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박인중] 6.15 남북공동선언 5주년을 맞으며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사회에서 현실을 바로 보기란 매우 힘들어 보인다.

언론계, 정계, 재계, 법조계, 학계, 일반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포진한 – 딱히 이들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과거 386/486세대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몇 가지 한계적 사상을 신념화시킨 사람들, 혹은 경향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도 이들의 세치 혀에 명운을 걸고 있는 사람들 정도 – 이들에 의해 여론은 호도되고 그러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을 진실처럼 인식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동상이몽의 남과 북

요즘 언론에서는 6.15 남북 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행사 이야기로 한창 시끄럽다.

대학가에서는 한반도기가 그려진 대형 플랜카드가 걸리고 ‘조선은 하나다’라는 박물관 구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 했을 때처럼 민족이란 말이 온 국민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민족이란 말로 흥분하기 이전에 북한이 과연 우리와 같은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 이유는 북한이 절대자 김정일 위원장에 의한 전체주의 독재국가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역사속의 모든 독재자들이 그랬듯이 자국민의 안위를 돌보기보다는 자신의 체제유지를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독재자와의 타협은 역사의 조롱거리

이런 독재자에게 평화와 공존을 위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그걸 믿었던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상처만 안겨줬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과거 소비에트의 독재자들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용해 폭정체제를 연장 해왔던 예는 이를 잘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한때 하마스나 지하드 세력들의 테러활동을 멈추게 하고 중동지역의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아라파트 역시 ‘오슬로 협정’과 같은 평화 약속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각 종 지원을 받아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는 여전히 폭정을 일삼으며 국제사회를 보란 듯이 조롱했던 일도 깊이 생각 보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국제사회의 원조는 폭정 연장의 에너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와 취지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희대의 독재자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북한 사회는 경제적인 몰락으로 사회 내부적인 에너지가 더 이상 없다. 북한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국제사회의 원조와 자국민에 대한 탄압을 줄이고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길이 있을 뿐이다. 후자는 체제의 몰락을 불러 올 것임이 명백한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국제사회의 원조는 자국민에 대한 탄압을 줄이지 않고서도 폭정을 연장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할 수 있는 선택은 각종 협약과 선언을 통해 지원을 받는 데 있다. 나중에 약속을 어기거나 공동선언을 이행하지 않는 문제는 또 다시 외부 요인을 상정해서 깡패처럼 배 째라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공동 선언 이후 지난 5년 간 약속사항 이행을 위해 각종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측은 북인가? 남인가? 또한 이 핑계 저 핑계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도 없이 각종 약속들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측은 북인가? 남인가?

우리는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남한 길들이기 훈련장 된 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5주년 기념식의 방북단의 규모도 처음과 달리 대폭 축소를 요구해 왔다.

종전의 당국 70명, 민간 615명에서 당국 30명, 민간 190명을 요구해 왔다. 이런 요구의 이면에는 최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강경 발언들에 대한 불만과 오는 1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신의 이같은 불만을 전하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라는 요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 하고 있다.

독재자들에게 외부의 적은 폭정을 강화 하면서도 내부 불만은 덮을 수 있는 필수존재다. 또한 국제사회와의 약속과 선언을 지키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계거리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이번 축소 요청 역시 미국을 핑계로 한판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자의 본질을 정확히 봐야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지난 5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은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외부로부터(한국과 미국) 얻은 직/간접적인 힘을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위해 사용한 것이 아니라 남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고 자신의 폭정을 연장하는데 쓰였을 뿐이다.

햇볕정책과 그의 일환인 금강산 관광을 통해 제공된 수십억 달러의 돈이 핵무기가 되어서 돌아왔고 그 핵무기로 한반도의 7000만 사람들을 독재정권을 지키기 위한 볼모로 잡고 있다.

이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인가? 이 모든 책임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 우리에게 있다. 한때나마 독재자와도 평화만 보장 된다면 공존할 수 있으리라 헛된 꿈을 꿨던 우리 모두에게 있다. 2000년 6월 평양공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미소로 맞던 김정일 위원장의 연기에 속아 독재자의 본질을 간과해 버린 우리 모두에게 있다.

6.15 남북 공동 선언 5주년을 맞으며 지난 과오를 씻고, 아니 씻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직시할 것을 다짐해 본다.

독재는 독재일 뿐이고 독재자는 말 그대로 독재자일 뿐이다.

박인중/ DailyNK 독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