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연구] 가족과 후계구도

김정일에게 아들을 낳아준 부인은 성혜림(2002년 5월 65세로 사망)과 고영희(2004년 6월 57세로 사망) 둘이다. 1960년대 말부터 같이 살기 시작한 성혜림과의 사이에는 정남(34세), 79년쯤부터 동거에 들어간 고영희와의 사이에는 정철(24세), 정운(22세) 형제가 있다.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이 모르는 사이 정남을 얻었다. 김정일은 ‘첫 손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김일성에 언제 통보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던 것 같다. 한번은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가 성혜림을 찾아가 “언니는 우리 오빠보다 나이도 많고(5살 연상) 한 번 결혼해서 애도 딸린 여자 아니오. 정남이는 내가 키울 테니까 나가시오. 노후는 잘 보장해주겠오”라고 말했다.

화가 난 성혜림은 애(정남)를 업고 시아버지한테 가서 말씀드리겠다고 김정일에게 따졌다. 김정일은 아직은 때가 아니라면서 성혜림을 달랬다. 성혜림이 고집을 부리니까 김정일이 화가 나 권총을 뽑아든 적도 있다. 김정일은 결국 정남이 4살 때인 75년 정남을 김일성에게 조용히 데려갔다. 김일성은 처음에 엄청나게 화를 냈으나 후에는 손자가 태어난 것을 기뻐했다.(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김경희가 성혜림한테 나가살라고 한 73년쯤부터 성혜림의 건강은 악화됐다. (아들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원인이다.(성혜림의 언니 성혜랑)

‘김일성 3년喪’ 제안한 고영희에 감동받아

김정일이 고영희와 동거한 뒤에도 성혜림을 모른 체 한 것은 아니다. 77년 성혜림이 평양의 봉화진료소(당 간부 전용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몇 시간씩 병상을 지켰다. 더러 눈물을 보이며 “빨리 나아야지”라고 위로하기도 했다.

김일성은 정남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김정일을 정식 결혼시켰다. 김정일이 33살 때인 75년이다. 상대는 김일성 집무실 타자수 김영숙(58세)이다. 당 간부들 사이에서는 ‘서장동(김영숙의 집) 사모님’으로 통한다. 김영숙은 별다른 직책이 없다.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는 설송(31세)이란 딸이 있다. 설송은 외부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보다 몇 년 뒤쯤 김정일은 고영희를 만났다. 고영희는 재일교포 출신 유도인 고태문(프로레슬러 역도산과 막역한 사이였고 북송 후 북한 유도계의 대부로 활동)의 딸이자 무용수다. 김정일은 일본 영화를 본 뒤 “일본 여배우 중에는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곤 했는데 고영희가 그녀를 닮았다.(김정일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고영희는 80년대 들어 평양의 김정일 저택에 살면서 김정일이 각지로 이동할 때 같이 다닌 적이 많다. 사실상의 정부인 역할이다. 고영희는 김일성이 사망(94년)하자 3년상을 치를 것을 제일 먼저 제의하여 김정일을 감동시켰다는 얘기가 있다.

제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2003년 8월) 때 김정일의 선거구(649구•어디인지 알려져 있지 않음)를 고영희가 정해 주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영희는 작년 6월 유선암 등으로 죽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인민군대에 대한 강연자료에서는 고영희가 ‘존경하는 어머님’으로 통했다. 외부 세계는 이를 우상화로 해석했다. 김정일의 매제(동생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이 실각(공식 무대에서 사라짐)한 것은 이보다 6개월쯤 전인 2003년 여름이다.

그 후 김정일의 후계자는 김정일과 고영희 사이의 정철, 정운 중 한 명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김영숙과 낳은 딸 설송은 전혀 안 알려져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정남이 후계자 반열의 선(先)순위에 올라 있었다. 70년대 말 김정일은 어느 날 정남을 자신의 집무실에 데리고 갔다. 김정일은 회의실 중앙자리를 가리키면서 “네가 커서 큰 소리 칠 자리다”라고 말했다.(이한영) 김정일은 정남이 어렸을 때 자신과 달리 다리가 미끈했던 것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권력의 장자 상속’을 의심하게 하지 않았다.

김정일은 항상 정남을 앞에 걷게 하면서 “저 놈 다리 좀 보오. 전봇대 같구나. 엉치를 뒤집어지고(업고라는 뜻) 걷지 않소”라며 기쁨을 나타내곤 했다.(성혜랑) 시기는 명확치 않지만 김일성 역시 “정남이는 경제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민족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조선일보 2001년 5월 14일자 보도)

그러나 성혜랑이 1996년 서방으로 망명하면서 정남의 위상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김정남이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사건(2001.5)도 한몫했다.

이후 후계자 얘기가 나올 때면 정철, 정운 형제가 먼저 등장한다. 정철은 스포츠나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 미국 프로농구 NBA의 열렬한 팬이다. 컴퓨터 등을 잘 만진다. 김정일은 정철에 대해 “그 애는 안 돼. 여자아이 같아”라고 평가했다.(후지모토 겐지) 정철은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라는 설이 있었는데 한국 정보기관의 고위관계자는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했다.

정운에 대해서는 정철보다 알려진 것이 더 없다. 어떤 직책인지, 결혼은 했는지 모두가 베일에 쌓여 있다. 후지모토 겐지는 정운이 정철보다 김정일을 더 닮았고, 체형까지 흡사하다고 썼다. 김정일은 정운에 대해 “리더십이 있다”고 했다.(한국 정보기관 전 고위관계자)

2000년 7월 16일. 후지모토가 김정일 가족과 백두산에 올랐을 때다. 정운이 후지모토에게 “저쪽으로 가자”고 했다. 정운은 소변을 함께 보자고 했다. 정운과 후지모토는 시원스럽게 소변을 봤다. 이로부터 사흘 정도 지났을 때였다. 후지모토가 마실 맥주가 떨어졌다고 하자 정운은 어디선가 하이네켄 맥주를 구해왔다. 정운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격이라는 증언들이 있다.

그렇다고 김정일이 과연 후계자를 내세울지, 내세운다면 누구로 할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63세에 접어든 김정일이 아직도 후계자를 키우는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정남보다 고영희의 소생인 정철, 정운 형제 중 한 명이 더 유리하다는 분석만 나오고 있다.<출처:nkchosun.com>

이기동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연구위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