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31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버지!

▲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는 납북자 가족

이 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버지!

식민치하에 36년이란 세월이 지나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아버지와 우리 가족들은 36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뚫리는 아픔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69년 12월 11일 당신께서는 출장 중에 공중에서 가족들과 생이별을 시작하였고 1970년 2월 14일 39명만이 송환되고 12명이 돌아오지 못하여 또 한번 찢어지는 아픔을 가져야 하는 우리 가족들의 운명!

정부는 혹시나 간첩이 되어 돌아오지 않나 감시나 하고 자신들이 보호했어야 할 우리를 오히려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당신이 몸담았던 MBC 문화방송국은 업무상 출장 중에 당한 사고 임에도 휴직 처리로 급료지급을 중단하고, 아직도 휴직중이며, MBC 이사회에서는 송환되면 국가판단에 맡긴다며 임의대로 조건부 휴직으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MBC 문화방송국은 ‘회사사규에 없는 납북사건이라 우리는 모른다’며 납북당한 이유로 우리 가족을 궁지로 내몰았습니다. 이 모든 갑작스런 충격에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편집성 인격장애와 정서불안이 되었으며 우리 가족은 참으로 험하게 살아왔습니다.

억울하고 통탄스러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는 침묵만을 강요당했던 우리 가족들! 할머니는 평생 아버지를 생각하시면서 눈물과 한(恨)을 가슴에 안은 채 돌아가셨습니다.

이 땅에서 빼앗기기만 하고 무지와 무관심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나라가 아닌 집단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나는 국민이 아닌 세금이나 내주는 노예다!”라고 포기하며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왔습니다.

금강산이 열렸을 때, 개성공단까지 육로가 열렸다고 할 때, 한반도기가 나부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남과 북이 어우러져 부르짖을 때,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기쁨도 잠시 애써 잠재웠던 저의 마음은 더 크게 아픔으로만 다가 왔습니다.

과거에는 남북 대치관계로 어쩔 수 없이 침묵만을 강요당했고, 지금은 통일의 방해자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납치사건인데도 북한에는 납북자가 없다는 말에, 우리들을 먼저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우리 가족들을 골치 덩어리로만 바라봅니다.

국가인권위에서 납북자특별법 제정을 권고하여도 “북한에는 납북자가 없다”는 말에 정부는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면 ‘통일로 가고 있다’는 쇼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보호받지 못한 우리 납북 피해자의 인권은 소수이기에 무시하니까요!

당연히 정부가 먼저 손을 써야함에도 불구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화는 없습니다. 우리 납북 피해자들은 가장 소중하고 가장 기초적인 기본권을 보호도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무시한다면 어느 누가 진정으로 국가를 사랑할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저는 국가가 아닌 집단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까! 북한에 줄 것을 다 주고, 댓가로는 가시적인 행사나 치르고 행사인원 수가 적으니 많으니 하며 실랑이나 벌이고, 행사기간 동안만 북한에서 보낸 참가자들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만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한반도기를 흔들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하며 말로만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국의 납북 피해자 인권을 위해 먼저 애를 쓰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그리고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귀환시킨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애원의 탄원서라도 써야 합니까?

정부는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행사가 아닌 가족의 생사확인과 우리 가족들이 당해야 했던 과거의 진상규명입니다. 어느 곳도 안주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가엾은 영혼처럼 우리 가족들의 찢긴 마음을 우리 가족들의 한을 풀고 이젠 정동(靜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다고 하면 달을 보면서 “지금 아버지도 저 달을 보고 계시겠지” 하며 그리움만으로도 달랠 수 있으련만, 돌아가셨다면 제사라도 올릴 수 있으련만, 이런 작은 소망조차도 막는 무리들이 원망스럽고 원통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평상시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을 표현하신 것을 “네 애비를 생각하면 내 젖가슴이 지금도 짜르르하다”고 저를 끌어안으시면서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말씀하신 한 서린 외마디!

할머니는 8년 전 죽음을 눈 앞에 두시고 “나를 화장시켜라. 그리고 뿌려라. 웅어리진 평생의 한을 풀어 버리련다” 하신 할머니께, 둘째인 당신이 돌아오면 눈물을 흘릴 장소가 필요하다고 식구들이 애원하였기에, 눈물과 함께 안장을 허락하신 할머니! 할머니 무덤 옆에 아버지의 자리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해자는 없어지고 피해자만 남아있는 어처구니 없는 이 현실에 당신의 주검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이 곳에 묻고 곁에 나란히 모시고 싶습니다. 두 분이 함께 나란히 누워 계실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아! 할머니 아버지! 두 분만이라도 평생 보고팠던 한만은 없어지시겠지요?

2005년 12월 9일

이땅에 태어난 것이 비극인 아들이 올립니다.

※ <북한인권국제대회>가 열리는 8~10일 DailyNK는 인터넷을 통해 행사를 현장 중계합니다. 국제대회의 진행상황을 가장 빠르게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국제대회 특별취재팀 dailynk@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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