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행 탈북자들] ②탈북자사회의 明과 暗

2006년 5월 미국땅에 탈북자들이 첫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후 2년4개월이 흐르면서 탈북자들 사회에도 명과 암이 갈리고 있다.

1-2년여의 짧은 정착기간에도 한민족의 근면정신을 발휘하며 억척스럽게 이국땅에서 자립에 성공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일자리를 못 구해 어렵게 생활하거나 미국행을 후회하며 한국행을 고대하며 방황하는 경우 등 다양한 삶을 살고 있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들 중 지난 15일 30대 탈북여성 김미자씨(가명.버지니아주 거주)가 북한인권법에 따라 영주권을 받았다. 김씨의 영주권 취득은 지난달 시카고에 사는 오모씨 그리고 최근 뉴욕에 사는 김모씨가 이민국으로 부터 영주권을 발급받은 사례와 함께 탈북자들이 영주권을 취득한 첫 케이스로 기록된다.

김씨는 지난 2006년 5월 태국에서 난민지위를 받아 미국에 온 1세대 탈북자로, 미 정부 산하 단체로부터 정착금을 지원받고 미국 정부로부터 임시취업증(노동허가권)을 발부받아 생활해오다가 작년에 영주권을 신청해 1년만에 성공한 셈.

또 임신 상태로 작년초 미국에 입국한 여성 Y씨는 남동부의 한 도시에 정착해 작년 4월 건강한 딸을 출산해 미국에서 자녀가 시민권을 갖게 된 탈북자 가정 1호가 되기도 했다. `리사’라는 이름의 아기는 현재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으로 연합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작년 3월 동부지역에 정착한 40대 여성 탈북자는 딸(고교생)과 함께 최근 20만달러짜리 주택까지 구입해 탈북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여성은 낮에는 식당 주방, 밤에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주말에도 시간제로 일하는 `3가지 일’을 하는 억척 행보를 통해 저축한 뒤 방 4개짜리 주택을 구입해 이중 방 2개를 임대해 주는 형식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 게 유천종 아시아태평양인권협회장(미주반석교회 목사)의 전언.

지난 3월 미국에 입국한 20대 탈북여성 K씨는 어머니 및 여동생과 함께 서부지역의 한 도시에 정착, 저녁부터 새벽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낮에는 커뮤니티칼리지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

이 여성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다음 달이면 6개월째로 미국 정부의 지원이 끊긴다”면서 “당장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열심히 살아서 이겨낼 것”이라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또 2006년 5월 미국에 와 뉴욕에서 일본 초밥집 기술자로 정착한 한 탈북 남성은 “한국에 있는 친구 탈북자들과 통화해보니까 미국에서 정착하기가 더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탈북자들도 있지만 반면, 미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방황하는 탈북자들도 꽤 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난민보호단체 관계자는 중서부의 한 소도시에 정착했던 40대 남성 탈북자 2명은 1년이 넘도록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쪽으로 이사한 뒤 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또 일부 한인들이 많은 도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경우 보호단체에서 권하는 일자리 대신 한인들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경향도 있고, 심지어는 교회에서 간증하며 생활비를 버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부 탈북자들은 미국으로 이주한 것을 후회하면서 한국으로 가는 방안을 찾으며 골몰하는 경우도 있어 한국에 정착했다 실패한 일부 탈북자들이 미국으로의 밀입국 등을 시도하다 적발되는 사례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지아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아시안 아메리컨센터의 장성희 매니저는 “탈북자들의 경우 언어장벽 때문에 한인이 운영하는 회사나 업체에서 취업을 도와줘야 하는데 일부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어 취업에 어려움이 크다”면서 “또 일부 종교단체들의 경우 조건 없는 지원으로 탈북자들의 자립의식을 약화시키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회장(미주반석교회 목사)은 “탈북자들이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피해를 당할 것을 우려해 한국 보다 미국을 택하는 경향이 있지만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등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면서 “망명신청 단계에서 최종 망명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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