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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한인권 특사가 개성공단의 노동자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ILO(국제노동기구)의 조사를 촉구한 뒤부터 개성공단 내의 노동자 인권문제가 한-미 간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이 레프코위츠 특사의 문제제기 이후 통일부는 강한 반박성명을 발표했고 월 스트리트 저널에 반박 칼럼까지 기고했다.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인권문제가 한-미 동맹 균열의 촉매제로 부상하고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통일부나 한국 대다수의 언론은 왜 개성공단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미국에서 부상하는지 그 본질을 정확히 읽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국내의 분위기는 개성공단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북한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좋은데 미국이 왜 이걸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나아가 미국이 개성공단을 억지로 문제 삼아 한국 정부의 대북 유화정책을 흠집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정확한 진단이 아니다.
美ㆍEU, FTA 협상에서 노동인권 중요시
개성공단 노동인권 문제는 북한인권이라는 맥락보다는 한-미 FTA 때문에 불거지게 되었다.
즉 한국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무관세 인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을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개성공단의 노동자 인권문제는 북 인권 문제에서도 우선 순위가 높지 않을 뿐 아니라 한-미 간의 현안으로 떠오를 문제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최근 FTA 추세는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적극 고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령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하는 국가에 강제노동, 아동착취 노동 등으로 생산되는 제품이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FTA의 결격 사유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과거 순수 경제적 문제로만 FTA가 취급되던 것과는 달라진 것이다.
자유무역협상에서 노동인권이 강화되게 된 배경은 미국, EU지역 노동 단체들의 요구가 강해진 데 그 원인이 있다. 미국, EU 노동조합들은 자유무역으로 자기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우려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때문에 FTA 상대 국가의 노동 인권을 명분으로 FTA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이다.
미국과 EU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FTA 체결에 있어서 노동인권에 대한 고려가 크지 않다. 때문에 한국은 싱가포르, 아세안과의 FTA 협상에서 개성공단 생산 제품에 무관세 적용을 합의했다. 스위스, 노르웨이 등 EU 비가입 국가들의 연합체인 유럽자유무역연합(EFTA)과의 FTA 협정에서는 개성공단 제품의 무관세 적용을 합의했으나 내용물이 60% 이상 한국산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는 싱가포르, 아세안과는 달리 개성공단에서 나오는 제품이더라도 사실상 한국산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 것이다.
미국, EU와의 FTA 협정에 있어서는 노동인권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력하다. 특히 미국은 AFL-CIO 등의 노동단체들이 FTA에 상당히 부정적이기 때문에 노동인권에 대한 보장을 비교적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 국내의 노동권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은 임금뿐 아니라 노동 3권에 있어서도 그 권리가 사실상 전무하다. 또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야근, 휴일 근무 등을 원하지 않더라도 북한 정부가 지시하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이는 강제노동의 일종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물론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북한 다른 지역 노동자들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노동 조건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성공단, 한-미 FTA 협상 자체를 어렵게 할 수도
그러나 FTA 협상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ILO 노동기준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한국이 개성공단 제품의 한-미 FTA 포함을 원한다면 개성공단 노동조건이 ILO의 최소 노동조건에는 부합한다는 객관적 증명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 북한인권 특사의 개성공단 ILO 조사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물론 미국과도 이런 까다로운 조사 없이 개성공단을 FTA에 포함시키는 소위 통큰 협상이 가능성은 지극히 낮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입장에서 대단한 양보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쌀, 영화 완전 개방, 즉각 개방 등 아주 큰 양보를 해야 한다. 이는 한국 정부에 아주 큰 정치적 부담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아무리 큰 양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개성공단의 FTA 포함은 그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악의 축, 범죄 집단, 위폐, 마약 밀수 등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비단 부시 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악의 축과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이 외교적으로 바람직한가 하는 데 있어서는 미국 내에서도 이견이 있지만 미국 상, 하원 의원들 대다수는 북한을 사실상 범죄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북한을 아는 미국 국민들 대다수도 동일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주권이 여전히 미치는 개성공단의 제품을 FTA에 넣으려고 하는 것은 FTA의 성공 가능성을 아주 낮게 만든다. ILO가 개성공단을 조사했을 때 개성공단의 노동 조건이 최소한의 국제 노동기준에 부합한다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 설령 미국 정부가 개성공단 노동조건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고 대폭 양보하여 FTA를 승인한다고 하더라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싱가포르, 아세안, EFTA와의 협상에서 개성공단이 포함되었다고 해서 미국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커다란 오산이다. 개성공단의 한-미 FTA 포함은 한-미 FTA 자체를 어렵게 할 뿐이다. 나아가 그나마 잘 추진되고 있는 개성공단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될 것이다.
하태경/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