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연구] 최고사령관 김정일―1 군부장악 노하우

▲ 인민군 고위장성들의 충성 맹세 모습. <사진:북한 화보'조선'=chosun.com>

1980년대 중반 인민군 총참모장 오극렬(현재 당 작전부장) 대장이 군 개혁안의 결재를 요청했다. 인민군대 내의 정치기관 폐지가 담긴 것이다. 오 대장은 인민군 지휘계통이 군정(軍政)과 군령(軍令)으로 이원화돼 있어 유사시 기동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군정계통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도 쉽게 동의했다. 보고서는 김일성 주석에게도 올라갔다. 김 주석은 “이따위 쓰레기 같은 것을 누가 만들었냐”며 노발대발했다. 김정일은 화부터 내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김 주석의 얘기는 간단했다. “군대의 정치기관을 없애면 대포알이 너한테 날아온단 말이야”라는 것이었다. 김정일도 고개를 끄덕였다.(임영선 ‘남쪽으로 흐르는 강’)

김정일은 그때까지 군대 내 정치기관이 갖는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김정일의 군 경험은 그처럼 일천하다. 대학시절 군사야영을 한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인민군은 총정치국을 정점으로 하는 군정계통과 총참모부를 핵심으로 하는 군령계통으로 나뉘어 있다. 인민군대 안에는 당의 대표격인 정치기관이 파견되어 있어 군령계통을 견제,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이 군정계통이다. 작전과 전투를 수행하는 군령계통의 일선 지휘관이 군사훈련을 위해 부대를 움직이려면 사전에 해당 정치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치기관의 사전 동의 없이는 총 한 방 쏠 수 없다.

북한군은 제도적으로 당의 통제를 받게 되어 있다. 김정일은 당의 최고 지도자인 총비서다. 그러므로 군은 김정일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김정일은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 위원장과 인민군 최고사령관 직책도 가지고 있다. 군정과 군령을 한 손에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일은 100만 이상의 병력을 완전히 장악, 통제하고 있는가. 수백만명의 인민이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그의 위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김정일 생일때 충성맹세

우선 첫째 질문에 전문가들은 대체로 “그렇다”고 동의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는 제도적으로 북한군을 지휘, 통솔하는 최고의 지위와 직책을 차지하고 있다. 굳이 지휘계통이 아니더라도 북한 군부에서 김정일에게 도전하거나 비견할 만한 인물은 없다. 1992년 4월에는 664명의 대규모 장성급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일부 김일성 세대의 원로들이 원수·차수로 진급했다. 이들에게 직접 진급신고를 받고 견장을 달아준 사람은 김정일이다.

매년 김정일 생일이 있는 2월이면 그의 생가로 선전되는 백두산 밀영에서 인민군 고위 장성들의 충성맹세 결의대회가 열린다. 또한 김일성 생일에 즈음한 4월에는 김일성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에 대한 인민군 고위장성들의 충성맹세 예식이 열린다.

김정일이 단지 지위와 직책만으로 군을 통제한다면 그의 군부통제는 오래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무엇이 있다는 얘기다.

군에 대한 김정일의 관심과 배려는 여타 분야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각별하다. 김일성 사후 한동안 그는 군부대 일변도의 시찰 행태를 보여주었다. 대량 아사가 발생하는 참혹한 현실이었지만 그는 민생현장을 외면하고 군부대만을 고집했다. 그는 “총대 위에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이 있고, 번영이 있고, 찬연한 미래가 있다”(노동신문 02. 2. 16)고 드러내놓고 말한다.

북한의 신문, 방송 등 선전매체들도 김정일이 언제나 병사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며 김정일의 ‘병사사랑’을 크게 다루고 있다. 북한 텔레비전에는 김정일이 총 쏘는 자세를 취해 보이면서 군인들과 담소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나온다.

김정일은 나름대로 능란하게 군 통치술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측근을 심야에 불러내 엄청난 선물을 주고 부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한다. 일선 지휘관들에게 직접 ‘백두산 권총’을 준다거나 고급 벤츠 자동차를 안기기도 한다. 군 핵심인물의 가정사도 꼼꼼히 챙긴다. 주요 인사들의 경조사가 있으면 직접 집으로 찾아가 격려하기도 하고 선물을 보내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군 고위인사들에 대한 배려는 사회적인 재화의 분배와 공공시설의 이용 등과 같은 데서 특혜를 베푸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장성급 이상이 갈 수 있는 병원이 따로 있으며, 그들을 위한 식량공급소(2호공급소)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식량난의 와중에 외부에서 지원되는 연료나 쌀 등이 인민군에 우선 공급되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기타 상점이나 차량 등도 마찬가지다. 장성들 본인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함께 혜택을 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데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군부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서해교전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군에 끌려다닌다” 시각도

이에 대해 정보기관 출신의 한 고위인사는 “김정일은 군부의 건의나 제의를 웬만하면 들어준다”면서 “이런 행태들이 표면적으로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김정일 특유의 군 통치술이라고 한다. 그가 군부의 건의나 제의를 가능한 한 수용하는 것은 군에 대한 애정과 신뢰의 표현일 수 있다. 더욱이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표방하고 있는 마당이다. 군부의 의견을 외면하기보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받아들임으로써 군의 사기를 높이고 충성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출처:chosun.com>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 일본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장 겸 주임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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