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스토리] 양강도 갑산군 제대군인 총기 난사사건

▲강화 총기탈취범을 건문중인 경찰. YTN 화면캡쳐

6일 저녁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이 발생했다. 민간인이 현역 군인을 공격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보면서 범죄는 국경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살았던 북한에서는 이런 총기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워낙 병영화된 사회인 만큼 군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총기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물론 이러한 사건은 대개 개인적 원한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

정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사건이 문득 생각났다. 양강도 갑산군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8년 3월 말경. 그날도 출근은 안하고(배급도 없으니 출근하는 사람이 없었다) 개구리를 잡으러 농촌에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양강도는 봄이면 개구리를 잡아 중국에 파는 장사가 인기가 있다.

오후 3시쯤으로 기억된다. 농촌으로 떠나려고 자전거를 수리하는데 갑자기 공장 세포비서가 찾아와 ‘적위대 비상소집’을 알려왔다.

노농적위대는 46세 이상 60세까지의 남자위주(여자 17~30세)로 직장 및 행정단위별 제대로 편성되어 있다. 민방위와 함께 직장 및 주요시설의 경계, 지역방어 및 대공방위를 기본임무로 한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무슨 말라빠진 비상소집이야? 집에 없더라고 말해주오.” 화가 나서 내뱉었는데 세포비서가 사정하며 내 팔을 잡았다.

“임마! 지금 정신 있어? 아무데도 못가. 길이란 길은 다 막아놨다. 사평리에서 무장도난 사건이 일어났다”고 다급하게 말했다. 세포비서의 말에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무장 도난사건이라면 모든 길이 다 막힐 것이 뻔했다. 하는 수 없이 비서를 따라 갑산군 당위원회 마당으로 갔다. 정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전 같으면 아무리 적위대 비상소집이라 해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이날은 밖의 큰길까지 사람들이 가득 메워 섰다.

인근 3개군 일대 안전원, 적위대 총동원

우리공장 대열을 찾아 갔는데 이미 지배인과 초급당비서가 인원점검을 하고 있었다. 늦게 도착했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미 지시가 있었는지 공장별로 대열지어 떠나기 시작했고 우리공장도 사평리로 통하는 허천강 일대로 이동했다.

우리공장의 임무는 허천강 기슭과 연결된 산기슭의 숲을 수색하는 작업이었다. 안전부와 보위부, 그리고 ‘마흐노 부대’ 병사들(갑산군에 있는 43저격 경보병부대. 도적질과 강도질이 심해 주민들이 러시아 혁명 당시 무정부주의자 부대 이름으로 부름)까지 총동원된 것을 보니 대단히 중대한 사건 같았다.

1미터 간격으로 한사람씩 나무막대기나 목총(나무를 깎아 만든 총)을 들고 숲이나 마른 풀숲을 뒤지는 것이었다.

수색지역까지 도착하니 오후 네 시 반이 지났고 한 시간 가량 전진하다보니 날이 어두워졌다. 더이상 수색도 힘들어졌는데도 그 자리를 밤새 지켜야 한다면서 철수하지 않는다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후 공장에서 동원된 인원에 따라 한 두 사람씩 군당위원회에 가서 쌀을 타다가 밥을 지어 먹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노란 비닐주머니에 녹색으로 ‘대한민국’이라고 씌어진 40kg짜리 쌀 세포대가 공장 몫으로 돌아왔다. 공장 직원들이 대한민국 쌀을 먹어보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밤새 여기저기서 불길이 타오르고 추위에 덜덜 떠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섰다. 꼭 무슨 영화를 찍는 것 같았다. 지배인과 비서들이 다니며 한곳에 몰려있지 말고 자기자리를 지키라고 야단들이었으나 누구하나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이 되자 자동차로 추가 병력이 도착했다. 혜산시에서 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모두 안전원들과 무장한 군인들이었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 했는데 오전 10시경이 되자 비상소집 해제 지시가 떨어졌다. 방금 도착했던 사람들도 모두 되돌아갔다. 사건의 자세한 내막은 며칠 뒤에야 파악됐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군인이 집에 돌아왔는데 식구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제대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군복과 신발까지 다 팔아서 쌀을 사 집안 식구들을 살리려고 애썼다. 중학교 때 동창들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도벌(불법 벌목)하여 돈을 모아 쌀을 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무들의 집을 찾아갔는데 그들이 푸짐한 고기와 술을 놓고 먹자판을 벌리고 있었다. 그는 동무들의 손에 이끌려 함께 술과 고기를 먹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동무들이 농장 간부의 집돼지를 훔쳐와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돼지 잡았다’ 누명 쓰고 폭행 당해

양심상 거리끼는 일이었으나 자기가 한 행동이 아니고 더욱이 고기를 먹어본 지 너무 까마득한지라 이것저것 가릴 형편이 못됐다.

그런데 이 사고가 발각돼 그는 동무들과 사평리 분주소(당시 보안소, 경찰 파출소)에 갇혔다. 범행에 가담한 동무들은 모두 안전부에 넘겨져 노동단련대로 갔다.

범죄에 직접적 가담하지 않은 그 대군인은 풀려 나와야 했다. 그러나 분주소 안전원들(경찰)은 그를 풀어 주지 않고 그동안 지은 죄를 모두 고백하라고 했다. 군대에서 도둑질한 것까지 다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가 죄가 없다고 항의하자 분주소 비서라는 자가 “아직 사회물이 안 들었다.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놓아야 한다”며 두 손을 묶어놓고 사정없이 뭇매를 안겼다. 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당직 근무자만 남겨두고 모두 점심 먹으러 갔다.

그는 군에서 10년 동안 국가에 충성한 자신을 도둑으로 모는 안전원들에게 크게 분노했다. 제대 군인들은 군대에서 각종 훈련을 받았고 자존심도 센 편이다.

아직 이른 봄이라 분주소에서 난로를 피웠고 나무를 패던 도끼가 난로 옆에 있었다. 그는 도끼날로 포승 끈을 풀고 당직근무 안전원을 도끼로 찍어 눕혔다. 그 다음 무기고 자물쇠를 부수고 자동소총을 꺼내 탄창으로 탄약을 채웠다. 그리고 권총 한정과 탄약 300발을 경비실 모포 속에 싸고 점심 먹으러 간 안전원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후 1시가 지나고 점심 먹으러 갔던 안전원 한 명과 분주소 비서가 함께 마당에 들어섰다. 그 순간 그는 창문으로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앞에 선 안전원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뒤에 섰던 분주소 비서라는 자는 다리와 팔에 부상을 입고 철문 뒤로 달아났다.

안전원을 사살한 뒤 그는 탄약이 든 모포를 안고 분주소 뒷산으로 올랐다. 그가 달아나자 갑산군은 물론 주변의 삼수군과 혜산시까지 불똥이 튀었다. 현직 군인들, 안전부, 보위부와 적위대까지 총동원되었다.

하지만 그는 멀리 달아나지 않았다. 이미 더 달아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산속에서 모포를 쓰고 밤을 샌 그는 다음날 아침 8시쯤 안전원들이 출근할 시간을 기다려 산을 내려왔다.

그가 내려온 길목에는 경계를 서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는 길가를 가로질러 갔다. 순간 보위 지도원이 걸어오는 모습을 봤다. 몸을 피하기에 늦자 그는 태연이 지도원을 지나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보위지도원도 무장탈주자임을 직감하고 그냥 지나치는 흉내를 냈다.

탈주범이 지도원을 지나쳐 몇 발을 걸어가는 순간 지도원이 그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가 돌아서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고 사건도 막을 내렸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그의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김철만(가명)/2004년 국내 입국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