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8월 20일 방탄열차를 타고 평양을 출발해 북·러 국경도시인 하산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따라서 하바로프스크-부레야-울란우데에 이르는 약 3,800km의 긴 여정에 나섰다.
김정일 위원장은 8월 24일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 호수 인근에 있는 부랴티아 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데의 군부대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014년 동계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흑해에 있는 소치에 들렸다 비행기편으로 울란우데로 갔다.
2000년 평양과 2001년 모스크바 그리고 2002년 블라디보스톡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진 이래로 9년 만에 개최된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개최된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러시아는 그동안 약화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이 접경국이며 구소련에 의한 사회주의체제 이식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을 자신의 영향권 하에 두어야 하는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국력 약화와 한·러 관계의 발전, 북·중 관계 긴밀화 등으로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은 많이 약화되었던 것이다.
러시아는 내년 9월 블라디보스톡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대남 도발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북한의 또 다른 대남 도발은 APEC 정상회담 개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러시아는 대북 경협 확대나 지원 등을 통해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셋째, 러시아는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통해 동북아 지역정세의 정상화, 한반도 비핵화, 남북대화의 정상화라는 3가지 과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여기에 북한은 김정은으로의 안정적인 3대 세습을 위한 러시아의 지지를 확보하고 그동안 중국에 편향되었던 정책을 재조정하여 중·러 양국으로부터 정치·경제·외교적 실익을 도모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마지막으로 북·러 양국은 남·북·러 3국을 잇는 TSR-TKR·가스관·송전선 연결 등의 3각 경협을 통해 경제적 실익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천연가스관 연결의 경우,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 등으로 가스 판매시장을 확대할 수 있고, 북한은 연간 약 1억 달러 상당의 통관료를 얻을 수 있다.
금번 김정일 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 직후에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았고 회담 내용에 대한 양국의 단편적인 보도만 있을 뿐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6자회담 재개, 양국 경협 확대, 남·북·러 3각 경협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 결과로 주목되는 것은 양국 간 전통적인 친선협조 관계가 복원되었다는 점이다. 양국은 이전의 3차례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소원한 관계에 있었다. 금번 정상회담에 양국의 최고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여 동북아 및 한반도 정세와 양국 현안 등을 협의함으로써 관계 복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핵 문제와 관련 러시아는 6자회담 재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6자회담 재개 문제와 관련, 북한은 전제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번 회담에서 북·러 양국 정상은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빨리 재개해 9.19 공동성명을 동시행동의 원칙에 기초해 이행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의 기본입장을 지지한 것이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확보한 것으로 추측된다. 먼저 북한은 한반도 안정을 최우선시하고 있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동의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으로는 러시아의 대북 원유 지원과 투자,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북한 노동자 파견 확대, 북한의 대러 채무 등의 문제가 협의되었을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남·북·러 가스관 건설을 위한 3국 특별위원회구성이 제의되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들에게 “북한이 자국을 거쳐 남한까지 이어지는 천연가스 수송관을 지지함으로써 가스관 건설에 합의할 수도 있다고 낙관적으로 전망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프로젝트를 검토하기 위한 3자 특별위원회의 발족에 합의했다고 한다.
이번 러시아 방문 결과 북한의 대중 편향정책이 완화된 측면이 있다.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북한은 단지 중국과만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금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은 그동안의 대중 편향정책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번 정상회담 내용 중에서 우리의 주목을 가장 끄는 것은 동부 시베리아나 사할린에서 생산된 러시아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수송관을 설치해 우리나라로 들여오기 위한 3각 경협사업이다. 남·북·러 3국 모두에 유익한 사업이지만 이 사업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서는 비용부담 주체와 가스 공급가격이 미리 결정되어야 하고 북한의 수송관 폐쇄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북한의 금강산 관광사업 재산몰수와 같은 사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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