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친구들에게] 동혁아, 영희야, 용만이, 철준아…보고싶다…

▲ 농촌일을 돕는 북한의 아이들 <사진:연합>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눈물 나게 보고 싶은 북녘의 친구들, 동혁이, 영희, 용만이, 철준아!

내가 엄마 손을 잡고 두만강을 건넌 지도 4년, 한국에 온 지도 2년이 지났구나.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면서도 그때 나는 뭐가 뭔지 몰랐고, 낯선 중국 땅에서 2년 동안 숨어 지내면서 온종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힘들어 엄마에게 투정도 많이 부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서 너희에게 편지를 쓴다.

낼 모레 5월 5일은 한국에서 ‘어린이날’이야. 우리 조선에서 6월 1일을 ‘국제아동절’이라고 부르잖아. 학교에서 체육대회하고 원족(소풍)도 가는 날 말이야. 한국에서는 ‘국제아동절’이 5월 5일이고 ‘어린이날’이라고 불러. 나도 이번이 한국에서 두 번째 맞이하는 ‘어린이날’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물론 지금은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이 되었지만 말이야…ㅋㅋㅋ

한국에서 ‘어린이날’은 그야말로 어린이가 왕이 되는 날이야.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고, 그날만은 이것 사달라 저것 해달라 떼를 써도 나무라지 않지. 온 가족이 대공원에 놀러 가거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먹곤 해.

내가 이렇게 ‘어린이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국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야. 물론 나는 여기서 잘 먹고 잘 입고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잘 살고 있지만, 지금도 나는 무릎싸움(닭싸움)을 잘하던 동혁이, 소꿉동무 영희, **천에서 썰매 타며 놀던 용만이, 불장난하고 놀다 외양간을 홀딱 태워먹고 같이 야단맞았던 철준이, 너희들이 너무도 보고 싶고, 꿈 속에서도 마음은 고향을 향해 달려간다. 통일이 되면 꼭 너희들을 찾아갈 거야.

한국 어린이들 너무 행복해서 탈이야

생각해보면 조선에서의 삶은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지. 우리 함께 겪었었잖아. 먹지 못한데다 파라티푸스에 걸려 죽었던 친구도 많았고, 부모를 잃고 장마당 꽃제비가 되어 놀림 받던 친구도 있었고, 출석을 하지 않는 친구들도 많았고, 수업 끝나면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산에 올라가 풀도 뜯고 나무껍질도 벗기고… 다시 그때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

어디 그뿐이니. 소년단에서 꼬마계획으로 내려온 과제를 하느라고 파동(破銅)이랑 파철, 파지를 모으느라 고생하던 일들, 할아버지랑 사금 캐러 뙤약볕 아래에서 모래를 문질러대며 땀 흘렸던 일, 학습장이 없어 다 쓴 학습장을 지워 다시 쓰려다 보니 여기저기 찢어져 난처했던 기억들이 생생하다.

한국과 조선을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여기 친구들은 너무 행복해서 탈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선에서는 먹지 못해 굶는 친구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먹기 싫다고 버리고, 좋은 음식만 먹으려고 하고, 조선에서는 전자오락기 같은 것이 무엇인지 상상도 못하는데 여기선 하루 종일 그것만 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고, 옷이 조금만 해져도 입지 않으려 하지. 좋은 책상과 걸상, 자기 방을 갖고 있으면서도 집을 나가려 하고, 부모에게 대드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막 때려주고 싶단다. 자기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는 것도 불행한 거지.

수령님 잘 모셨는데, 조선은 왜 못살까?

아무튼 나는 조선도 한국처럼 잘 살았으면 좋겠어. 한국에 와서 내가 제일 크게 느낀 건 여기서는 수령님을 하늘처럼 모시지 않는다는 거야. 여기 와서 대통령을 막 욕하는 어른들을 봤을 때 참 이해가 안 되고 나쁘게 보였지. 집안에 가장이 있듯이 나라에 수령이 있는 법인데 어찌 저리 무식하게도 자기 수령을 욕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야. 그런데, 나는 조선에서 우리 수령님이 최고라고만 알아왔는데, 수령님은 전 세계에서 존경 받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중국에 가자마자 그걸 알았어. 그리고 세계 어느 나라도 조선처럼 수령을 떠받드는 나라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렇게 ‘위대한 수령님’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성스레 모시고 있는데 왜 조선의 사는 형편은 어려울까? 나는 그것이 수령님을 ‘너무’ 모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모시더라도 적당히 모셔야 되는데, 세계 다른 나라들처럼 수령님이 잘못을 하면 “이것이 잘못되었소”라고 제기를 해줘야 하는데, 조선에서는 그렇지 못하잖아. 그래서 간부들도 수령님만 믿고 세도를 부리고, 수령님은 인민들의 말은 못 듣고 간부들의 말만 듣다가 오늘 조선이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 내가 너무 거창한 말을 했나? ㅋㅋㅋ

어른되면 조선도 으뜸가는 나라

조선에도 자유가 와서, 조선 사람들도 민주주의가 뭔지 알게 되어서, 그래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한국 아이들처럼 자기 배부른 걸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이 되지는 말고, 부모형제의 소중함을 알고 배고픔의 고통도 아는 숙성한 아이들이 조선의 어른이 되면, 우리 조선도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가 될 것이라 믿어. 하루 빨리 그날이 와서, 우리 동혁이, 영희, 용만이, 철진이, 모두 모두 봤으면 좋겠다. 힘껏 껴안고 실컷 울어봤으면 좋겠다.

친구들아, 그때까지 나도 건강하게 잘 있을게 너희들도 부디 건강하게 살아있으렴. 우리 듬직한 청년이 되어 만나자. 아니, 우리가 청년이 되기 전에 저 분단의 철책선이 하루라도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한국 <어린이날 노래>의 마지막 구절이야. 노랫말처럼 푸르고 푸른 우리들 세상을 위해, 우리, 힘차게 살자. 안녕, 안녕, 친구들아, 그날까지 안녕!

2005년 5월 3일

한국에서 너희들의 딱친구 영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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