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방북기] ‘죽은 김일성’과 함께 사는 도시, 평양

▲ 평양순안공항에서

평양. 학교를 다니면서 역사 속 교과서에서 우리는 평양을 자주 배워왔다. 고구려의 수도였고, 고려 때는 개성이 수도였지만 평양 역시 중요한 수도였다. 그리고 2005년 지금, 평양은 북한의 수도로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진다. 그런 평양을 다녀왔다. 쉽게 갈 수 없는, 그래서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도시.

축구. 축구경기를 TV중계로 본다는 것. 그때의 축구장은 엄청 크게만 느껴졌다. 넓은 그라운드에서 공을 몰고 재빠르게 뛰어다는 선수들을 보면서 축구장에서 뛰어다니는 선수들은 먼 거리를 아주 빠르게 질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축구장을 찾았다. 축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본다는 것. 축구장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그라운드는 그저 우리 학교 운동장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은 잔디밭이라는 점. 크고 넓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그저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축구장은 그리 크지도 않고, 넓지도 않았다.

드디어 경기 시작! TV로 볼 때와 달리 무언가 알 수 없는 흥분이 느껴졌다. 선수들이 슛을 할 때 마다 관중석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그리고 열기. 전에 티비로 보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자꾸 느껴졌다.

평양에 직접 왔다는 것. 그것은 마치 축구를 티비로만 보다가 경기장을 직접 찾은 것과 비슷한 느낌 이었다. 낡고 허름한 건물들, 원유가 부족해 페인트조차 되어있지 않은 건물들. 그것은 흡사 작은 그라운드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흥분과 어떤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나왔다. 무어라 표현해야 옳을까? 그것은 말로 표현 할 수없는 그러한 오묘한 기분이었다.

국제선을 타고 가야 하는 평양

인천공항, 아침 일찍 출발할 비행기를 새벽부터 기다렸다. 비행기는 한국 국적의 아시아나. 그런데 안타깝게도 비행기는 국내선이 아닌 국제선이었다. 북경, 프랑크푸르트, 방콕 등 수많은 외국 도시 행선지들의 틈에 ‘평양’이 끼어있었다. 평양은 국내선이 아니라 국제선이었던 것이다.

드디어 탑승. 비행기가 이륙하고 1시간이 채 미치지 않은 비행 끝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1시간 미만에 도착하는 국제선이 또 어디 있던가? 평양은 인천공항에서 가장 단 기간에 도착하는 국제선 행선지일 것이다. 평양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 김일성은 아직도 그렇게 평양에 살아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마치고 김일성의 대형동상이 있는 만수대로 갔다. 가는 길에 우리는 ‘금수산기념궁전’이라고 불리는 김일성의 주검이 영원히 썩지 않은 채로 보존되어 누워있는 그곳을 지나쳤다. 대형 초상화가 눈에 띄었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만수대에 도착해, 사진으로만 보던 그 어마어마한 김일성의 동상에 나는 한 번 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실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크기였고, 참으로 어마어마했다. 그 동상을 비롯해 평양 시내의 거리에는 대형 김일성 초상화가 도처에서 숨쉬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안내원들뿐만 아니라 모든 북녘 사람들의 가슴에는 김일성의 초상이 그려진 배지가 달려 있었다. 어디를 가나 김일성의 초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었고, 그와 걸맞게 여기저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건물에 걸려 있었다.

만경대 김일성 생가를 비롯해, 개선문, 주체사상탑 등 우리가 가 본 모든 곳에는 김일성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아직도 그 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다만 그러한 것을 별로 느낄 수 없었던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동명왕릉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곳도 김일성의 대형 초상화와 구호만 없었지 다른 곳들과 별반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北 인민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 들어

▲아리랑 공연의 카드섹션

그러한 것이 극대화 된 것이 아리랑이었다. 아리랑을 보면 카드섹션 중 “수령님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이 강산”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죽은 지 10년이 넘은 김일성을 북한에서는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인민들도 정말 그렇게 사무치게 김일성을 그리워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일성이 죽은 지 10년이 넘었다. 평양에서 제일 흔히 볼 수 있는 구호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였다. “영원히” 라는 구호답게 김일성은 정말 그렇게 영원히 평양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런 평양을 느낄 때, 무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안쓰러운 마음과 동시에 소름이 끼쳤다.

경우는 다르지만 어느 어머니가 어린자식이 죽자,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죽은 자식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키스를 해주고, ‘어부바’를 해주면서 아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대하는 그것을 보았을 때, 안쓰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소름이 돋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 대하듯 한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평양. 비록 1박 2일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그동안 갈 수 없었던, 직접 볼 수 없었던 여러가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북녘 사람들과 실제로 이야기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방문은 정말 나에게 뜻 깊은 방문이었다. 하지만 평양의 시민들이 안쓰럽고, 북한의 인민들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관광을 목적으로 방문한 평양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말 그대로 관광을 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배가 부르면 남기고, 사진을 찍으려고 배터리를 충전하고, 엘리베이터를 마구 사용하며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사실 그러면서 괜히 북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북쪽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전기가 모자라 고생하고 이런저런 것들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양 방문 내내 웃으며 돌아다녔지만, 속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이종민 / 선문대학교 북한학과 3학년


※ 이종민씨는 학과 친구들과 함께 10월 15일 ~ 16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DailyNK에 기행문을 보내왔습니다. DailyNK는 독자 여러분의 방문기 및 북한문제와
관련한 소중한 원고를 기다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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