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DJ 訪北, ‘개인자격’을 강조하는 이유

▲ 김대중 前 대통령 ⓒ연합

김대중 전 대통령이 23일 자신의 6월 방북에 대해 몇 가지 의중을 드러냈다.

먼저 DJ는 “정부차원의 특사로 어떤 사명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방문”이라고 재삼 강조했다. 정부도 전직 대통령에 맞는 지원을 하겠지만, 특사가 아닌 민간인 방북이라는 점을 강조해오던 터라 특별할 것은 없다.

그런데 개인적 방문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DJ의 방북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를 강력히 희망했고,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6자회담에 대한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면 잘 검토하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직접 “융통성이 있는 대화를 나눌 것으로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사실상 특사에게 거는 기대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특사가 아니라는 점을 유난히 강조한다. 여당 일각에서 특사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명했다.

DJ는 이날 “김정일 위원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사전에 합의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추후 남북간 협의과정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김정일이 DJ를 평양으로 불러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아는 바가 없다는 의미다.

북측의 사전 언질이 없는 조건에서 성급하게 ‘정부 특사’ 운운하면 그 결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앞서게 된다. 방북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경우 DJ의 평양 이벤트는 그만큼 효과가 반감된다. 김정일이 DJ에게 ‘귀국 선물’을 주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내심 DJ가 가지는 상징성에 기대를 걸고 북한이 던져줄 선물을 고대하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 두 명이 김정일 눈치만 살피고 있는 셈이다. 만약 떡고물도 없다면 평양의 화려한 재상봉 이벤트라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머지 않아 ‘통일’이라도 이룰 것처럼 국민들에게 착시현상(정부는 이것을 화해와 협력의 메시지라고 표현할 것이다)이라도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DJ는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에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북미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의 근본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말 자체야 틀리지 않지만 본말이 크게 전도됐다.

대북문제의 최우선 과제는 핵 문제였다. 그러나 핵은 남북관계로 풀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을 뿐더러 당시 북한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으로 핵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6.15 정상회담은 애당초 통일분위기 조성용 밖에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미국이 도와주지 않아 남북관계가 더 발전되지 않았다는 말은 엇나가도 한참은 엇나간 것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2006년 대선을 앞두고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정권을 바꾸려는 세력과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기득권 세력간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세력은 권력 8년여만에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남북정상회담에 시큰둥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물질적, 제도적 양보까지 거론하며 다시 공을 들이고 나선 데는 이러한 국내 정치적 이유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민들이 DJ 방북에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DJ는 “나의 햇볕정책이 우리 현실에 가장 알맞은 최선의 길이라고 국민과 세계가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의 기본 취지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훌륭한 가설(?)이 실험을 거듭할수록 실패가 더욱 확증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햇볕정책 10년만에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하고, 한미동맹은 사실상 후퇴를 거듭해왔다.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는 침묵하고, 김정일의 범죄행위에는 눈을 감고 있다.

‘북한을 지원하면 개혁개방으로 나온다. 미국이 충분한 보상만 해준다면 북한은 핵을 폐기한다’는 대전제가 점점 실패한 정책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다. 이젠 재평가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황우석에 이은 제2의 국민적, 세계적 사기를 당했다는 평가가 나올 것이다.

DJ 방북을 한 달여 앞둔 지금 팔순의 전직 대통령의 잘못된 노욕에 끝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