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부 장려상] 대한반도청년

대한반도청년

최병철

내 역치는 올라가 있었다. 역치란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라는 뜻이다. 생물학을 배운 이후 한동안 쓰지 않던 생소한 이 말을 북한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다시금 꺼내오게 될 줄은 몰랐다.

폭탄 테러와 총격전이 끊이지 않는 중동소식이 처음에는 충격으로 다가왔고 언론에서도 연일 그것에 대해 보도하기 바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중동 문제는 신문의 헤드라인을 차지하지 못하고 국제뉴스 저 구석 한 켠에서 테러에 의한 사망자 수를 담담히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왜냐면 중동은 늘 그런 곳이니까. 늘 폭탄이 터지고 총성이 들리는 곳이 중동이니까. 그렇게 전하는 이도 읽는 이도 무뎌지고 말았다.

북한이 그랬다. 늘 이들은 굶주리고 있었으니까. 늘 이들은 목숨을 걸고 그 땅을 탈출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자들이니까. 탈북자가 처음에 한국에 입국했을 그 당시에는 이 소식이 굉장한 뉴스였지만 이제는 그들의 입국소식도 늘 있는 일이니까 점차 신문 밖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떠밀렸다.

나에게도 통일 노래는 초등학교 이후 내 입술을 떠났으며, 통일문제는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교과서 속으로 묻혀 들어갔다. 북한은, 탈북자는 더 이상 나에게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자극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내 역치는 올라가 있었다.

기회가 닿아 워싱턴 D.C. 에 VOA라는 언론기관에 인턴쉽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흔히들 워싱턴 D.C.라 하면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고 알고 있다. 실로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여기서 처리하고 있는 정치적 사안들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D.C.에 오면서 영화에서나 보던 하얀 대리석 건물들을 출입하며 내가 이곳에 일부분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이들과 같이 호흡을 한다는 거 자체가 나한테 뭔가가 있어보이게끔 만들어 우쭐해지리라 짐작했었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있으면서 느끼게 된 첫째된 감정은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정작 한국에 있을 때는 바로 윗동네에서 자행되던 그 끔찍한 일들을 왜 못들었을까? 어째서 이 먼 곳에 오고 나서야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을까?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북한의 인권을 운운하며 논의를 벌이는 그 현장 한 가운에 나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남한에서 왔고, 한눈에 봐도 북한에 있는 그들과 같은 민족인 것을 알아볼 수 있게 검은 눈과 머리를 지니고 있는 나였다. 나는 그들에게 북한의 상황에 대해 호소는커녕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설명조차 제대로 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북한에 대해 질문을 해올까봐 조마조마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준비됐어야 했다. 질문하는 그들에게 북한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나아가 그 열악한 상황 개선을 위해 호소할수 있는 마음이 준비됐어야 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아니더라도 어버버해가면서까지라도 마음을 전달되게, 그 마음을 준비했어야 했다. 진작에 그래야 했다. 마땅히 그래야했다. 그리고 그러지 못한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북한에 대해 누군가 물어온다면 대답을 해주기 위해 정말이지 열심히 공부했다. 많은 뉴스를 찾아 읽었고, 논문과 관련 서적들을 탐독해 나갔다. 언론기관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기에 정보 접근력이 훨씬 수월한 점은 참으로 감사한 부분이었다.

이제는 최소한 일반인들에게 북한에 대한 보편적인 설명을 해줄 수 있겠다 싶을 때쯤, 또 나를 꿀먹은 벙어리로 만들어 버릴, 피하고 싶은 질문 하나가 나에게 임할까봐 가슴을 졸이곤 했다. 종종 메인 뉴스서버에 남한의 미국산 소고기문제와 북한의 식량난이 동시에 올라와 있을 때가 있곤 했는데, 이에 대해 누군가가, 북한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는데 남한은 고기문제로 국민적 집회를 하고 있는 거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답할 길이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공부로는 답할 수 없었다. 아니 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게 어떤 답이든 간에 변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내가 배운바로는 법이란 사회의 마지노선이다.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최소한 이 정도 만큼은’ 살아야 하는 인간의 기본된 권리 중 마지노선을 뜻한다. 이곳 워싱턴에서 북한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이미 북한에서는 인간의 인간됨의 최소한도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되찾고자하는 노력들이 이 먼곳에서도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코리아는 그 ‘최소한도’가 지켜지지 않는 문제지역이고 문제국가다. 자존심 상하고 속상하다. 내가 그동안 배워왔던 그리고 믿어왔던 자랑스런 코리아가 여기선 그저 해결해야 할 숙제거리인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문제지 남한문제는 아니잖아라고 거짓 위안 삼고 싶진 않다. 아니 오히려 둘은 뗄레야 뗄수 없는 관계임을, 항상 엮어서 풀어가야 하는 아픈 진실에 직면하는 것이 차라리 용기있는 행동이 아닐까?

