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 10년] 남북관계 ‘긴장상징’으로

1989년 북한과 러시아 진출을 꿈꾸며 금강산 관광사업구상을 다듬어온 ‘개척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대결의 분단시대를 화해협력으로 바꾸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지가 만나 탄생한 것이 금강산 관광이다.

1998년 11월18일. 서울 방문을 앞두고 TV를 통해 금강산 관광선의 첫 출항을 지켜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던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후원 속에서 시작된 금강산 관광사업은 한반도 해빙의 상징이 됐다.

또한, 남북관계가 전혀 없던 1998년 당시 정부는 ‘정경분리’원칙 속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을 승인함으로써 화해를 향한 의지를 보여줬고 남북한 신뢰구축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시작된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남북관계 개선의 ‘옥동자’라는 평가를 받아온 금강산 관광사업이지만 사업 후 10년이 이어져 오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제일 먼저 겪은 어려움은 2000년 봄 이른바 ‘왕자의 난’ 속에서 현대가는 반목을 거듭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10월 현대건설이 1차 부도가 나면서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금강산 사업은 정부의 지원과 후원 없이는 버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3대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꼽는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어 2001년에는 미국의 정권교체로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화해에 대한 분위기가 급변했고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가 북한에 송금한 것이 문제가 됐다.

북측과 2000년 합의한 ‘7대 사업’ 독점권의 대가로 5억 달러를 지급한 것 등을 포함해 현대아산이 대북사업에 투자한 돈은 총 1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이 돈을 송금하기 위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 정몽헌 회장 등과 함께 북한에 5억 달러를 불법송금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 문제가 된 것.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여론의 압박에 따라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특검을 수용했고 특검 과정에서 그해 8월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자살을 선택하는 불행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어 2005년에는 현정은 회장과 김윤규 전 부회장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북한이 사업 시작 때부터 파트너였던 김 전 부회장의 퇴장에 반발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또 2006년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미국 정부가 북한의 ‘달러 파이프 라인’으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지목하고 중단을 요구하면서 정부와 사업자인 현대 모두 곤혹스러움에 빠져들기도 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사업은 정주영-정몽헌-현정은으로 이어지는 현대그룹 오너들의 대북사업 열정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정부의 지원, 이 사업을 허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심 속에 ‘민족사업’에서 ‘경제사업’으로 성장을 거듭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2002년 현대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때 정부는 한국관광공사를 통해 이 사업에 우회적으로 참여, 남북협력기금 900억 원을 대출하고 현대아산도 자구책을 마련했다.

또 2002년 남북 당국 간 동해선 철도.도로가 연결되고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관광객 수가 2004년 26만 8천420명, 2005년 29만 8천247명으로 늘었고 2006년에는 핵실험으로 관광객이 줄었음에도 23만 4천446명으로 꾸준히 관광객 20만 명을 넘어선 데다 작년에는 처음으로 30만 명을 넘어서 34만 5천6명의 관광객을 기록했다.

군사분계선(MDL)을 육로로 넘어가는 육로관광이 가능했던 데는 2000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고위간부들을 대동하고 현대아산에서 건설한 고성항 부두, 호텔, 관광센터 등 금강산개발현장을 시찰하는 등 관심을 보인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사업자인 현대아산도 관광객이 점증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조금씩 경제적 이익을 획득해가며 현지에 골프장을 유치하고 LP가스 충전소를 준공하는 등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그러나 관광 10주년인 올해 금강산 관광사업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우리 정부가 관광 중단을 결정하면서 지금까지 관광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상조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요구에 북측이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사업 재개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남북관계가 급랭하면서 자칫 관광 중단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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