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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북 압박을 대폭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북핵 해결의 큰 틀은 깨지 않지만 대북 금융조치와 안보리 대북결의 1695호에 따른 제재조치 마련에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다.
이러한 조짐은 미 국무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동아시아 순방을 통해 가시화됐다. 힐 차관보는 방한을 마치는 자리에서 “북한이 9.19 성명이행을 원치 않는 게 문제”라면서 “유엔의 모든 회원국들이 안보리 결의(1695호)를 이행해야 하며, 이렇게 되도록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힐 차관보는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협상파로 분류된다. 그는 이번 방중길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북한의 의중을 들어볼 용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은 반응하지 않았고, 미국은 북한이 북핵 폐기를 위한 9.19 공동성명을 이행할 의지가 희박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북한이 6자회담을 핑계로 시간을 끄는 행위도 더 이상 봐주지 않을 모양새다.
노무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헨리 폴슨 미 재무부 장관을 면담하기로 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그는 북한에 대한 금융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주무장관이다. 이 자리에서는 대북 금융제재가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할지, 한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명분 마련을 위한 유화조치를 요구할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양국의 시각 차이가 분명한 이상, 양국의 원칙적인 접근 수준에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은 힐 차관보의 동아시아 순방이 끝나고 한미정상회담을 거친 이후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 전격적으로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할 공산이 커졌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은 유엔총회를 전후해 동북안 안보 논의를 위한 새로운 다자기구 개최를 희망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동참 없는 대북 압박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란과 북한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어 보인다.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하여 가장 큰 현안이 되고 있는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의 룰을 만들기 위한 제안이라는 분석도 있다.
톰 케이시 미 국무부 대변인은 12일 “북한의 핵무기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지원 차단을 위해 모든 조치를 강구 중이며, 이에 대한 토론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는 “대북제재 조치가 대폭 확대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면서 “새로운 조치보다는 기존의 대북 조치를 확대 심화시키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를 통해 북한 선박에 대해 높은 수준의 해상 감시체제를 발동하거나 전 세계적으로 북한계좌 퇴출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할 수 있다”면서 “결국 금강산이나 개성공단 같은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도 큰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현 국면에서 미국이 대북 압박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동원할 것은 없다”면서도 “대화로 북한의 핵 포기가 안 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압박 수단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되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부시 행정부가 이를 간과하지는 않을 것” 이라면서 “결국은 핵 보유를 추진하는 북한과 이를 용납하지 않은 미국의 근본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