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①] 김정일과 노리에가, 무엇이 같고 다른가

▲ 체포되어 미국으로 압송되는 노리에가(좌)와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우) ⓒ데일리NK

북한의 위폐, 마약, 대량살상무기 제조 ∙ 유통 등 일련의 국제범죄 행위에 대해 미국이 ‘노리에가식(式) 기소’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의 라파엘 펄 연구원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 정부 관리들이 북한의 혐의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증거를 수집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북한 지도부를 노리에가 방식으로 기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에 불을 지피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안보 전문가인 토머스 버넷 미 해군대 교수는 지난 연말 발간한 책 ‘행동 청사진(Blueprint for Action)’에서 북한정권 교체 전망을 좋은 시나리오, 나쁜 시나리오, 추잡한(ugly) 시나리오 등 세가지로 요약했다. 이중 ‘나쁜 시나리오’는 노리에가를 처리했던 것처럼 김정일을 체포해 투옥시키고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Antonio Noriega), 파나마의 독재자. 그는 1989년 12월 미군이 파나마를 침공하여 미국으로 압송, 마약밀매 혐의로 플로리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 4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마이애미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 파나마 침공 사례 연구의 필요성

1989년 미국의 파나마 침공.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저지른 침략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거기에 “그 동안 미국이 키워왔던 노리에가가 ‘독자노선’을 걷자, 그를 제거하기 위해 마약밀매의 죄를 뒤집어 씌운 비열한 전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해석이 간편할 수는 있으나 파나마의 역사에 무지하거나 전후(前後) 관계를 생략해 버린 잘못된 해석이며, 혹은 사실을 완전히 왜곡한 반미(反美)선동의 냄새마저 느껴진다. 이 전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미국과 파나마의 관계, 파나마의 역사와 국내외적 상황, 냉전시기 미국의 중남미 정책, 대공산권 정책, 1980년대 말의 시대적 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미국의 파나마 침공은 함부로, 쉽게,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지만, 미국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를 어떻게 관리하고, 그런 나라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다 살펴볼 수 있는 ‘교과서적인 사건’으로 잘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과연 파나마의 사례를 북한에 적용할 수 있을까? 과연 김정일에게도 노리에가식 접근이 가능할까? 지금은 어렴풋이 잊혀져 가는 15년 전의 파나마로 거슬러 올라가 파나마와 북한, 노리에가와 김정일을 비교해 보자.

◆ 파나마의 지리적 특성

남북 아메리카는 잘록한 허리로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그 허리에 위치한 나라가 파나마 – 정식 국호는 파나마공화국(Republic of Panama)이다. 크기는 남한의 3/4, 인구는 3백만 명에 불과한 이 나라는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기구한 운명을 살아왔다.

지도를 펼쳐보자. 미국 동부 해안에서 대한민국 부산항으로 가려는 선박이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대서양을 건너,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 인도양을 에돌아 먼 길을 굽이굽이 항해해야만 한다. 아니면 남아메리카의 끝까지 내려가서 한 바퀴를 돈 다음 태평양을 건너야 한다.

그런데 인간은 대륙에 ‘틈’을 벌여놓는 대역사(大役事)를 단행했다. 바로 운하(運河)다. 남북 아메리카의 허리를 뚫고, 아프리카-중동을 잇는 허리에도 틈새를 만들었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다. 그로 인해 세계는 훨씬 가까워져,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절약하게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양대 운하는 특정 국가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게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기회이자 불행의 씨앗도 될 수 있는 이런 운명을 타고난 국가가 바로 파나마와 이집트이다.

◆ 미국이 세운 나라, 미국이 만든 운하

미국이 파나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나마 인민들이 들으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사실 파나마는 미국이 창설한 국가나 다름없다.

16세기 초반 이래 지금의 파나마 땅은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때에도 여기에 운하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신이 붙여놓은 땅을 인간이 갈라놓을 수 없다’는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묵살된다. 1821년 파나마 땅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콜롬비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데, 1881년에 프랑스인들에 의해 비로소 운하건설이 시작된다.

그러나 수에즈 운하를 성공적으로 건설했던 프랑스의 외교관 페르디난드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개발권을 획득해 추진했던 이 공사는 수에즈 운하 건설현장과 완전히 다른 기후환경을 고려치 않은 채 강행하다 1893년 회사가 파산하면서 중단됐다. 공사 과정에 2만여 명이 풍토병으로 죽었고, 공사 진척은 10%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실패한 운하건설을 인수한 것이 미국이었다. 미국은 콜럼비아 정부와 100년간 운하 주변지역 10㎞를 조차(租借)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려 했는데, 콜럼비아 의회에서 이를 거부하자 분리주의 성향이 강했던 파나마 지역민들을 부추켜 독립을 선언하도록 했다. 1903년 10월의 일이다. 독립선언 후 보름 만에 미국은 파나마 정부와 운하 조약을 체결한다.

그렇게 해서 운하가 완공된 것이 1914년. 독립국가 수립 이후 파나마는 “미국은 파나마의 독립을 보장하고 유지한다”는 파나마 조약 제1조와 ‘미국이 공공의 평화와 헌법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파나마의 전 부문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헌법 제136조에서 볼 수 있듯 사실상 미국의 보호령(保護領)으로 체제를 유지한다.

◆ 미국에게 북한이 갖는 의미는 낮다

이와 같이 파나마가 미국에 갖는 전략적 중요성은 대단히 크다. 파나마의 안정이 깨지면 그 손실이 막대하기 때문에 미국은 파나마 내정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왔다.

일단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이야기하자면, 이 점이 파나마와 북한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다.

혹자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의 중요성은 파나마의 그것보다 한참 떨어진다. 과거에는 공산권의 확산을 막는 차원에서 한반도의 안정이 중요했으나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사실 북한이 특별한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면 미국으로서는 굳이 신경을 쓸만한 지역이 아니다.

중국이 신흥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것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미국의 대(對)한반도 중요성이 커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친 해석이다. 미래의 한반도가 지리적, 문화적, 역사적인 모든 측면에서 친중(親中)적으로 흐를 개연성은 높고, 북한문제를 미국이 주도적으로 해결한다고 한반도의 친중 흐름이 차단될 리도 없다. 속된 말로 ‘죽 쒀서 × 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미국이 파나마 문제에 접근하였던 것처럼 무리수를 둬가며 북한문제를 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작금에 북한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이유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크게 바뀌었으며 북한이 스스로 화를 불러온 측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 다음에 계속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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