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주년] 한반도 냉전터널 끝이 보인다

“한국과 같은 약소국가의 생존전략은 4마리 코끼리와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들 코끼리들이 날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강대국의 흥망」의 저자인 미국 예일대 폴 케네디(Paul Kennedy) 교수는 2004년 10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5회 세계지식포럼에 참석, 필연적으로 주변 4강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의 처지를 이 같이 비유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4마리 코끼리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동물로 비유된 것은 어찌 보면 광복 60주년을 맞는 한반도의 역학관계를 가장 역설적으로 잘 표현한 발언일 수 있다.

구한말~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가 광복 60주년을 맞는 올해 북한 핵문제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사실 강대국들의 병참기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육교적 역할, 다수국가들 사이에 위치해서 완충적 역할을 해야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이 한민족의 운명을 쥐고 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 차이 역시 자생적 결과가 아니라 미-소에 의해 주도된 냉전체제의 산물이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학자들도 많다.

광복 60년을 맞는 한반도의 운명이 한민족끼리가 아닌 외세에 의해 결판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은 1993년과 2002년 1.2차 북핵 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백승주 북한실장은 “북한 핵문제는 한민족 문제를 한민족끼리 해결하는 흐름을 가로막은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됐다. 한반도 문제를 국제문제로 변질시킨 좋지 못한 전례”라고 말했다.

북한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의가 나오자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고 IAEA와의 협상을 전면 거부하고 나서는 등 벼랑끝 전술을 구사했고 이에 따라 미국은 이듬해 여름 영변 폭격계획까지 세웠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태평양함대가 한반도 인근으로 이동하고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중인 미 전투비행 단 전투기 수백대가 폭격준비를 했던 사실이 포착되기도 했다.

한반도에 2차 검은 핵구름이 드리워진 2002년에도 북핵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상정돼야 하며 유사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는 등 미국 조야에서 ’군사적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2차 핵위기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속히 진행되던 남북한 주도의 한반도 해빙분위기를 한동안 꽁꽁 얼게 했다. 워싱턴의 기침에 서울과 평양이 감기가 들어 이불을 꽁꽁 싸매고 드러누운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불안정한 안보상황은 정전(停戰)체제가 반세기 이상 지속하면서 냉전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해 일방에 의한 전쟁의 불씨를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길이야말로 광복 60주년을 맞은 한반도가 직면한 화두라는 것이다.

윤 황 선문대 북한학과 교수는 “냉전체제에 있는 한반도가 이제 새로운 옷을 갈아 입어야 할 때”라며 “광복 60주년인 올해는 한국의 의지가 반영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제4차 6자회담(7.26~8.7)에서 남북한과 4강 수석대표들은 비록 원론적인 수준이지만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논의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져 한반도 냉전구조 청산을 위한 돌파구가 조기에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방안과 관련해 남북한 또는 북한과 미국, 남북한-미국-중국 등이 주체가 되느냐를 놓고 논란이 예견되지만 일단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만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이달 마지막 주에 속개될 6자회담에서 6개항의 공동성명이 일부 수정을 거쳐 타결되고, 그 안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 관련 조항이 명시된다면 핵폐기와 검증, 상응조치의 이행과는 별도로 정전협정의 서명자인 북한, 중국과 미국, 그리고 실질적인 당사자인 남한까지 포함해 최대한 4자간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냉전의 마지막 유물을 청산하는 일이며, 이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남북한이 당사자이며 국제사회가 이를 적극 지지, 보장하고 동참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원칙”이라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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