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국정연설] 표현 유연-숨겨진 비수, 北압박 강화된다

▲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부시 미국 대통령이 새해 국정연설을 했다. 어느 나라 국가수반이든 하는 국정연설이지만 세계 유일패권을 행사하는 초강대국 대통령의 연설이다 보니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은다.

올해에도 부시 대통령은 1시간에 달하는 긴 연설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운영방침과 세계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 대외정책 1순위는 역시 中東

이번 국정연설에서 한국인들은 단연 미국의 대북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역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문제가 차지하는 순위는 한참 낮다는 것이 새삼 증명되었다.

이번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중동문제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팔레스타인과 하마스, 이라크에서의 철군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이란에 대해서는 “소수의 엘리트 성직자들에 의해 인질로 잡힌 국가이며, 국민들을 고립시키고 억압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레바논에서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성격을 이야기했다. 이란 국민들에게 “미국은 언젠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란과 친밀한 친구가 되길 희망한다”고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북한 핵문제보다 훨씬 최근의 일이며 국제규범을 크게 벗어난 적이 없는 이란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밝혔지만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북한의 위폐 ∙ 마약 ∙ 대량살상무기 ∙ 돈세탁 ∙ 가짜 담배 및 비아그라 등 국제범죄 행위에 대해 쉼없는 난타전을 벌이기는 하겠지만 미국이 대외정책의 핵심으로 북한문제를 두기는 어렵다는 이야기가 다시 확인되었다.

◆ 보다 논리정연해진 ‘민주주의 확산론’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 ∙ 이란 ∙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표현해 화제가 됐다. 2003년에는 ‘무법정권(Outlaw Regime)’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2004년에는 ‘가장 위험한 정권 (the most dangerous regime)’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2005년 2기 취임사와 국정연설에서는 ‘폭정의 종식’ ‘자유의 확산’이라는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흔히 이러한 용어에 집착해서 자극적인 용어가 등장하면 ‘무언가 큰 일이 있을 것’, 그렇지 않으면 ‘유연해 질 것’이라는 해석을 하곤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표현은 유연하게 바뀌었을지 몰라도 ‘민주주의 확산론’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신념은 더욱 강해지고 논리도 정연해지는 흐름이 분명히 보인다.

이번 국정연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1945년에는 지구상에 민주주의 국가가 20여 개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금은 122개 국가에 달한다. 2006년 통계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라고 한 부분이다.

이는 <프리덤하우스>의 세계 자유도 수치 등에 의존한 분류법으로 보이는데, <프리덤하우스>가 지난해 말 공개한 ‘2006 세계의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 가운데 약 30억 명이 89개 ‘자유국’에 살고 있으며, 약 12억 명이 58개 ‘부분적 자유국’에, 약 23억 명이 45개 ‘비자유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 대통령은 이들 비자유국 가운데에서도 시리아, 미얀마, 짐바브웨, 북한, 이란을 특별히 거명하면서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에 거주하는 ‘나머지 절반’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국정연설에서는 미국내의 고립주의와 보호주의 이론에 대해서도 정면 비판하고 있는데, “미국은 고립주의의 잘못된 안락함을 거부한다”고 밝혀 지구상 ‘나머지 절반’의 문제에 적극 개입할 뜻을 분명히 강조했다.

집권 1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9.11 테러에 대한 보복과 응징의 톤이 강했지만 집권 2기에 들어서는 그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민주주의 이상(理想)을 본격적으로 실현해 나간다는 뉘앙스가 역력하다. 이번 국정연설에서는 그런 이상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한 대목이 여럿 눈에 띈다.

미국이 2차대전에 참전하면서 수세에 몰렸던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사례, 소련과 동유럽에 민주화 바람을 불어넣어 체제전환을 유도했던 사례 등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의 부름을 억압받는 이들에게 전달해 세계를 평화로 전진시킬 것”이라고 한 대목은 부시 대통령의 민주주의 확산에 대한 신념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 모든 북한문제 제기하며 정면돌파할 것

북한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은 배경 속에 올해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도 분명해 보인다.

지난 2~3년간 핵문제에만 매달렸다면 이제는 민주주의 확산이라는 목표 아래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한 압력이 핵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는 미국 내외부의 여론도 정면돌파 할 것으로 보인다. 몇 달 전부터 이미 그러한 흐름은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핵은 핵이고, 인권은 인권이고, 위폐는 위폐다”라는 식으로 나갈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임기 중에 포괄적인 북한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는 불투명해 보이지만, 이번 국정연설의 톤을 보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의지는 더욱 확고해 보인다. 대외정책의 철학과 원칙이 수립되면 좌우를 살피지 않고 나아가는 부시 행정부 사람들의 스타일이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표명 아래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만큼 남한 정부와의 정책적 마찰과 한미 균열이 심화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