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중간결산] 핵문제 간 곳 없고 정치거품만 남아

▲ 이틀째 회담을 갖는 남북 대표단

남북 당국자 간 실무회담이 17일 저녁까지 막판 난항을 겪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에 의하면 출퇴근 식으로 이틀 간 진행되는 이번 회담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는데도 양측 간 이견이 쉽사리 좁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합의사항이 도출되고 나서도 ‘공동보도문’의 사소한 문구까지 시비가 오가던 전례를 보면 회담대표단은 자정을 넘겨 밤이 새도록 ‘초과근무’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협상전술이 그렇다. 합의를 해줄 수 있으면서도 시간을 질질 끌어 일부러 ‘극적 타결’의 인상을 남김으로써 자신들이 많이 양보한 듯 생색을 내는 것이다.

이번 회담이 애초에 그랬다. 북한은 비료문제가 절박해지니까 ‘비료 달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실무회담을 제의했던 것뿐인데 남한에서 애써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플러스 알파’를 기대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한을 변화의 길로 이끌기 위한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욕심에서 비롯된 ‘플러스 알파’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적 거품 많은 회담

이번 회담은 처음부터 거품이 너무 많았다. 어제(16일) 그렇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시시각각 회담 관련 소식이 전해졌건만 오늘(17일)은 하루 종일 단신(短信) 몇 개만 전해지고 썰렁하다.

17일 저녁 현재 남북이 합의한 사항은 “남한은 북한에 비료를 제공한다”는 것뿐이라고 전해진다. 몇 톤을 언제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전달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합의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은 쉽게 합의가 될 것이다. 북한은 마치 맡겨둔 비료를 받아내듯 “비료 20만 톤을 5월 말까지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데, 남한 정부도 이미 20만 톤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그 다음 순서이다. 북한이 요청한 비료의 총량은 50만 톤인데, 나머지 30만 톤을 미끼로 남한이 뭘 얻어낼 것인지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이 1차 제안한 것은 장관급 회담 개최와 8.15 이산가족상봉이다. 북한은 우선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남측 대표단이 방북하는 것에는 합의했다고 한다. 남측은 그 대표단을 통일부 장관이 이끌기를 원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의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장동영 통일부 장관을 길들이려고 지금껏 전례 없는 비난을 퍼부어왔다. “가볍게 멋없이 놀다가는 신세를 망칠 수 있다”(노동신문, 2004년 8월 20일자), “분별이 없이 남을 깎아 내리는 데만 신경을 쓰는 저질 인간”, “혀끝을 잘못 놀린 데 대해 전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우리민족끼리, 2004년 8월 21일자)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당장 정동영 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남한은 어떻게든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협상하려 하고, 북한은 이러한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미끼로 나머지 30만 톤 지원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결국 북측 대표단은 큰 선심을 쓰듯 ‘장관급 방북단’을 합의해주고 남측의 나머지 제안사항은 문구로나 남을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30만 톤의 협상 내용은?

핵문제는 애초에 북한이 의제로 삼으려 하지도 않겠지만 북측이 남측의 체면을 세워준다(?)는 차원에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한다’ 정도의 표현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무런 강제력이 없는 ‘말’일 뿐이다. 장관급 회담이나 이산가족상봉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입장에서 강제력 없는 합의는 평양에 돌아가는 즉시 휴지통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 5주년인 6월 15일까지 남북관계는 아무 내용없는 유화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남한을 이용해 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피해가면서 ‘시간 벌기’를 할 수 있고, 남한은 “위기 상황에 조정자의 역할을 했다”는 식으로 정치적 자찬에 나설 것이다. 그러나 6.15가 지나가면 남북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할 것이다.

북한은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남한 정치인들마저 이것을 뻔히 알면서 남북관계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씁쓸한 ‘민족공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정동영 장관만 입지 커질 가능성

▲ 정동영 통일부 장관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 따르면 이번 남북 당국자 간 회담을 앞두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대단히 상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껏 들떠 이봉조 차관을 “협상의 전문가”라고 추켜세우며 “건배”를 연발했다고 한다. 지난 10개월간 중단되었던 남북회담이 재개된 것에 대해 주무부처 장관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에 정 장관 개인의 정치적 야심이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모르긴 해도 비료 20만 톤을 던져주고, 추가 비료제공을 미끼로 평양을 방문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싶은 심산인지 모른다. 자신과 경쟁하는 대권주자들이 여기저기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반면 ‘외교안보통일 분야 부통령 격’이라는 권한을 쥐고도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듯한 자신의 이미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합의문을 더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장관급 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만이라도 들어가면 정부는 이번 차관급 회담을 성공작으로 자평할 것이다.

정치인이 개인적인 야심을 품는 것까지야 간섭할 수 없지만 공과 사는 명백히 가려야 한다. 북측이 이 점을 협상에 유리한 수단으로 놓칠 리 없기 때문이다.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