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위] 시작前 파행 배경과 전망

10개월만에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가 19일 첫 전체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장시간 신경전을 벌이면서 전례를 찾기 힘든 파행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측 대표단은 처음에 파행의 원인을 일부만 밝혔다가 민감한 일부 원인을 뒤늦게 공개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파행은 기조발언문, 공동보도문(합의문) 초안, 식량차관제공합의서 초안을 북측이 먼저 보여 달라고 요구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합의서 초안을 먼저 보여 달라는 북측 요구는 우리측의 대북 쌀 차관 제공 의지를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지면서 쌀에 대한 북측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그대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 왜 파행 겪나 = 애초 전체회의 시작 일정은 오전 10시였다.

북측은 그러나 오전 9시 40분께 우리측에 기조발언문, 합의문 초안, 식량차관합의서 초안 등 3가지 문건을 먼저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북측은 당시 초안을 서로 교환하자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기조발언문에는 이번 회담에 임하는 기본 입장과 주요 의제에 대한 제안 등이 들어 있고 합의문에는 회담의 성과를, 차관합의서에는 쌀 차관의 규모와 국내산 여부, 제공시기, 모니터링 횟수 등이 들어간다.

종전 회담과정에서 기조발언을 사전에 교환한 적은 가끔 있었지만 합의서 초안까지 미리 주고받은 적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이에 따라 오전 10시 20분께 `불가’ 입장을 통보했지만 북측은 세 가지 가운데 기조발언문만이라도 보여달라고 요구 수준을 낮췄다.

하지만 우리측은 `관행에 어긋난다’며 거부했다.

이 때문에 전체회의는 이날 오후 4시 현재까지 열리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전체회의가 사전 준비 및 기술적인 문제 등을 이유로 1시간 안팎씩 늦게 열린 적은 있지만 오후가 되도록 남북이 신경전을 계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 정부 `쉬쉬’ 했나 = 이날 오전 10시를 넘겨서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측 회담 관계자는 오전 11시 30분을 넘겨서야 “북측이 남측의 기조발언문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면서 비롯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양측이 공동으로 옥류관에서 점심을 마친 뒤에도 전체회의가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측 관계자는 문의가 계속되자 오후 3시께 “북측이 기조발언문, 공동보도문 초안, 식량차관합의서 초안을 먼저 보여달라고 했다”고 `숨어 있던’ 이유까지 공개했다.

이처럼 뒤늦게 상세한 이유를 공개한 것은 우리측이 오전 10시20분께 사전에 주는 게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제시한데 대해 북측이 3가지 가운데 기조발언문을 달라고 요구사항을 수정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합의문과 식량차관합의서에 들어갈 대북 쌀 차관 문제가 갖는 민감성을 감안, 우리 측이 이런 내용에 함구하다가 북측이 요구수준을 낮춤에 따라 공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쌀 차관 최대 쟁점 부상 = 북측의 이날 태도에 비춰 식량 차관은 애초 예상대로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이미 지난달초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쌀 40만t을 달라고 했다.

당시 함께 요구했던 비료 30만t은 우리측이 1천8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투입, 지난 달말부터 대북 수송에 들어간 상태다.

북측이 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식량난 때문이다. 지난 해 우리측으로부터 쌀 차관을 받지 못한데다 중국으로부터의 식량 지원도 크게 줄면서 식량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거 경협위라면 쌀 차관 합의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식량차관의 동결상태가 이어지면서 6자회담의 진전 여부가 쌀 차관 재개를 위한 고려 요인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앞서 제20차 장관급회담에서 우리측이 쌀 차관을 논의하게 될 이번 경협위의 개최 시기를 2.13합의의 초기조치 시한인 4월 14일을 넘긴 때로 잡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시한을 넘겨서도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자신들이 이행해야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 초청과 영변 핵시설 폐쇄.봉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이번 회담에 임한 우리 대표단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초기행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 압박책으로 기능해 온 쌀 차관 유보조치를 풀 경우 생길 수 있는 대북 지렛대의 상실과 여론 악화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쌀 차관을 주지 않고는 열차시험운행 등을 다룰 이번 경협위 전체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제1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우리측의 쌀 차관 논의 유보로 결렬되고 북측이 뒤이어 이산가족상봉을 전면 중단하면서 남북관계가 냉각기에 들어간 전례도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북측이 이날처럼 회담 초반부터 쌀 차관 문제를 먼저 매듭짓고 넘어가자고 버틸 경우 전체적인 협상 구도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추가로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불거지지 않는 한 이번에 차관 제공에 합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북한이 미국의 BDA 해법을 거부할 경우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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