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대남부서’ 김영남 선생에게 띄웁니다

▲ 28년만에 상봉한 김영남 모자

김영남 선생에게.

김선생. 어떻게 호칭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북한에서 일반적인 존칭으로 사용되는 ‘선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김선생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보통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 점잖게 사용하는 말이지만,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괜찮겠지요?

저는 북한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엔케이 곽대중 논설위원입니다. 현재 통일관련 부서에 근무하신다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남관련 부서일 테고, 일반 주민들에게는 통제된 인터넷을 제한적이나마 사용할 수 있는 단위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데일리엔케이도 보셨겠지요. 선생에게 감히 몇 말씀 전하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김선생. 선생이 어머니를 만나고, 기자회견을 하고, 어머니를 떠나 보내는 전 과정을 TV를 통해 지켜봤습니다. 선생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더군요. 이마가 훤히 벗겨진 40대 중반의 가장이 아직도 어머니를 ‘엄마’라고 하니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물론 선생에게는 ‘아직도’가 아니겠지요. 17살 나이에 “엄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가 기나긴 세월의 공백 끝에 만났으니 여전히 어머니 앞에 김선생은 까까머리 그 소년이겠지요. 어머니도 선생을 “우리 막내”라고 부르면서 어린아이 끌어안듯 보듬는 모습을 보며, 끝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의 기자회견도 보았습니다. 물론 정해준 대로 읽었겠지요. 며칠간, 아니 몇 달간 피나는 연기연습을 했겠지요. 다 이해합니다.

어떤 선배가 김선생의 기자회견을 보고 씩씩거리면서 화를 내더군요. “나는 납치됐다, 남한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것이지, 왜 저렇게 바보 같이 시키는 대로 하느냐”고 말입니다.

굶주림과 인권탄압은 누구 때문입니까?

자기가 투사라고 남들도 모두가 투사가 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줬지만, 저도 가슴 한 켠 실망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선생의 잃어버린 30년 세월에 대한 상실감에 감히 비할 바나 되겠습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니, 제가 김선생과 같은 경험을 겪었다 해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 같습니다.

김선생. 아무튼 꿋꿋하게 사십시오. 혹여 북에서 감시 당하고, 남한의 일각으로부터도 손가락질 당하는 처지가 될 수 있지만, 선생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언젠가는 선생이 현명하고 용감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김선생. 대남부서에 근무하시니까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선생이 끌려간 날로부터 28년, 남북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남한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한꺼번에 이룬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었고, 북한은 완전히 거덜난 살림에 극심한 인권탄압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비교하는 것 마저 송구스러우니 제쳐둡시다. 북한 주민들의 인간적 처지가 어떻습니까? 자기가 사는 마을을 벗어나기만 해도 통행증을 제출해야 하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뉴스 이외에는 일체의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없고, 만약 몰래 들었다면 정치적으로 처벌을 받고, 본인 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연좌제로 다스려지고, 끔찍한 공개처형과 대규모의 수용소가 존재하는 곳. 인류 역사상 이런 지옥이 존재해본 적이 있습니까? 고대 이집트 노예들도 이런 잔혹한 통제생활을 겪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선생 같은 소년들을 잡아오라고 지시한 장본인, 김정일 때문 아닙니까? 인민은 굶어 죽어갈 때 자기는 당나귀 고기를 맛보면서 포크질을 하고, 인민은 전기가 끊긴 어둠을 호롱불로 밝히며 얼굴이 온통 시커멓게 그을리고 있을 때 자기는 호화 별장에서 보트와 승마에 열중하고, 인민은 콩시루 같은 기차에서 복작거리며 목숨을 건 식량구입에 나설 때 자신은 검은 색안경 끼고 외제차 몰고 다니며 현지시찰 한다는 바로 그 인간 때문 아닙니까?

‘안다’는 말에 담긴 천근의 무게

김선생. 짧은 상봉을 마치고 울면서 돌아가는 어머니께 선생이, 왜 우느냐, 됐다, 안다, 라고 말했다고 들었습니다. ‘안다’라는 한 마디에 천근의 무게가 담겨져 있음을 느낍니다. 지금은 북의 가족 때문에, 혹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이유들 때문에 김정일의 각본에 따랐다는 것을 우리도 압니다. 그러나 김선생, 선생이 언젠가는 최적의 시기에 영웅적 결단을 내릴 것을 저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저 정권이 천년만년 갈 것 같습니까? 선생도 알다시피, 다 무너져 버린 정권입니다. 길어야 10년이고 운이 닿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산산조각 날 정권입니다. 그때 누구나 조건 없이 만날 수 있겠지만, 그때 선생도 다시 노모와 누님을 만날 수 있겠지만, 그때, 그때 우리 당당하게 만날 수 있도록 합시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김영남 선생에게 편지 보내기 운동’을 하자고 권유하려 합니다. 조국은 선생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 빠른 시일 내에 선생을 고향으로 모셔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선생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한 노력을 계속 해주십시오.

혹시 납북된 다른 분들과 소식이 닿는다면, 용기를 잃지 말라고 전해주십시오. 지금은 잠깐 김선생이 민족의 운명보다 개인과 가족의 생명을 택하셨지만, 언젠가 민족의 운명을 위해 큰 일을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은 이만 편지를 접습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어머니와 가족들의 건강도 빕니다.

6월의 마지막 날.
대한민국 서울에서 곽대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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