 일어났으나 주민들은 그것을 ‘노리에가 탓’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한편 노리에가는 마약밀매 등 다른 음성적 수입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막지 않고 비교적 투명한 경제활동을 봉쇄하니 독재자에게는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주민들의 반감만 키운 것이다.

또한 미국의 경제압력이 그렇게 강력하지 못했다. 예컨대 파나마 내부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게는 송금이 허용됐는데, 이들 기업은 다시 파나마 정부에 자금을 보내는 형식으로 자금융통이 가능했다.

반면 김정일의 경우, 다른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압력이 가장 괴로울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북 경제압력은 김정일의 음성적 자금원을 차단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민은 오래된 경제난으로 어차피 괴로울 것이 없는데 김정일은 이제야 홀로 외로이 자기만의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은 꽉 막힌 현금유입 통로를 뚫기 위해 남한과 중국을 상대로 안간힘을 쓸 것이다. 독재자가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면 ‘변수’가 생기는 법이다. 이것이 향후 북한문제 해결 과정의 관전 포인트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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