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 코미디같은 美정찰기 미사일 격추시도 사건 아시나요?

▲ SR-71 고속도 고공정찰기

북한은 1990년 초까지 미군의 SR-71 고속도 고공정찰기의 정찰활동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북한의 동부와 서부에서 SR-71은 고공정찰활동을 자주 진행했다.

이 때문에 인민무력부 산하 방공부대들은 SR-71 정찰기를 격추하기 위해 무척 고심했으나 허사였다.

그 이유는 음속의 3배 이상 속도를 가진 SR-71 고속도 고공정찰기를 제압할 수 있는 무기가 당시까지 북한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거품된 격추계획

70-80년대 북한의 신문과 방송을 보면 SR-71 고속도 고공정찰기의 정탐행위를 규탄하는 기사와 뉴스가 한달에 3-4번 꼴로 등장했다.

북한 인민군은 고공 정찰기를 격추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으나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김일성이 70회 생일을 맞는 1982년 4월15일 전까지 SR-71 격추를 수령님에게 드리는 선물로 하겠다며 눈에 핏발을 세웠다. 하지만 SR-71의 뛰어난 성능 때문에 빈번히 실패하여 격추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1983년 초 오진우는 소련의 미사일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북한의 미사일 전문가들과 SR-71을 격추시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도록 했다.

양국 전문가들은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와 평안북도 선천군 은정리 미사일 기지에서 격추하기로 하고 모의실험과 모의훈련을 가졌다.

함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미사일 기지는 여러차례 공개되어 알려졌지만 평북도 선천군 은정리 미사일 기지는 미공개였다. 은정리의 원래 이름은 원봉리다. 김일성은 사망 전 여러차례 원봉리를 현지지도 했지만 군사상 비밀에 붙여 숨겨 왔다. 은정리 미사일 기지는 90년대 중반까지도 그 존재가 비밀이었다.

남한이 전쟁도발을 하였다!

1983년 초부터 무수단과 은정리 미사일 기지는 SR-71을 격추하기 위해 24시간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3월 어느 날 레이더를 통해 SR-71 정찰기가 서해 강령반도에서 북쪽으로 정찰비행을 하고 있는 상황이 포착됐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에게 즉각 보고가 올라갔고 은정리 미사일 기지는 SR-71의 속도과 시간을 계산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러나 발사된 미사일은 정찰기를 명중시키지 못하고 궤도를 벗어나 황해남도 용연군 장산곶 갈밭에 떨어지고 말았다. 미사일이 목표물을 명중시키지 못할 경우 기지본부에서 원격조종하여 공중에서 폭파시켜야 했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미사일이 용연군에 떨어지자 영문을 모르는 이 구역 인민군 4군단에서는 미제(美帝)와 ‘남조선 괴뢰도당’이 전쟁도발을 한 것으로 판단하고 난리가 났다. 4군단은 무력부와 총참모부에 이를 보고했다. 그러나 상부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으니 사건을 비밀로 처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무력부에서 내려온 조사단은 갈밭에서 대충 조사를 마치고 서둘러 평양으로 올라갔다. 조선인민군의 위신을 떨어뜨린 이 ‘중대사건’은 비밀로 조용히 덮혀 버렸다. 하늘과 땅, 바다를 철옹성 같이 지킨다는 인민군대가 비행기 격추는 고사하고 발사한 미사일도 제대로 통제를 못해 이런 사고가 생긴 것이다.

만약 그 미사일이 남한에 떨어졌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 후과(後果)는 상상을 못할 것이다.

그 후 13년이 지난 1996년 평안북도 선천군 원봉리를 김일성의 현지지도 사적지로 정하고 리 소재지와 주변 마을에 다세대 주댁을 건설하고 이름도 은정리로 바꾸었다.

강재혁 기자(함흥출신, 2004년 입국) kjh@dailynk.com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