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북한 수용소내 임신은 강제유산”

지난 6월 <수용소의 노래> 저자 강철환씨가 부시 대통령을 면담하면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는 강씨 이외에도 수용소 출신으로 정치범 수용소 해체 운동을 벌이고 있는 탈북자들이 많다.

국내에서 북한 수용소 해체운동의 선두에 서고 있는 김태진씨를 7일 만났다. 그도 ’15호 관리소’로 불리는 요덕수용소 출신이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 유일한 과업은 수용소 해체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첫 탈북 1년여 만에 북으로 강제 송환됐다. 보위부 조사를 거쳐 요덕수용소에 수감됐다. 그곳에서 4년을 복역하고 풀려난 이후 재탈북, 우여곡절 끝에 남한으로 올 수 있었다.

김씨는 지난 3월 제네바 UN인권위원회 3차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한 사전회의에서 증언했다. 그는 그곳에서 개의 먹이를 훔치기 위해 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정치범들의 실태를 고발했다.

그에게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사랑하는 여자와 갖게된 아이까지 유산시켜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체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수용소의 비극에 대해서 들어봤다. 그는 향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로서의 활동 포부도 밝혔다.

– 탈북과 체포, 정치범수용소까지 경험을 말해달라.

1년 정도 탈북생활을 하다가 체포됐다. 8개월 동안 조사를 받으면서 보위부원들에게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조사를 마치고 정치범수용소에 강제 수감됐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삶’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생관리가 안 되어 얼굴로 ‘이’가 기어 다니는데 우리는 ‘이보다 못한 사람’이라서 그것을 죽이지도 못한다.

정치범수용소의 수감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많은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중국의 감옥에라도 가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중국의 감옥에는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있고 배가 고프지 않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 정치범수용소 내에서 태아를 강제유산시킨 것을 목격한 것으로 알고 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반응도 많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이 있다. 임신 사실이 들통나면 강제유산 뿐 아니라 수용소 안에 있는 감옥에 가야한다.

나도 그곳에서 한 여자를 알았고 사랑하게 됐다. 아이를 갖게 돼 몰래 아이를 유산시켰는데 요오드액에 증류수를 섞어서 물고기에 떨어뜨려보고 물고기가 죽을 정도가 되면 그것을 (여자의 자궁에) 넣어서 유산을 시킨다.

그 사실이 알려져 한 달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고문 후에는 벼룩이 득실거리는 방에 들어가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 일로 인해 수용소 생활이 1년 연장됐다.

– 일부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은 영아 살해를 증언하고 있다. 알고 있는 사실이 있나?

탈북을 했다가 중국에서 북송되는 경우 ‘단련대’라는 곳에 수감된다. 그 중에 탈북여성들이 중국에서 임신을 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아이 머리에 비닐을 씌워 질식사시킨다. 그 이유는 조선은 단일민족인데 중국 사람의 씨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 정치범 수용소에서 겪었던 인권유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처음 수감되고 보위부 조사 때문에 영양실조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런데도 수용소에 들어가자마자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수감자들은 부식토를 나르는 작업을 했는데, 나는 힘이 없어 다른 사람들보다 부식토를 적게 담았던 적이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보위원들이 나를 발로 차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진 적이 있었다.

지게에 무거운 것을 머리에 지고 가다가 경비병이 지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인사를 안했다. 그 때문에 마구 구타를 당한 경험도 있다.

옥수수 밭 경비를 서다가 불을 피우고 옥수수를 구워먹다 들켰다. 경비원들이 불붙는 장작으로 내 다리를 마구 때리고 지진 적도 있다. 그로 인해 몸에 생긴 화상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이것은 모두 수용소에서 생긴 것들이다. 지금도 그것을 볼 때마다 공포에 떨기도 한다.

– 정치범수용소에는 큰 죄를 지은 사람들만 수감되나?

아니다. 말도 안되는 죄로 끌려와 20~30년간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삽날에 맞아 파상풍으로 골수가 썩어 팔을 잘린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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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있는 사람들은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 생존을 위해 인간임을 잊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살아야겠다는 욕망은 뱀과 개구리, 쥐를 먹게 하고, 개 먹이조차 먹게 만든다. 인간 생지옥이다.

북한 사람들에게 공개처형은 대수롭지 않은 일

– 정치범수용소에서 일어나는 공개처형을 목격한 적이 있나?

수용소에서 도주를 하다 잡히면 무조건 총살시킨다. 예외가 없다. 수감자들을 다 모여놓고 공개총살을 한다. 우리는 모두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봐야 한다. 내가 수용소생활을 하는 동안 4~5번 정도 공개총살을 봤다.

– 그렇다면 일반 사회에서의 공개처형은 어떤가?

일반 사회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은 공개처형에 익숙해져서 ‘여느 집에서 돼지를 잡는’ 것처럼 생각할 뿐이다. 북한 정권은 “너희는 이런 짓 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으로 공개처형을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 북한에서의 종교생활은 어떤가?

북한 헌법상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종교생활이 전혀 허락되지 않는다. 탈북을 했다가 체포된 사람들에게 ‘선교사를 만났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먼저 할 정도다. 북한 정권은 오로지 김일성․김정일만 섬기라고 하고 있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독재정권은 국제사회와의 관계 때문에 거짓 선전을 한다. 북한의 교회나 성당, 사찰 등이 TV에 비쳐지는 장면들도 사실은 노동당에서 조직된 사람들이 연출한 것이다. 북한 정권에게 종교는 국제사회의 원조를 유인하기 위한 존재에 불과하다.

자유와 배부름의 가치, 우리는 잊고 있다

– 강철환씨를 비롯해서 수용소 출신의 탈북자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포부가 있다면.

큰일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북한의 실상, 특히 수용소의 실상에 대해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뿐이다. 수용소의 생활을 겪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그곳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잊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탱할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

– 지난 3월 제네바에서 UN인권위원회 ‘북한인권결의안’ 채택 사전회의에서 북한인권실태를 증언했다. 유럽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3차에 걸쳐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돼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인권에 대해 유럽사회와 연대의식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내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저들이 뭔가를 해주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 국제사회에 비해 한국 내의 북한인권개선에 대한 관심의 목소리가 부족하다. 실망하고 있지는 않나?

한총련 등의 친북세력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요즘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 모든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북한인권개선과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겠나. 정확한 사고와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대표로서의 활동계획은?

북한은 생존을 위해 자신이 인간임을 잊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기본적 인권수준도 없는 북한의 현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배부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북녘 동포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게 나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이다. 내가 그것을 알리기 위해 허락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현주 대학생 인턴기자 lhj@dailynk.com
김송아 대학생 인턴기자 ksa@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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