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2005] 실리추구 속 새 문화유입

“일심단결의 위력은 올해 미제와 총포성 없는 대결전에서 더욱 뚜렷이 과시 됐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2005년 한 해를 이렇게 정리했다.
북핵을 둘러싸고 숨가쁘게 전개된 미국과의 대립은 북한 주민들에게 체제붕괴와 전쟁발발에 대한 위기감을 불어넣어 사회 분위기를 경직시켰으며 그것은 자연스레 북한 내부의 단결을 가져왔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편으로는 농업을 주공전선으로 삼아 10년만의 대풍을 일궈내고 전국 공장과 기업체의 현대화 사업을 속속 진행하는 등 경제 건설분야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풍년과 함께 남한과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북 주민은 기아에서 탈출해 한숨을 돌리게 됐다.

이를 발판으로 북 당국은 식량공급을 정상화하며 주민들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죄었으며 나아가 김정일 체제의 지향인 선군(先軍) 정치의 지지기반과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2002년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사회주의 체제를 파고드는 시장경제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장.단점을 분석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양상을 보였다.

본격관광을 앞둔 개성지역에서 엄격한 통제밑에 간이매대(가두매점)를 관광객이 이동하는 유적지마다 설치하고 북측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까지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은 현 북한 사회의 좌표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북-중 국경지역에서 남한의 인기드라마 CD가 유포되고 영어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북 체제의 개혁.개방 시기가 멀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콤맹(컴맹)’ 탈출을 강조하고 평양을 중심으로 휴대전화 기지국이 확충되는 등 IT에 대한 관심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특히 북 주민 220만 명이 관람하고 남한 관광객 7천300명이 평양땅을 밟도록 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내부단결과 실리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은 체제 차원의 ‘이벤트’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금강산 관광객 100만 명 돌파와 다방면에 걸친 남북교류는 남한문화의 북 유입을 촉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 주민들 사이에서는 스트레스, 몸짱, 얼짱, 싸가지 등 남한의 용어들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마저 “북쪽 대표 누군가가 남쪽 회담에 갔다 와서 폭탄주를 배워 여러 사람에게 가르쳤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북 잡지가 여성바지 차림은 우리식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북 당국이 장발족에 대해 공개망신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에 새로운 문화현상이 침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화.스포츠 분야에서는 북녀(北女)의 활약상이 눈길을 끌었다.
여자유도의 계순희 선수가 세계유도선수권대회(57㎏급)에서 우승하면서 대회 3연패를 달성해 국가원수급 환영을 받았으며 세계여자권투평의회(WBCF) 밴텀급 챔피언인 김광옥은 1차 방어에 성공했다.

또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대학에 유학하고 있는 북한 여성 피아니스트 윤진복은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21세기 예술 국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해 주목을 받았다.

축구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은 이란전에서 오심 논란에 따른 관중항의로 일본전이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끝내 본선 진출은 좌절돼 북 주민들은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종교 분야에서는 북한 조선불교도연맹이 남한 천태종과 공동으로 16세기에 소실된 개성 영통사를 500여 년 만에 복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도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함께 평양 봉수교회를 신축키로 하는 등 남북간 교류가 활성화 됐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올해 북한사회는 강성대국 건설에 발맞춰 7.1조치 이후의 공과를 보완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