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부 우수상] 가득 찬 물잔

가득 찬 물잔

이보람(가톨릭대 05학번)

– 새터민 학습 자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우연히 학교에 붙어있는 새터민 학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관한 포스터를 보았다. 새터민이라는 이름조차 낯설 던 그때에 나는 왠지 모를 끌림에 무작정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남한에 온지 2년정도 되었다는 그 아이를 만났다.

난 여자아이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성적이 시급한(?) 중학생 남자아이를 맡게 되었다. 마른 몸, 날카로운 눈매에 북한 사람 특유의 독특한 말투가 사실, 무서웠다. 사전에 교육을 받을 때 한 아이가 과외 선생님의 손을 샤프로 찔러서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겁이 많은 나로서는 한층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아이를 맡아서 기르고 있는 분께서 지금까지 많은 선생님들이 그 아이를 가르치다가 도망가거나, 잠적하거나, 울면서 관두었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갈까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작하지 않고 포기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 아이의 방에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서 그 아이가 날 쳐다봤는데 날 째려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르게’ 무서워서 닫으려던 방문을 살짝 열었다. (언제든지 후다닥 도망갈 수 있게!)

내가 책을 펼치자 대뜸 그 아이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난 예쁜 선생님 아니면 같이 공부 안해요” 나는 그때 진심으로 나보고 예쁘다고 한 줄 알았다. 그때 나는 20살이었고 여중 여고를 졸업한지 얼마 안됐고, 비록 남자친구는 없었지만 우리 엄마는 나보고 예쁘다고 했었으니까!“고마워! 하하 공부하자” 라고 내가 쑥스러워 하며 대답하자 그 아이가 짜증난 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공부하기 싫다구요, 아 짜증나네” 그렇게 그날 수업이 끝났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유리창에 머리를 박으면서 자책했다. ‘그때 내가 한마디를 했어야 했는데! 너도 그리 잘생긴 얼굴은 아니야! 어디서 지적질이야! 나도 잘생긴 학생 가르치고 싶어! ’

그렇게 일주일을 이를 갈면서 벼르다가 대망의 금요일 저녁 5시에 그 아이의 방에 당당히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을 잘 들었다. 그래서 마음 넓고 나이 많은 내가 그냥 참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날 시험 한 것 같다. 자신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님 말고) 간간히 상처받는 말을 뱉었지만(다이어트 안해요? 그러니까 남자친구가 없지. 와 같은..) 이상하게 첫 만남에서 크게 한방 데여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말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점점 그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 알았냐면 나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기 시작한 부분 부터였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 새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먹여주는 것처럼 이 아이도 나에게 자꾸 먹을 것을 갖다 주었다.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흐뭇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 양이 엄청나다는 것이었다. 콜라를 주더라도 잔에 가득히 담아서 넘칠 것 같았고 빵도 그릇에 수북하게 쌓아서 줬다. 그렇게 몇 번 받아먹다가 배불러서 못 먹겠다고 하면 실망하는 눈빛을 보였기 때문에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또 열심히 먹을 수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목이 말라서 물 좀 갖다 달라고 했더니 물도 잔에 가득히 담아서 갖고 왔다. 어떻게 흘리지 않고 갖고 왔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음식은 먹을 만큼만 적당히 담아야 한다고 말해줬는데 그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내면서 말했다.

“선생님,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해요. 먹을게 남아 도는 줄 알아요?”

나는 그때서야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이 아이가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 한국으로 온 ‘탈북인’ 이었다는 것을. 적어도 나는 점심을 먹을 때 저녁에 먹을 밥이 없어서 고민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런 생활을 평생 해왔던 것이다.

그때서야 사전 교육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흔히 탈북인들이 목숨을 걸고 중국으로 가더라도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기 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리저리 또 다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학대, 굶주림등 인간 이하의 생활을 몇 여년 간 지속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러한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그런, 출구 없는 터널과 같은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는 자신의 나이도 확실히 모른다. 어릴 때 북한을 넘어와 이리저리 떠돌고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을 견뎌야 했기 때문에 해가 바뀌는 지도, 자신의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이 10대의 아이가 태어나서 겪었을 일들을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냥 컵에 잔뜩 든 물만 열심히 마셨다. 내가 이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신의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아이한테 나태하고 무기력한 내가 뭐가 잘났다고 이 아이를 가르치려 했는지 부끄러웠다.

흔히 우리는 탈북인(=새터민)들을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북한사투리를 흉내 내면서 비웃기도 하고 김정일 어쩌구 저쩌구, 공산당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그들을 나쁜 놈으로, 그리고 우리의 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탈북인 이었지만 성실했던 한 청년이 한국의 모 기업에 입사가 확정되었었다. 그런데 그때 여간첩 사건이라고 하면서 탈북인이 간첩이었던 사건이 터졌다. 연일 신문에서는 간첩 사건과 탈북인에 대해서 비중 있게 다루었고 그 분은 결국 입사가 확정되었던 회사에서 입사취소 통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북한 사람이니까’

솔직히 나는 86년 생으로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그들에 의해 우리의 가족이 죽거나 내가 고통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북한사람인 새터민을 옹호하는 소리를 하는 나에게 누군가는 철이 없고 현실을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새터민이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차별과, 한국 사람들에 의한 적대감이 진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진짜로 열받게 부당한 현실’ 이라고 생각한다.

새터민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상황을 견뎌냈다. 나는 정말 새터민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중 누군가가 그들과 똑같은 상황이 었다면 그들 처럼 희망을 가지고 그렇게 꿋꿋히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예전에 역사과목 공부를 가르치면서 그 아이가 나한테 물었다. “ 선생님, 우리가 외국인이예요? ” 나는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아냐 남한과 북한은 하나야!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야!’ 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는 도덕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하지만 누가 그 말을 믿나? 그 아이를 비롯해 그 와이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자신의 고향이 강원도라고 말하고 다닌다고 한다. 사투리가 비슷해서 아이들이 금방 속는 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 아이들이 그런 거짓말 하게 된 이유가 뭘까? 왜 일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슬프고 또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겁을 잔뜩 먹고 혹시 나를 헤치지 않을까 걱정했었으니까.

1년여를 그 아이를 가르치면서 느낀 것이 있다. 그 아이는 잔에 가득한 물 만큼이나 사랑이 넘치는 아이다. 다만 그런 사랑을 받아줄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그 아이에게 넘치는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 누군가가 우리 모두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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