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메시지③] 김성민- 북한동포들에게 보내는 글

안녕하십니까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하는 이곳 서울도 상당히 추워졌습니다. 5일 전에 눈이 내리더니, 갑자기 겨울이 되었습니다. 꽁꽁 언 길 위에 털 잠바 입은 사람, 목도리를 칭칭 감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제 저에게도 그 두렵고 떨리던 겨울이- 봄, 여름, 가을, 그 다음에 오는 일상의 계절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불과 몇 해전만해도 얼어 죽지 말고 버텨내야 한다고 두렵게만 바라보던 겨울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리는 찬 눈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이제는 일상처럼 되어버린 겨울나기가 북녘에 계시는 내 고향 사람들에게는 ‘현재형’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겪어본 사람만- 압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장작개비 구하러, 없으면 낙엽이라도 긁어 모으려 산속을 헤매고 녹지도 않을 것 같은 강물을 깨고 물을 긷던 그 모진 겨울의 고통을 말입니다.

얼마 전 ‘김장-겨울나기 준비 끝’이라는 이곳 서울의 모 일간지 기사를 보고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족이 먹을 배추김치 담그는 일이 겨울나기 준비의 전부였더라는 기사였는데, “고향”의 그 처절한 월동준비가 생각나 속으로는 눈물이 났습니다.

북녘의 형제 여러분, 우리야말로 얼마나 모질게, 그리고 악착같이 겨울을 준비하고 추위를 이겨낸 사람들입니까, 서릿발보다 더 차가운 물에 대충 얼굴을 문지르고, 가뭄철의 논밭처럼 마르고 튼 손으로 장사를 하면서 하루하루 목숨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써오지 않았습니까, 그 지겹고 힘든 겨울을 버티고 나면 봄은 왔습니까,

풀이 나서 풀죽이라도 배곯지 않게 먹게 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내어 쉬는 날 때부터 불쌍한 우리의 자식들 앞에서 어느 아버지가 진정 안도의 숨을 내쉬었단 말입니까, 겨울을 이기지 못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죽은 누나의 묘지 위에 앉아 한줌 봄빛을 즐기는 철없는 막내아들을 바라보며 어금니를 깨어 물던 북녘 땅의 어머니들……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이 죄송하며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송구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사람들을, 이름들을… 떠나온 고향을 모두 부정하면서 이 나라에서 지어준 ‘새터민’의 이름으로 조용히 살고 싶기도 했습니다. 북녘의 형제 여러분, 정말로 그러려고 했지만, 결국은 제가, 우리들 모두는 죽었다 깨도 변할 수 없는 탈북자들이었습니다. 아직도 명태식혜라면 사족을 못쓰고, 마음이 다급해지면 북한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사람들이 바로 저희들입니다.

그래서 탈북자동지회가 생겨났고, 북한민주화운동본부가 발족했으며, 숭의동지회, 겨례선교회, 자유북한인협회와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회 등 십 수개의 탈북자단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엊그제는 자유북한군인연합의 발족에 이어 탈북자들의 대북방송인 자유북한방송도 북한민주화를 위한 첫 고고성을 터뜨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만큼도 여기지 않는 김정일독재체제하에서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가는 북녘의 형제 여러분, 이제 그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우리 탈북자들이 나섰습니다. 죽어가는 자식의 마지막 숨결을 지켜보는 그 절박한 운명을 사는 여러분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남녘의 애국형제들이 나섰고, 미국사람, 영국사람, 일본사람, 프랑스 사람……인류의 양심들이 여기에 모였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우리 함께 힘을 합쳐 그 땅에 있고, 또 있어야 할 자유를 위하여 한 사람같이 일어나야 합니다. 북녘의 청년학생 여러분,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들과 절대적 숭배를 강요하는 김일성동상들에 이제는 전율해야 하며, 맹목적인 충성심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애국적이며 양심적인 군인들과, 인민경비대 장병들은 김정일을 보위하는 총탄이 되고, 폭탄이 되자는 어리석은 신조에서 깨어나야 하며 저들의 청춘과 열정을 자유와 민주의 해방운동에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누이들이 나서고, 아우들이 나서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들이 모두가 일어난다면, 백만을 잡아넣을 감옥이 어디 있고, 천만의 목을 매달 교수대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한 사람같이 떨쳐 일어나 사람의 머리 위에 군림한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민주와 꿈에도 소원인 통일을 이루어 냅시다. 그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모두다 떨쳐 일어나 저 이라크에서처럼 독재자의 동상을 역사에서 끌어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