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60년]⑤후계구도 `아직은 먼 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구도는 언제쯤 가시화될 것인가.

일각에서는 당창건 60돌을 계기로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결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이미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차남 정철(24)이 정해졌다는 등 갖가지 관측이 무성하다.

올해 63세인 김정일 위원장도 1974년 김일성 주석이 62세였던 때에 후계자로 공식 추대됐던 만큼 이미 후계자가 결정됐거나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정보당국과 전문가, 북한 내부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가 결정되지 않았고 아직은 먼 장래의 일이라는 분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선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됐던 1970년대 분위기와 비교할 때 현재는 후계자 내정 움직임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꼽고 있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되던 당시에는 북한당국이 내정에 앞서 전 주민에게 김 주석의 후계자가 김 위원장이라는 점을 조직적으로 교양하고 그를 ‘당 중앙’, ‘친애하는 지도자’ 등으로 부르게 하는 사전 정지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사망한 김 위원장의 부인이자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었던 고영희씨가 1990년대말부터 자기가 낳은 정철(24)과 정운(21) 중 하나를 후계자로 정하기 위해 측근들과 함께 군부대를 중심으로 `옹립작업’에 나선 적이 있었지만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 위원장이 즉각 중지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대북 소식통들은 고씨의 사망을 전후로 권력층 내부에서 추진됐던 후계자 옹립 움직임마저 최근에는 거의 사라진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후계자 선정에 대한 김 위원장의 ‘무관심’에다 고씨의 사망으로 구심점을 잃은 뒤로는 권력실세들이 더 이상 후계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권력승계작업을 서두르지 않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김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은 경험과 연계지어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복형제인 김평일 현 폴란드 주재 북한 대사 등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통해 1974년 김 주석의 후계자가 된 뒤 북한 권력은 10년 간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쌍두마차 체제를 갖췄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김 위원장에게 장악됐다.

이 같은 경험에서 김 위원장은 후계자가 결정되는 순간부터 권력의 중심이 후계자로 옮겨지고 나중에 자신은 모든 실권을 내놓게 될 수 있다는 레임덕 현상을 우려해 서둘러 후계자를 정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 주석과 달리 김 위원장은 권력을 물려받은 경험이 있는 만큼 상징적인 위치에 머물렀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북 소식통들은 그러나 북한 체제의 특성상 김 위원장의 아들 중 누군가가 후계자로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삼남인 정운을 주목하고 있다.

정운은 아직 아무런 직책을 맡고 있지 않지만 어머니 고씨의 영향을 받아 일찌감치 권력에 눈을 떴고 세 아들 중 유일하게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등을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요리사를 지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는 자신의 수기에서 정운의 후계 가능성을 유력하게 거론하면서 김 위원장이 자신과 여러모로 닮은 그를 가장 마음에 들어한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차남 정철은 일부 외신의 보도와 달리 그 어떤 직책도 갖고 있지 않으며 최근에는 호르몬 과다분비증으로 목소리가 여성화되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나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성혜림씨가 낳은 장남 정남(34)은 이혼녀의 아들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데다 이미 오래 전에 김 위원장의 마음에서 멀어졌다고 대북 소식통들은 전했다.

일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아들을 후계자로 등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아들을 후계자를 선정할 경우 봉건왕조 세습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자신이 김 주석의 후계자로 된 정당성까지 훼손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김정일의 후계자는 패밀리 구도로 가지 않을 것이고 3대에 걸친 세습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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