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연구] 가정생활

김정일은 아버지(김일성)에게는 ‘절대 충성’, 어머니(김정숙)는 ‘존경’했다. 부인에 대해서는 신경을 썼지만 모든 행동을간섭했고, 자식은 귀여워했지만 일단 멀어지거나 눈밖에 나면 철저히 외면했다.

첫아들 김정남이 태어났을 때(1971년) 김정일은 새벽에 산모(성혜림)가 입원해있던 병원이 떠나갈 듯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기뻐했다. 병실 밖에서 대기하다 아들을 낳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김정일은 이내 자동차를 몰아 성혜림의 언니인 성혜랑의 집으로 찾아가 “이제 금방 혜림이가 아들을 낳았어”라며 기쁨에 겨워했다. 장남에 대한 김정일의 애정표시는 남달랐다. 정남이 3∼4살 때 ‘쉬’ 하고 싶다고 하자 김정일이 내의바람으로 우유병을 들고 오줌을 받아내는 비디오 테이프도 있다(김정일 처조카 이한영).

절대권력자답게 자식에겐 무엇이든 해줬다. 정남이 생일 때는 100만달러를 들여 전 세계의 장난감을 사주기도 했다. 최신 전자오락기, 놀이기구, 다이아몬드 박힌 시계, 도금된 장난감 권총 등도 정남의 300평 놀이방에 가득 채워졌다. 김정일이 관저에서 혼자 식사할 때 5∼6살의 정남을 식탁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1980년 3월 김정남이 유학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 갔을 때 김정일은 매일같이 정남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김정일 부자는 전화선을 통해 제마끔(저마다) 울었다(성혜랑).

그후 김정일은 고영희를 새 부인(75년쯤에 사귀기 시작했고, 79년쯤부터 동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음)으로 맞고, 고영희가 아들(정철·정운)을 낳자 사랑이 정남에게서 정철·정운으로 옮아갔다. 정남이 스위스로 유학을 간 탓도 있지만, 80년대 초 들어서는 지방 초대소(별장) 등에 놀러갈 때도 꼭 정철·정운 형제만 데리고 다녔다.

김정일은 부인에 대해서도 직접 모든 것을 챙겼다. 김정일이 고영희와 동거하면서 신경질환을 앓기 시작한 성혜림이 모스크바에 요양차 갈 때나 정남의 유학 등 모든 것을 자신에게 허락받도록 했다. 김정일이 고영희를 만나기 전까지 김정일과 성혜림은 무척 잘 맞는 짝이었다. 성혜림은 김정일보다 5살이나 많다. 둘은 동질의 감성, 예술적 센스, 기지로 손뼉이 딱 맞아떨어지는 교감으로 재미있어 죽는 친구 같았다(성혜랑).

고영희는 재일동포 출신으로 북한 최고의 예술단인 만수대예술단 무용수였다. 큰 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늘씬한 몸매를 갖춘 그를 김정일은 눈여겨보았다. 어떤 때는 연습실까지 찾아와 고영희가 연습하는 것을 직접 지켜볼 정도였다. 나중에 고영희는 주말파티에 김정일의 옆자리에 앉는 고정파트너가 되었다. 그는 파티장에 들어설 때부터 김정일과 동행했고, 직접 겉옷까지 벗겨주었으며, 함께 춤을 추기도 했다. 김정일은 고영희와 연애하면서 벤츠를 타고 드라이브를 즐겼으며 차 안에서 한국 노래를 밤새도록 듣기도 했다(김정일 요리사 후지모도 겐지).

김정일은 아버지에 대한 충성이 대단했다. 김일성·김정일 관계는 부자 사이의 애틋한 사랑이라기보다 ‘권력관계’가 중심에 놓인 인상이 강하다. 김정일은 삼촌 김영주와 권력투쟁을 벌이면서 74년 김일성주의 수령독재체제를 완성했다. 북한이라는 작은 땅에서 아버지를 ‘신’으로 만들어준 대신 절대권력을 물려받은 것이다. 김일성은 “정일이가 내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사상의 최고 수준을 맛보게 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김정일은 아버지에게 ‘효성’도 보이려고 애썼다. 후계자가 된 뒤에도 매일 아침 주석궁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심기’를 살폈다(이한영). 김일성의 식사·잠자리·건강상태를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담당자의 보고를 받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그 영감이…” 하는 식으로 지칭, 친근감을 표현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북한 외교관 출신).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력이 나빠지자 문서보고를 금지시키고 보고내용을 녹음하여 김일성이 가장 편한 자세에서 보고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녹음보고는 문서보고보다 정보량이 훨씬 적게 들어가고 보고 횟수도 줄어든다. 자연 김정일 쪽으로 권력이 추가 이동할 수밖에 없다(황장엽). 김정일이 처음부터 이를 노렸는지는 불투명하다.

김정일은 생모 김정숙에 대해서는 더욱 애틋했다. 김정숙은 김정일이 일곱 살 때 사망했다. 러시아 방문 중 김정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머니”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대화 도중 ‘김정숙’을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아프리카 국가의 외무장관에게 북한방문 기간 동안 국빈대우를 해주었다(북한 외교관 출신).

김정일은 자식교육을 외국에서 시켰다. 김정남·정철·정운은 스위스 국제학교에 다녔다. 첫딸 설송은 프랑스에서 공부했다. 어려서부터 외국문물을 접하게 한다는 이유도 있고, 자신의 사생활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실제 김정일의 가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두 베일에 싸여있다. 북한을 탈출한 몇몇의 수기에서 엿볼 수 있을 정도다. 특히 고영희와의 생활은 알려진 것이 없고, 김정일·고영희의 소생인 정철·정운 형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출처 chosun.com

손광주 The DailyNK 편집인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