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②] 미국은 독재정권을 어떻게 제거하나?

▲ 파나마 침공 당시 파나마군사령부를 점령한 미군

미국이 특정 국가의 정권을 교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해서 곧바로 전쟁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비용이 많이 들고 희생이 따르며, 국제사회의 여론은 물론이거니와 국내에서 지지 여론을 얻기도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체로 ‘마지막 카드’로 활용된다.

물론 전략적 중요성이나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그런 ‘마지막 카드’를 빨리 꺼내 들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파나마의 경우가 그랬다. 사태의 심각성 보다는 ‘전략적 중요성’이 우선 고려되었을 것이다.

전쟁에 앞서 미국은 가급적 공작이나 회유, 협상 등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런 작업이 수 개월 걸릴 수도 있고 수 년 걸릴 수도 있다. 십여 년 이상 장기화될 수도 있다. 파나마는 2~3년 정도 걸렸다.

◆ ‘작업의 정석’ – 미국의 정권 제거 6단계 전략

전쟁을 피해가기 위한 ‘전 단계 작업’은 몇 가지로 나뉜다. 파나마 사태에는 이런 작업의 유형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파나마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은 어느 단계에 진입해 있는지, 파나마와 북한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지 비교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정권교체의 1단계, 회유와 협상(또는 협박)을 시작한다

‘노리에가, 너는 안되겠다’는 결심은 미 행정부의 핵심인물 몇몇이 내린 결정이 아니다. 미국 여론이 먼저 들끓었고, 그에 따라 상원에서 ‘노리에가 사퇴 촉구 결의안’이 통과됐다. 84대 2의 압도적 표차였다. 1987년 6월 26일의 일이다.

그후 미국은 노리에가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기 위한 수 차례의 회유 공작을 벌인다. 1987년 8월과 11월 퇴역 해군 제독 머피(Daniel J. Murphy)를 파나마에 보내 노리에가와 협상을 시도하고, 12월에는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차관보를 보내 ‘명예로운 퇴진’을 촉구한다. 또한 외교관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 등을 보내 “2백만 달러를 줄 테니 스페인으로 망명하라”고 협상하는가 하면, 나중에는 슐츠(George Shultz)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기까지 한다.

정권교체의 2단계, 민중항쟁이나 쿠데타를 지원하는 것이다.

회유가 실패하면 ‘흔들기’로 넘어간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회유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진정으로 바라는 건 그 나라의 민주화보다도 미국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몰라도 냉전시기에는 분명히 그것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우선순위였다. 따라서 회유를 통한 안정 추구가 안되면 ‘어쩔 수 없이’ 2단계로 넘어간다.

물론 1980년대 후반 반(反)노리에가 시위가 미국의 배후조종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파나마 인민을 모욕하는 행위다. 파나마 인민들은 노리에가의 부패와 독재에 항의해 자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미국은 파나마의 민주화 운동가들을 물심으로 지원하거나 파나마 시위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방법 등을 통해 배후와 측면에서 ‘노리에가 제거’를 추진하였다. 노리에가는 민주화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자신을 파면하려는 대통령을 탄핵시켜 버리기도 했다.

▲ 반노리에가 방송국을 운영했던 쿠르트 뮤즈

미국은 파나마 민주화 시위를 촉구하는 라디오 방송을 지원하기도 했다. 1989년 12월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할 때 중요한 작전계획의 하나로 ‘억류된 미국인을 구출하는 임무’가 들어있는데, 그 ‘미국인’은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비밀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다 붙잡힌 CIA 첩보요원이었다. 이름은 쿠르트 뮤즈(Kurt Muse) – 부시 대통령은 그를 ‘위대한 미국인’이라고 불렀으며, 그가 운영한 파나마의 지하 방송은 ‘자유의 소리(The Voice of Liberty)’였다.

이 시기, 파나마에서는 노리에가에 대항한 군사쿠데타가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이들 대부분은 자생적인 쿠데타였다. 미국이 쿠데타를 직접 지원하려고 검토한 적도 있는데, 미 의회 내부에서 반대 의견이 제기돼 폐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작전은 ‘파나마 1호~5호’의 작전명으로 추진되었다.

정권교체의 3단계, 경제적 압력을 가한다.

1987년, 미 행정부는 먼저 파나마에 대한 경제 및 군사원조를 보류한다. 노리에가가 세계은행에 차관 제공을 요청하자 미국은 반대표를 던져 봉쇄해 버린다. 노리에가가 파나마 주재 미국 관리들을 추방하는 조치로 대응하자, 미국은 1987년 말 파나마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한다.

1988년에는 경제압력을 한층 강화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국제경제권법(International Economic Powers Act)를 발동해 미국 은행에 예치된 파나마 자산을 동결해버리고, 미국 정부가 파나마에 지불해야 할 돈을 조건부 증거 구좌로 묶어 버린다. 또한 미국내 모든 개인 및 기업이 파나마에 송금할 수 없도록 조치한다.

