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 가족] “우리 정부는 대체 어디에 있나”

▲ 편지 낭송하는 6.25전쟁 납북자가족 이성의 씨

11일 백범기념관에서 열렸던 북한인권개선 촉구대회에서 납북자 가족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편지를 낭송한 사람은 6.25전쟁 납북자의 가족 이성의 씨와 지난 69년 12월 강릉행 서울발 KAL기 납치사건 납북자 가족 황인철 씨. 이들을 각각 아버지를 북한에 빼앗겼다.

이들은 편지에서 납북 피해자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해버리는 정부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이들은 가족을 찾고 싶어 했지만 통일의 방해세력으로 몰려 침묵을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특히 황인철 씨는 “자국의 납북피해자 인권을 위해 먼저 애쓰는 일본에 비해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며 정부를 비판했다.

황 씨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찾아가 한국 납북피해자 인권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애를 써달라고 애원의 탄원서라도 써야하나요”라며 정북에게 납북자 가족은 ‘세금이나 내주는 노예’냐며 반문했다.

대회 참석자들은 가족과 생이별을 했지만 정부에게 외면당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온 사연이 소개되고,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해 생사라도 알고 싶다는 이들의 편지낭송을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 ksa@dailynk.com

아래는 납북자 가족들의 편지 전문.

KAL기 납북사건 납북자 가족 황인철 씨 편지

식민치하에 36년이란 세월이 지나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아버지와 우리가족들은 36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뚫린 아픔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9년 12월11일 당신은 출장 중에 공중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시작하였고 1970년2월14일 39명만이 송환이 되고 12명이 돌아오지 못하여 또 한번 찢어지는 아픔을 가져야 하는 우리 가족들의 운명!

정부는 혹시나 간첩이 되어 돌아오지 않나 감시나 하고 자신들이 보호했어야할 우리를 오히려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당신이 몸담았던 MBC 문화방송국은 업무상 출장 중에 당한 사고임에도 휴직 처리로 급료지급을 중단하고, 아직도 휴직중이며 MBC 이사회에서는 송환되면 국가판단에 맡긴다며 임의로 조건부 휴직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MBC문화방송국은 회사 사규에 없는 납북사건이라 우리는 모른다며 납북당한 이유로 우리가족을 궁지로 내몰았습니다. 이 모든 갑작스러운 충격에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편집성 인격장애 와 정신불안이 되었으며 우리가족은 참으로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통탄스러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침묵만을 강요당했던 우리가족들!

할머니는 평생 당신을 생각하시면서 눈물과 한 만을 가슴에 안은 채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에서 빼앗기기만 하고 무지와 무관심 속에 살아왔습니다. 나라가 아닌 집단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나는 국민이 아닌 세금이나 내주는 노예이다”라고 포기하며 스스로 위로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금강산이 열렸던 때, 개성공단까지 육로가 열렸다고 할 때, 한반도기가 나부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남과 북이 어우러져 부르짖을 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도 잠시 애써 잠재웠던 저의 마음은 더 크게 아픔으로만 다가왔습니다.

과거에는 남북대치관계로 어쩔 수 없이 침묵만을 강요당했고, 지금은 통일의 방해자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납치사건인데도 북한에는 납북자가 없다는 말에, (우리들을 먼저 보호해야할) 정부가 오히려 우리가족들을 골칫덩어리로만 바라봅니다.

국가인권위에서 납북자특별법제정을 권고하여도 “북한에는 납북자가 없다” 는 말에 정부는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면 통일로가고 있다는 쇼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보호받지 못한 우리 납북피해자의 인권은 소수이기에 무시하니까요!

당연히 정부가 먼저 손을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납북피해자들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을 보호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어느 누가 진정으로 국가를 사랑할 수 있으며 누가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저는 국가가 아닌 집단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북한에 줄 것을 다주고 대가로는 가시적인 행사나 치르고 행사인원수가 적으니 많으니 하며 실랑이나 벌이고 행사기간동안만 북한에서 보낸 참가자들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가시적인 웃음을 지으며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의소원은 통일 통일하며 말로만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국의 납북피해자 인권을 위해 먼저 애쓰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한국 납북피해자 인권을 위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애를 써달라고 애원의 탄원서라도 써야하나요!

