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60년 특집③] 북녘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영상편지

11일 열린 “광복 60주년 기념 북한인권개선 촉구대회”에서 납북자 가족들이 북녘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 소속 이성의씨와 <납북자가족협의회> 소속 황인철씨는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었던 서러움과 그리움, 그간의 고충을 편지에 담았다.

그중 이성의씨는 한국전쟁 당시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북한으로 끌려간 납북자의 가족. 아버지 이종영씨는 전쟁이 나자 친구들이 피신을 권유했지만 가족들을 놔두고 갈 수 없다고 서울에 남았고, 결국 인민군에 끌려갔다고 한다. 아버지가 서대문형무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가 매일 찾아갔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한국전쟁 납북자 8만 3천여명, 전후 납북자 486명이 북한 억류중

성의씨는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 본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촉구대회’에서 편지글을 읽는 내내 아버지 없이 지낸 힘들었던 세월을 생각하며 울먹였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신다면 현재 98세. 그러나 “어머니는 늘 ‘아버지는 곧은 분’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북한에서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성의씨는 이야기한다. 성의씨의 편지글에 듣던 참석자들도 모두 눈물을 쏟았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사람은 약 8만 3천여명. 그들의 생사여부는 아직 모른다. 휴전 이후 납북자는 3,790명이며 그중 486명은 아직도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 납북자 가족들은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수년째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만 정부는 ‘기다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은 “자기 부모형제들이 납치되어도 저렇게 태연하겠는가”라고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면서 “납북자 가족의 이 절규의 못소리를 제발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성의씨의 편지글 전문.

북쪽에 계신 아버지! 막내딸 성의입니다.

아버지, 언제나 아버지를 불러볼 수 있나 그날만을 고대했습니다. 아버지, 지급은 어떻게 지내시냐고 여쭙기조차 망설여집니다. 큰 뜻을 펴시고 올곧은 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그만 난리를 만나 납치되신 아버지, 그 모진 나날을 어찌 견디어 내고 계십니까?

6.25 동란 후 서울에는 어머니와 두 언니와 막내인 저, 이렇게 4식구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7남매 중에서 오로지 세 딸만 남게 된 것이지요.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온몸으로 견디어내신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셔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특히 연좌제로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던 저희들, 아버지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고도 깊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다니시던 직장 동료 분들이 함께 피난가야 한다고 재촉하였을 때 저희 7남매와 어머니가 걱정되시어 혼자 떠나시지 못하셨다지요. 아버지의 자상하심과 그 크신 사랑이 오히려 온 가족의 불행과 이렇게 긴 생이별의 실마리가 되었기에 더욱 애통합니다.

사진의 얼굴로 밖에는 기억할 수가 없는 아버지, 뵙고 싶습니다. 아버지, 쩌렁쩌렁하셨다던 그 목소리, 지금은 어떠하신지 듣고 싶습니다.

아버지! 바르시고 곧으셨다는 아버지, 그래서 북쪽에서는 살아계시기가 힘들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래도 살아만 계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00세 넘으신 할머니도 아들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소식이라도 듣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를 그렇게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먼저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평소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계신 북쪽이 가까운 데가 좋겠다고 하시어 파주에 모셨습니다.

5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강산이 바뀌어도 다섯 번도 더 바뀌었을 동안 남편과 아내가 생이별로 가슴을 쳐야하고, 천륜인 부모와 자식을 강제로 떼어놓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어느 누가 저지를 수 있으며, 하늘아래 어떤 누가 다른 사람의 눈에 이렇게 피눈물을 흘리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쟁을 막지도 못하고 도망쳤던 정부, 그때의 그 정부도 할일 다하지 못하고 거짓말만 한 정부입니다. 그때 강제로 끌려간 납북인사의 인권에 대해 모르쇠 하려는 지금의 정부도 할일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입니다.

아버지, 6.25 동란의 아픈 상처들이 하나씩 둘씩 풀려지려나 기대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6.25 동란 때 북쪽으로 납치된 10만 여명의 납북인사에 대해서는 없었던 일인 듯, 잊혀진 것으로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 뵙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나 뵙게 되는 그날, 그날이 올 때까지 내내 건강하시기만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박형민 기자 big@dailynk.com
이현주 대학생 인턴기자lh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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