이에 파나마 정부는 협상단을 파견하는데, 미국은 ‘노리에가의 권력 포기’를 제1의 조건으로 꼽는다. 물론, 노리에가는 거부한다.

정권교체의 4단계, 합법적 정권교체를 시도하는 것이다.

▲ 1986년의 노리에가. 점점 미국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1989년 5월 파나마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었다. 미 행정부는 1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反노리에가 성향의 야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미국이 이미 자신을 버렸고 ‘흔들기’에 돌입했다는 것을 알게 된 독재자는 반드시 무리수를 두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속칭 ‘제 무덤을 파는’ 경우가 많다. 노리에가도 그랬다.

파나마 인민들은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야당 후보를 지지시켰다. 이런 경우 독재자들은 선거 과정에 엄청난 부정을 동원하거나,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당선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등 ‘제 정신을 잃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입는 행동을 함으로써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비난을 한꺼번에 받게 된다.

만약 선거에 국제기구의 감시단이 끼어들어 부정의 현장을 포착하였다면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파나마는 이런 정석(定石)을 그대로 따라갔다. 노리에가는 그야말로 ‘딱 걸린’ 것이다.

노리에가는 62.5%의 지지를 얻은 길레르모 엔다라(Guillermo Endara) 후보의 당선을 무효화했다. 선거감시단이 파나마에 들어와 있는데도 군대를 동원해 투표함을 탈취하고 개표를 중단시켰다. 게다가 엔다라의 경호원을 죽이고 엔다라는 쇠파이프로 흠씬 두들겨 팬 후 이를 TV를 통해 전국에 방영하는 만행을 저질러 그야말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다. 자기 무덤을 확실히 판 것이다.

여기가 바로 전쟁의 분수령이다. 독재자가 이쯤에서 물러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심각한 혼란에 처하거나 내전상태에 들어간다. 이때에 국제사회가 공동 보조를 맞추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혼란의 해결사’ 또는 ‘평화의 수호자’라는 좋은 명분으로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개시한다. 독재자들은 한결같이 그것을 ‘내정(內政)간섭’이라고 우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미 수뇌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기에 평소에 내정 관리를 잘하지 그랬나.”

정권교체의 5단계, 국제적 압력과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상황이 이쯤되면 미국이 파나마에 직접 개입할 명분은 충분해진다. 미국은 마지막 협상을 시도한다. 그리고 전방위의 압력을 가한다.

‘안전은 보장할 테니 망명하라’고 계속 종용하고, 파나마 대선 감시단의 일원이었던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을 통해 평화적 정권교체에 대한 협상을 시도한다. 1989년 출범한 부시 행정부는 미주기구(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에 의한 다자간 중재 협상안을 내놓기도 한다.

한편 노리에가는 1988년 2월 마약 밀매 등의 혐의로 미국 플로리다주 법원에 기소되어 있었는데, 미국은 노리에가가 자발적으로 퇴진하면 이를 취하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 역시 결렬된다.

한때 이러한 협상이 성사될 듯한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다. 노리에가의 핵심보좌관이었던 블란돈(Jose Blandon)이 노리에가의 점진적 정계은퇴 계획을 제시하는데, 노리에가가 거부한다.

미국 관료들은 될듯 말듯 진행되는 협상에 답답해하다가, 결국 이 모든 협상이 노리에가가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마침내 1989년 10월말, ‘전쟁’이 결정된다. 모든 평화적 노력이 소진한 것이다.

정권교체의 6단계, 전쟁이다.

▲ 파나마군사령부를 공격하는 미군

원래 미국은 파나마 유사시 운하지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개입하는 작전을 오래 전부터 마련해 두고 있었다. 작전명은 ‘푸른 숟가락(Blue spoon)’. 미국은 이것을 ‘정당한 명분(Just cause)’이라는 작전명으로 바꾸고, 원래 파나마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을 포함 2만4천명의 병력을 동원해 노리에가를 체포한다. 작전명에서부터 미국이 이 전쟁을 얼마나 합리화하고 싶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작전이 시작된 것은 1989년 12월 20일. 파나마 주재 교황청으로 도망간 노리에가가 투항하면서 주요작전이 종료된 날은 1990년 1월 3일이다. 20년 군사독재는 단 보름의 총성 끝에 종식됐다.

작전으로 미군 23명이 사망하고 324명이 부상했다. 파나마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은 200~1,000명. 반미적 성향이 강한 남미의 인권단체들은 3,000명까지 추정하기도 한다. 제3세계의 민주화보다는 안정을 우선시했던 냉전시기 미국의 자업자득이자, 끝내 화약냄새와 피냄새를 맡고서야 자멸하는 어리석은 독재정권이 초래한 비극이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할 것이다.

– 다음호에 ‘파나마 사례의 북한 적용 가능성’을 주제로 제3편이 이어집니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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