정부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행사가 아닌 가족의 생사확인과 우리가족들이 당해야했던 과거의 진상규명입니다. 어느 곳도 안주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가엾은 영혼처럼 우리가족들의 찢긴 마음을, 우리가족들의 한을 풀고 이젠 정동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다고 하면 달을 보면서 “지금 아버지도 저 달을 보고계시겠지” 하며 그리움만이라도 달래수 있으련만 돌아가셨다면 제사라도 올릴 수 있으련만 이런 작은 소망조차도 막는 무리들이 원망스럽고 원통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평상시 제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신 것을. “네 애비를 생각하면 내 젖가슴이 지금도 짜르르하다”고 저를 끌어안으시면서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말씀하신 한 서린 외마디!, 8년 전 돌아가시면서 “나를 화장시켜라. 그리고 뿌려라 응어리진 평생의 한을 풀어버리련다” 하신 할머니께 둘째인 당신이 돌아오면 눈물을 흘릴 장소가 필요하다고 식구들이 애원하였기에, 눈물과 함께 안장을 허락하신 할머니! 할머니무덤 옆에 아버지의 자리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해자는 없어지고 피해자만 남아있는 어처구니없는 이 현실에 당신의 주검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이곳에 묻고 곁에 나란히 모시고 싶습니다. 두 분이 함께 나란히 누워 계실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아! 할머니! 아버지! 두 분만이라도 평생 보고팠던 한 만은 없어지시겠지요?

2005년 8월. 이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들이 올립니다.

6.25전쟁 납북자의 가족 이성의 씨 편지

북쪽에 계신 아버지! 막내딸 성의입니다.

아버지, 언제나 아버지를 불러볼 수 있나 그날만을 고대했습니다. 아버지, 지급은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쭙기조차 망설여집니다. 큰 뜻을 펴시고 올곧을 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그만 난리를 만나 납치되신 아버지, 그 모진 나날을 어찌 견디어 내고 계십니까?

6.25 동란 후 서울에는 어머니와 두 언니와 막내인 저, 이렇게 4식구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7남매 중에서 오로지 세 딸만 남게 된 것이지요.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온몸으로 견디어내신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특히 연좌제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던 저희들, 아버지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고도 깊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다니시던 직장 동료 분들이 함께 피난가야 한다고 재촉하였을 때 저희 7남매와 어머니가 걱정되시어 혼자 떠나시지 못하셨다지요. 아버지의 자상하심과 그 크신 사랑이 오히려 온 가족의 불행과 이렇게 긴 생이별의 실마리가 되었기에 더욱 애통합니다.

사진의 얼굴고 밖에는 기억할 수가 없는 아버지, 뵙고 싶습니다. 아버지, 쩌렁쩌렁하셨다던 그 목소리, 지금은 어떠하신지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 바리시고 곧으셨다는 아버지, 그래서 북쪽에서는 살아계시기가 힘들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살아만 계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0세 넘으신 할머니도 아들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소식이라도 듣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먼저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계신 북쪽이 가까운 데가 좋겠다고 하시어 파주에 모셨습니다.

5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강산이 바뀌어도 다섯 번도 더 바뀌었을 동안 남편과 아내가 생이별로 가슴을 쳐야하고, 천륜인 부모와 자식을 강제로 떼어놓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어느 누가 저지를 수 있으며, 하늘아래 어떤 누가 다른 사람의 눈에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쟁을 막지도 못하고 도망쳤던 정부, 그때의 그 정부도 할일 다하지 못하고 거짓말만 한 정부입니다. 그때 강제로 끌려간 납북인사의 인권에 대해 모르게 하려는 지금의 정부도 할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입니다.

아버지, 6.25 동란의 아픈 상처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지려나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6.25 동란 때 북쪽으로 납치된 10만 여명의 납북인사에 대해서는 없었던 일인 듯, 잊혀진 것으로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 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 뵙게 되는 그날, 그날이 올 때까지 내내 건강하시기만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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