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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북한의 선전매체가 이번 수해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판은 7일 “7월 14~16일 일부 지역에 내린 비로 549명의 사망자와 295명의 행방불명자, 3천43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며 “2만8천747 가구의 살림집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이는 7월 21일 조선중앙방송이 막연하게 ‘수백 명의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발생했다’는 보도와 달리 구체적인 숫자까지 적시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북한은 10년 전 홍수피해 때도 정확한 숫자를 발표하지 않았다. 또 북한당국이 정확한 통계수치를 발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사망자 1만명설’에 대한 반박(?)
첫째, 대북지원단체 등 남한 내에서 ‘1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일 수 있다. 말하자면 ‘우리 공화국이 1만명이 사망할 정도로 비 피해를 못막았다는 말이냐’는 ‘항변’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3일 “100년만의 홍수로 인명피해가 1만 명에 달하고 이재민이 130만~150만 명에 이르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며 남한의 대북지원 필요성을 강조하자, 5일 평양방송은 “과장되고 왜곡된 모략선전이며 악의에 찬 비방중상”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북한주민들이 이같은 인명피해 사실을 정확히 알게 되면 곤란하다. 이 때문에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 발표하지 않고 외곽의 조선신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7일 조선신보가 발표한 숫자도 구체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보다 바꿔서 발표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당국이 외부에 공개하는 각종 통계 숫자를 ‘발표 목적’에 따라 발표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탈북자 정명우(가명, 노동당 출신)씨는 “한자리 숫자까지 정확히 발표한 것을 보면 구체성을 보이려는 노력이 보인다. 그러나 허술한 북한의 통계 시스템에 비춰볼 때 이렇게 정확하게 조사하기는 어렵다”며 “각 인민반 별로 통계를 내지만, 숫자는 당이 얼마든지 늘이거나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남한정부가 지원해줘도 좋다’는 사인일 수도
둘째, 이번 기회에 미사일 발사로 초래된 국제적 고립을 완화시켜 보려는 움직임으로도 해석된다. 유엔 대북결의안이 채택된 후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됐다.
이런 조건에서 피해상황을 이례적으로 발표해 국제적인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선전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번 발표를 계기로 외부세계의 대북지원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WFP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수차 지원의사를 보내고, 남한에서 대북지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못 이기는 체’ 수락할 수 있다는 제스처로도 보이는 것이다.
북한은 10년 전 홍수때도 소위 ‘국가체면’ 때문에 국제사회의 긴급지원 요청을 질질 끌다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 죽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까지 대규모 아사자를 낼 경우 10년 전과 달리 민심이반 현상이 빠르게 가속화될 수 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으면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 다니는 유민화(流民化) 현상이 나타나고, 장마당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등 2중의 어려움이 제기될 수 있다. 미사일 발사 실패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들이닥친 ‘100년만의 대홍수’는 김정일 정권의 악재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은 ‘인도주의 지원은 받아들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나름대로 내외적인 여러 상황에 대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