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부 우수상] 흙 속에 잠긴 사과 한 알

흙 속에 잠긴 사과 한 알

김소형(숭실대학교 2학년)

할아버지는 북한사람이었다. 아버지는 6.25시절 태어나셨다. 전쟁 중 아이가 울면 서로 죽이기로 약속한 채 떠다니는 핏덩어리였다. 할머니는 이산가족이라는 명찰을 달고 60여년을 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말라붙은 할머니 손에 있는 사과 한 알을 기억하지만 할아버지는 사진 한 장 떠올리지 못한다. 할머니를 땅에 묻고 돌아섰던 날, 할아버지는 꿈에서 돌아가셨다.

며칠 전 학교에서 학생들이 러블리즘이라는 다큐를 만들었다고 했다. 지구상에 단 하나인 분단민족, 그것이 우리라는 테마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학생들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별개의 나라였다. 합치면 손해, 합치면 이득, 그것만이 북한이라는 나라를 이어주는 것 같았다.

외국인들은 북한에는 인터넷이 없어 참여할 공간이 없기에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싫어요. 모르겠어요. 북한사람은 좋지만 북한은 싫어요. 미국, 일본, 이런 느낌으로 북한이라는 나라가 따로 존재하는 느낌이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덤덤하게 영상을 봤다. 내가 그들을 미워해야 했을까. 아니다. 나는 충분히 그들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미 잊힌 자들에게 저런 생각조차 관심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때였다.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에 시간이 고인 채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이산가족의 사진이 떴다. 과연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까 싶을 만큼 귀도 멀었을 것 같고 눈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저 울고만 있었다.

각자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가정을 꾸렸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그들의 얼굴보다 손을 보고 있었다. 저 손은 친할머니의 손과 닮았다. 친할머니는 언제나 홀로 바느질을 하시곤 했다. 새벽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늘 누군가의 옷을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바느질을 알려주고 재봉틀을 돌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어쩌면 이런 기억을 물려주고 싶은 게 아닐까 싶었다.

저 손을 붙잡고 싶어서 그렇게도 바느질을 했던 건 아닐까. 자신의 마음을 꿰매고 있었던 건 아닐까. 눈이 침침해서 바늘구멍에 실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셨던 건 그 마음을 조금 더 묶으려고 하신 행동이었으리라.

나는 이미 북한과 남한이 단절됐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햇볕정책을 말해도 나와는 별개의 삶이라고 느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든 화면들이 우리는 평화통일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하고 보여주기 정책은 아닌지도 의심했다. 젊은 세대는 남한도 어려운데 북한에다가 퍼다주기식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고 반발까지 했다.

나는 젊은 세대이다. 하지만 나는 이산가족이기도 하다. 나는 어디에 서야 할까.

군대에 갔다 온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북한은 적이다. 하지만 일대일로 싸운다면 이기기 힘든 잘 훈련된 군사를 가진 적이다. 그렇게 해야지만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있다가 사회에 나오면 우리 동포다. 혼란스러울 법한데, 그들은 또 혼란스러워하질 않는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그 정도의 관심도 끌 수 없는 사이가 젊은 세대에게 북한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외에서 북한이 우승을 하고 메달을 따면 그때만큼은 모두 기뻐한다. 나는 이런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겠으니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피하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빠른 속도에서 눌어붙은 한 장의 흐린 흑백사진을 떼어내려 애쓴다. 할머니가 내게 주던 사과 한 알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할머니 눈빛이 이상했다. 희뿌연 막을 감싸고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자꾸 계란 프라이를 태웠고 가스를 킨 채로 자리를 비우시곤 했다. 먹은 것을 자꾸 게우다가도 어떤 날은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엄마가 시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할머니와의 심리적 거리는 끝도 없이 밀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사과 한 알을 주셨다. 허공에 빨갛고 잘 익은 사과를 손으로 휘휘 저으면서 가져가라는 듯이 내게 내밀었다. 나는 허공에 떠있는 손을 보면서 됐어요, 하고 말했고 다시 사과를 내게 내밀었을 때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뒤 돌아가셨다.

나는 그것을 먹지 않아도 받기만 했으면 좋았겠다고 뒤늦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 기억을 오랫동안 가지고 가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가 내게 한 사과표시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사과를 받지 않았다. 이제 할머니가 내게 사과를 받아주셔야 할 텐데 꿈에서만 나오고 사라지신다. 왜 꿈속에서 조차 할아버지와 함께 나타나시지 않는 걸까. 꿈조차 늘 홀로 계신다.

나는 이제야 할아버지가 계신 북한을 생각한다. 등 돌리면 사라질 것 같던 그곳이 사실은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채울수록 비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허무함에 이끌려 좌절하지 않는 존재라고도 믿는다. 나는 북한과의 관계를 퍼다주기식이다. 이제는 서로 발목을 잡을 필요 없다. 아니면, 합치면 인구수가 많아지니 조금 더 잘 살 거다. 하는 이득의 문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채울수록 비어진다고 믿어도 좌절하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득관계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내가 채울수록 0점이 되어 살아가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살듯이 통일은 당연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은 손익 결정이 아니라 가족의 문제이며 핏줄의 문제이며 내 문제이기도 하다. 내 몸 밖의 문제가 아닌 내 몸 속의 문제이다. 그러니 내 육체를 뜯어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나는 이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게 편하니 모른 척 해왔다.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가족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무심하게 생각하면 사라질 줄 알았다. 이제는 이산가족도 더이상 남아있지 않고 살아서 증언해줄 사람은 사라진다. 그렇다고 이제는 내 육체가 아닌 것일까.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알 수도 없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와 닿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바일 서비스로 통일 카툰 이미지를 보내줘도 좋고, 웹툰 운동으로 그림을 올려서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자를 이용해서 정기적인 서비스를 유행하듯 보내주는 것도 좋다고 본다. 포켓몬처럼 통일 캐릭터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카드를 만들어 학교에 지급하는 방식도 생각한다.

또한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지금의 내가 이것이 문제라고 느끼면 아이들은 그것이 문제라고 느낌으로 알고 배운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은 시대에 걸 맞춰 나가도 좋다고 본다. 인터넷 모임도 좋고 소모임동아리도 좋다. 스크린세이버 방식도 괜찮고 인터넷 청원을 응용하는 것도 빠른 전달력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느낀다.

의식이 깨어있는 젊은 사람은 많다. 다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막연하기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힘은 그만큼 중요하다. 언론에서 한 장의 사진이라도 계속 이산가족의 모습을 올려주길 바란다.

나는 사진을 보고 생각했다. 저들은 무엇이 저렇게 슬플까. 애달플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막연하게 슬프겠지 가 아니라 저렇게 까지 안타까워하는 걸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보았다. 그러다 할머니 손을 보았다. 어루만져줘야 하는 손이다. 흙속에서도 홀로 손을 휘젓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적는다. 내가 타자를 치고 있는 손이 사과의 표시이기도 하다.

나는 모른 척하고 있던 지난날을 사과한다. 그렇게 사과 한 알을 바라본다. 굶어죽고 있을 북한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갓난아기였을 때 울지도 못한 채 돌아다녔을 전쟁을 그린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어루만져 줄 손을 가지고 있다. 외롭게 홀로 묻힌 그들의 마음을 꿰매 줄 실과 바늘도 있다. 바늘구멍을 보다가 빨간 실이 들어갈 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할머니가 쓰다듬어 주던 손, 그리고 그 실로 천을 꿰매던 순간들, 그렇게 조각난 천들이 모이고 나면 우리는 다시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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