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회의 참관기] 박경서 “국가인권위는 北인권 강조해야”

▲ 노르웨이 국제회의에서 발언중인 박경서 인권대서 <사진=북한인권시민연합>

노르웨이 북한인권국제회의 마지막 날 최고의 관심은 박경서 인권 대사의 발표였다.

그는 북한인권에 관한 국제대회에 한국 정부 대표로 처음 참가했기에 더욱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부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이 나오기가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상한대로 박 대사 발언의 기본 기조는 기존의 한국 정부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긍정적인 점도 있었다.

첫번째 긍정적인 점은 북한인권 운동을 하는 단체들과 한국 정부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같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식의 발언이 정치적인 발언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굳이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개선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는 메시지는 북한인권 단체들과 최소한 대화는 계속 하고 나아가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발언이 단순한 립 서비스인지 정부의 의지가 실린 발언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말이다.

두번째 긍정적인 점은 일종의 역할 분담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역할 분담론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NGO들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지만, NGO들의 역할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다. 이는 궁극적 목표가 같다는 발언에서 자연스럽게 유추되는 결론이다. 여태까지 한국 정부가 기존의 북한인권 운동이 긍정적이라는 입장을 명백히 표명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박 대사의 이 발언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부-北인권 NGO ‘역할분담’ 이뤄져야

역할 분담론의 더욱 중요한 의미는 한국 정부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분담이다. 박 대사는 회의 참석자들과의 후속 대화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응당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것이 국가인권위원회가 한국 정부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사실 인권이 최우선의 활동목표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의 인권문제 제기 자체도 반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벌어져 왔다. 그런 면에서 사실 박 대사는 국가인권인권회가 해야 할 지극히 당연한 의무를 언급한 것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현 한국의 현실에 던져주는 시사점은 아주 크다. 만약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 백서 발간 등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서게 된다면 한국 정부는 그 동안 국제 사회에서 처했던 곤경에서도 상당 부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대북 협상에 있어서도 인권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독립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를 협상 파트너로 내세워서 인권 문제가 다른 대북 협상 의제에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박 대사의 발표에서 여전히 아쉬운 점도 남는다.

첫번째는 평화와 인권 문제 간의 상관 관계이다. 박 대사는 평화와 안정이 정부 정책의 우선 순위이고 인권 문제는 후(後)순위라는 기존 한국 정부 정책을 재확인했다. 다시 말해 만약 인권 문제 제기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다면 그 인권 문제 제기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는 북한의 인권 문제 제기는 가능하다는 뜻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아직도 남북 무력 대치 상태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은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맹점이 있다. 평화와 안정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한국 민주화 운동 시기에 권위주의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인권을 침해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즉 국가 안보라는 개념이 엄밀하게 정의되지 않고 고무줄처럼 확대 적용된 것이다. 만약 평화와 안정이라는 개념이 전쟁 예방이라는 기준을 넘어 북한한테 싫은 소리 듣는 것도 평화와 안정을 깨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고무줄 국가보안법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논리이다.

北인권 문제 제기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해치나?

한국 정부는 평화와 안정이 깨지는 상황을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 한국에 계엄이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아주 엄밀하고 세부적으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북한이 남북 대화를 거부하고 남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평화와 안정을 깨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래서 북한 인권 문제 제기는 남북의 평화와 안정을 깨는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면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고립을 탈피하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문제가 될 것이다. 박 대사가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은 크게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두 번째 문제는 북한의 식량권 보장이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인권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식량 문제이고 한국 정부는 가장 많은 식량 지원을 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한국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나라다”라는 논리를 전개해 왔다. 박 대사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했다.

기아로 수백만이 굶어 죽은 나라에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말 가장 중요한 인권 문제 해결임에는 틀림없다. 이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더 많은 식량을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북한이 스스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가이다. 고기를 줄 것인가 아니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인가 하는 아주 단순한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고기를 더 많이 주면 그 사람은 고기 잡는 법을 더 빨리 배우게 될까? 아니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까? 정책 입안자라면 단순한 동정심에서 정책을 짜면 안된다. 그 정책이 객관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 때로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회초리를 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는 여지를 정책 당국자는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

북한 식량 보고서를 쓴 미국의 경제학자 마커스 놀란드는 북한의 식량은 최소 50% 이상 많게는 80% 이상까지 북한의 지하 장마당을 포함하여 시장에서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 배급망을 통해서 분배되고 있는 식량은 거의가 해외에서 원조되는 식량들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시장을 통해 식량 문제가 해결되는 경향은 지금까지 강화되어 왔고 앞으로도 더 강화될 것이다. 동시에 북한 장마당 쌀 가격과 중국 동북 3성 쌀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즉 북한에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이제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중국에서 수입해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식량 문제에 있어서는 시장과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對北정책, 北 현실에 대한 세밀한 접근 부족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규모 식량 원조는 시장을 위축시키고 북한의 대중국 경제 교류를 제한하면서 오히려 구시대의 식량 배급제를 강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북한 정부도 외부 식량 원조가 많으면 많을수록 과거 국가배급체제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최근 장마당에서의 식량 거래 금지와 국가 배급소를 통한 거래라는 정책 발표로 현실화되었다.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목표가 북한의 개혁, 개방의 유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무조건적인 대북 식량 원조는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시키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대북 식량 원조를 중단하자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줄여나가면서 북한의 시장과 대중 경제 교류의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원조의 점진적 삭감이 북한의 시장과 외국과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시킨다면 원조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식량권 해결은 북한의 개혁, 개방에 기여하는지의 관점에서 재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이런 점까지 섬세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있다. 식량을 많이 지원하는 것이 북한의 식량권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초등학교 수준의 단순 논리를 펴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경서 대사의 노르웨이 북한 인권 회의 참여는 높이 평가해 줄 만하다. 그리고 박 대사는 회의 내내 참석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Nice gentleman이라는 호평도 들었다. 한국 정부의 미숙하고 아쉬운 점을 박 대사의 개인기로 커버한 것이다. 박 대사는 국제 사회의 스탠다드를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이런 박 대사의 수준을 따라 오고 이를 뒷받침해줄 만한 역량이 있을까? 과연 국가인권위원회는 박 대사의 바람 대로 북한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까? 박 대사가 북한 인권 NGO들과 국제 사회에서 어렵게 딴 점수를 한국 정부가 또 다시 실점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왜일까?

하태경/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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