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 ‘혁명’하러 간 北 월드컵 8강 축구영웅들

월드컵 8강 주역들. 왼쪽 3번째가 박두익. 이들은 북한에서 이른바 ‘혁명화’ 고초를 겪은 다음 복권되었다.

2005년 8월 대니얼 고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천리마 축구단(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이 상영되었다.

다큐멘터리는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신화를 이룬 북한축구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있다. 40년 동안 묻혔던 북한의 8강신화가 어느 외국인 감독에 의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8강의 기적은 북한이 세계지도에 어디에 붙었는지조차 몰랐던 서방 사람들에게 북한의 존재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 속공(速攻)과 일사분란한 플레이를 동반한 아시아 축구의 잠재력을 알렸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리마 축구단’의 모습을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는 제작자의 독백은 당시 북한축구의 ‘미스터리’ 자체만으로도 관중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9명의 축구영웅들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북한당국이 월드컵 영웅들이 수용소로 갔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마치 ‘반론’이라도 하듯 이례적으로 다큐 제작진에 인터뷰를 허락한 점은 분명 외부세계에 무엇인가를 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입이 있어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는 북한체제의 감시하에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놓고 8강 주역들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조명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진출 확정후 찍은 사진

‘신영균은 지도원도 시키지 마라’

8강 월드컵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여러 탈북자들의 해설과 증언을 통해 그 행간을 읽을 수 있다.

‘천리마 축구단’이 귀국하여 혁명화를 겪으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당시 주장이었던 신영균이었다. 함북 경성군 생기령 광산으로 추방된 신영균은 특히 출신성분이 황해도 연백의 대지주 아들이라는 과거 신분까지 드러나 처벌이 가혹했다는 증언도 있다.

최근 함북 00군 당 간부출신 한 탈북자는 “신영균이 공로도 있고 축구도 잘해 공장에서 겸직 축구지도원(공장내 겸직 감독)으로 기용됐지만, 당에서 ‘지도원도 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져 그를 추천했던 공장간부까지 해임되었다”고 증언했다.

한편 탈북자 서영석씨는 “우리 아버지(국군포로)와 신영균은 생기령 광산에서 같이 노역에 동원됐는데, ‘신영균이 운동도 잘하고, 놀기도 잘했다’고 생전에 말씀하셨다. 그런데 신영균이 광산에 내려온 지 3년 후에 복권되어 평양에 올라가서 ‘우리가 없으면 조선축구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 보위부에 밀고되어 그 이후 영원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생기령 광산은 6.25전쟁 국군포로들이 끌려가 노역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수비수 림중선은 단천 마그네샤크링카공장으로 좌천되어 공장 겸직선수로 생활했다. 나머지 선수들은 자강도와 평북도 등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9명 선수 외에 다른 선수들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박두익은 지방에서 다시 올라와 국가종합팀 지도원(감독)과 이명수체육단 축구지도원, 5.1경기장 지배인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찬명은 새로 조직된 4.25 체육단 축구지도원의 삶을 살았지만, ‘빗자루 방어’로 유명했던 주장 신영균은 평양시 체육단에 복귀되어 몇 차례 국제경기에 참가한 외에 다시 아오지 탄광으로 좌천되었다. 그도 ‘말 실수’로 좌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노동 혁명화’ 1~3년 처해져

북한에는 ‘노동 혁명화’라는 처벌이 있다. 육체적 노동을 통해 정신적 자극을 주는 일종의 ‘교양방법’이다.

특히 간부들이 과오를 범할 경우, 1~3년 기간의 무보수 노동에 처한다. 2002년 사망한 전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장이었던 김용순과 올해 설날 다시 복권된 장성택 노동당 제 1부부장도 혁명화를 거친 바 있다.

‘8강 기적’ 후 북한은 단 한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축구전문가들은 북한 축구가 갑자기 쇠퇴하게 된 원인은 뛰어난 선수들이 한꺼번에 없어지면서 생긴 공백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67년 이후 전 사회를 휩쓴 혁명화, 노동계급화, 인간개조의 강압적인 처벌방법이 나라의 스포츠 한 세대의 발전을 억제한 것이다.(끝)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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