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北, 남북공조 통해 제재국면 돌파 시도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 북한 조문단이 현인택 통일부 장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난’ 일색의 빗장을 풀고 ‘남북관계 진전을 희망한다’는 김정일 구두메시지를 전해 북한의 태도 변화 의도와 향후 남북관계 변화 방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초 북측 조문단의 방문 과정은 김대중 아태평화센터 주도로 이뤄졌다. 또한 방문 일정이 정부 당국에 통보되지 않아 사설 조문단이란 말까지 나왔다.

따라서 김기남 비서, 김양건 통전부장 등 고위급 인사들이 포함된 방남 일행이 철저하게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합의한 6•15, 10•4선언을 강조하고 남남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북측은 이러한 예상을 깨고 김정일이 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파격적인 ‘우리민족끼리’ 전술을 구사했다.

김정일 메시지는 남북관계 전환을 위한 포괄적 제안

김 비서를 통해 전달된 메시지에 대해 청와대는 ‘남북협력 진전에 관한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로만 소개할 뿐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간 대결구도를 협력구도로 바꾸기 위한 공세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은 앞선 22일 현 장관과 면담하기 앞서 “이번 정권(이명박 정부) 들어 첫 당국간 고위급 대화임을 생각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도 있어 향후 남북 당국간 회담이 다방면에서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북한의 특사 조문단이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에 대해 “석상에서는 북과 남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데 대한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밝혔다.

당장은 북한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통해 이산가족상봉,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12•1조치 해제 등의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협의가 시작되고 개성공단 토지임대료 인상과 공단 노동자 임금 인상 문제가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북 조문단 파격 행보는 한미균열 의도?

북한은 미 여기자 석방 이후 다방면으로 북미 양자대화를 촉구해왔지만, 미국은 6자회담 복귀 전에는 양자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다며 북측의 제안을 일축했다.

이 와중에 나온 김정일의 구두 메시지 전달은 제재국면을 타개 위한 의도가 담겨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공조를 약화시키고 경제제재에 따른 달러 부족을 만화하기 위한 대남 평화공세라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등을 통해 정책 전환 분위기를 조성해 왔다”면서 “이번 김 비서 일행의 청와대 방문도 지금 당장 즉각적인 입장 변화를 취하기보다는 핵실험 이후 국제정세와 제재국면의 어려움 속에서 정책전환을 위한 노림수”라고 해석했다.

유 교수는 한미관계의 균열을 노리는 북한의 의도일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한미간 공조흐름을 볼 때 우려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면서 “우리 정부로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남북대화 과정 방식에서 원칙적인 자세를 취할 시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장도 “북한이 그동안 ‘통미봉남’ 태도를 보이며 미북관계가 어려울시에는 남북관계를 호전시켜 왔던 것이 북한의 전통적인 대외정책의 패턴이었지만, 최근 미국, 남한 모두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