서양에서 탄생한 ‘인권’이라는 장애경계(障礙境界) 개념으로라서야 북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동양의 인간된 ‘도리’라는 것으로 북한 문제에 접근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북한의 바닥난 처절한 현실이 저 고고한 동양의 잣대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농사를 지어도 까치밥을 남겨둔다고 하는 인심좋고 훈훈한 전통은 더 이상 까치는 차치하고라도 형제가 굶어죽어나가는 현 사회에서 우리 한국의 전통중 하나라고 이들에게 소개하기엔 적잖이 민망하다.

회사에서 탈북자 조진혜씨의 인터뷰가 있었다. 탈북한 후 미국에 온 그녀는 올림픽 기간에 탈북민 강제 송환 반대 1인 금식 시위를 중국 대사관 앞에서 하곤 했는데 이것이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그녀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질문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을 북한 주민들에게 연거푸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조금만 더 힘내라던 그 격려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노래 한곡 불러주고 싶다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반드시 지금 있는 고난은 뜻이 있는 고난이라고, 고난 뒤에 있는 주님이 주신 축복 미리 감사하자는 내용의 노래였다. 그녀는 그러는 와중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자 애써 이를 악물었지만 그 사이 새어 나오는 흐느낌은 울음보다 더 슬프게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동안 그들의 신음소리에 무관심했던, 정작 미안해 해야할 나의 사과는 갈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디 이뿐이랴. 수 많은 이야기들- 북한 사람들의 신음소리, 절규소리를 뉴스로 다루면서 이건 그저 한 피스로 짤려서 나갈 그런 뉴스 거리가 아닌데하는 안타까움을 더한다. 오로지 소망 하나 붙들고 나온 탈북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소망이 탈북 이후 절망으로 바뀌는 과정은 어찌보면 일종의 피 없는 살인이었다. 그들의 소망은 목숨을 담보로 값을 치룬 것이기에 그렇다. 결코 남한 사회를 탓하고 싶진 않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무관심으로 일축해버리곤 했었으니까. 이제서야, 인턴이 끝나가는 이때가 되서야 그들의 목소리를 가슴으로 읽으려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곳에 일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배우러 온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통일의 현실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서글픈 현실 중 하나는,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우리는 ‘한민족이기 때문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제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대, 돈이 세상을 지배해 버린 이 세대에게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하기 위해서는 통일초기 안게될 경제적 부담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으로 설득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른 것이다.

나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다.

북한의 현실을 공부하면서 알게 된 애처롭다 못해 애절한 현실 중 하나는, 지금 북한에 있는 어린아이들중 ¼이 먹지 못해 정신 지체가 되어 간다는 소식이다. 북쪽에 있는 내 동생들이 ‘정신지체세대’로 자라나고 있다는 현실과 아동비만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남한 앞에 무슨 형용사로 이 시대를 표현해야 할까 한참동안 고민했지만 글솜씨가 짧은 나로서는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단어로도 저 참혹한 현실을 표현해 내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 속에서 이 시대를 조금이나마 읽어낼수 있었던 축복을 누린 나는 이제 결코 가볍지 않은 숙제가 주어졌음을 깨닫는다. 역사가 말해주는 공식중 하나는 항상 그 시대를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던 것은 청년들의 몫이었다는 것. 격동의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도 청년의 삶은 더더욱 그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제 시대 조국의 청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몸을 던졌고, 80년대 청년들은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살아갔다. 지금 시대는 청년에게 무엇을 도전하고 있을까?

통일이다.역설적이게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이 시대에 통일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더 이상 우리 형 누나들을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도 영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푸른 눈의 친구들에게 숙제거리로 안겨주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내 동생들이 굶다 못해 정신 지체 세대로 자라나고 있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물론 세상의 흐름에 역류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청년이고 싶다. 바뀔껏 같지 않은 이 사회를 두고 세상은 원래 그런거니까하고 체념해 버리는 순간, 세상의 급물살에 그저 몸 가는대로 내 몸을 맡겨버리는 순간 ,나는 기성세대가 된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잘먹고 잘사는 것에 내 생애 전부를 걸고 싶진 않다.

이곳의 인턴쉽을 마친 후 내가 다시 돌아갈 조국은 더 이상 내가 떠날 때의 그곳과 다르다. 한국의 남쪽이 아닌 한반도로 돌아간다.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국적을 South Korea 라고 표기했던것에 이젠 시대적 책임이 뒤따른 다는 것을, 이제는 분단된 조국임을 기억하고 앞에 South를 지워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큰 숙제를 안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지만 이 무게감으로 나는 휩쓸리지 않고 세상에 역류할수 있다.

이 일의 결국엔 남북이 하나 되어 우리 후손들 세대는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며, 언젠가 내 아들이 읽을 교과서에서는 지금 청년들의 통일로 향하는 치열한 고민과 과정들이 기술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의 한국 근 현대사가 그러했듯이, 나도 다음 세대들에게 시대의 도전에 부응한 대한민국의 청년 중 하나가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간 숱한 선배들의 그 삶의 뒤를 밟자고 다짐한다. 나는, 나는 대한반도의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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