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중고등부 우수상] 진보는 죽었는가

진보는 죽었는가


이도영


, 오늘로 대한민국의 진보는 죽었습니다.”


 512, 통합진보당의 부정 선거와 관련된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당권파측이 회의 도중 무력으로 단상을 점거하고 폭력사태를 빚은 사건을 보고 저명한 진보논객인 진중권 교수가 자신의 트위터에 남겨놓은 말이다. 비당권파인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는 이 과정에서 머리채가 잡히는 등 봉변을 당했고, 조준호 공동대표는 목 관절의 수액이 이탈하는 중상을 입었다. 무엇보다도, 엄연한 민주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민주국가의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 원칙들과 여러 국민들의 의견이 소수의 이익집단, 그것도 국민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하는 정치집단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수모를 당했다.


이런 만행을 벌이고도 문제가 되고 있는 두 의원은 현재까지도 사퇴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한 의원은 이게 대선 프레임이 걸린 거다. 내가 무너지면 줄줄이 다 무너질 거다라며 자신이 모든 진보를 대표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고 있다. 현제도상 이들의 19대 국회의원직은 본인의 자발적 사퇴가 없는 한 임기 말까지 유지된다. 국민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는 이들이(물론 NL파를 대표한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것이 결코 우리 국민의 진정한 뜻을 반영한다고는 생각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의 신성한 수단을 도둑질한 것이며, 이는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잘못이다. ‘목적이 과정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을 가진 그들의 정치, 아니 그것보다도 더욱 근본적인 준법정신의 수준이 정말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런데 이들 종북주의자들이 물의를 일으킨 건 비단 이번 사건뿐이 아니다. 통합진보당 창당 이전의 세 전신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중 민노당은 과거부터 종북주의 논란에 흽싸여있었다. 민노당 전 중앙 위원이었던 이정훈 씨는 2006년의 일심회 사건에 연루되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일심회 사건은 본 책에서 간결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자세히 서술은 않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북한의 대외연락부와 직접연결이 되어있었고, 남한에 새로운 민주적 자주 정부(물론 실제로 그런 정부는 아니었을 것이다)를 세워 북한의 고려연방제에 기여하려 했던 진짜종북 지하당이었다는 것이다. 이정훈 전 위원장은 여기서 민노당 서울 지역을 담당하던 비중이 꽤 컸던 인물이었다(그 외에도 여러 하부단체를 조직했다). 결국, 그는 과거 빛 좋은 개살구였던 주체사상을 아직도 벗어던지지 못한 것이다. 민노당은 이 사건을 놓고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종북주의를 청산하려 했지만 오히려 NL계열의 대의원들의 연루자 제명안을 삭제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는 대 활약으로 PD계열의 당원들이 대거 탈당했고, 결국 종북주의란 종기가 청산되지 못한 채 민노당에 남아 있다가 오늘날 그 종기가 곪다 터졌다. 종북주의가 청산되지 않았던 한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화제를 잠시 돌려 이제 내 주위의 이야기를 한번 해보자.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묻는다면 나중에 설명하겠다. 고등학생이란 신분상, 우리는 그렇게 많이 정치 관련 이슈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어쩌다 한 번씩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거의 십중팔구는 한결같이 현 정부에 관한 비난‘(내가 비난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그 정도로 정도 심한 비판을 하기 때문이다)을 내쏟는다. 정치에 큰 관심은 없는데 우리 현 정부에 관한 비판은 신랄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어이가 없어 늘 벙어리가 되고 만다. 물론 청소년기때 좀 자기가 있어보이려는 과시욕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또 어쩌면 현 정부가 진짜로 잘못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나는 정말 그렇게 믿고싶다. 정치 이슈를 모른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그런 건 잘 몰라.”라고 반응을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언제부터 대한민국 청소년이 세계에서 현 정부에 대해 가장 불만이 많은 학생이 되었을까?


어린 학생들은 순수한 백지이다. 따라서 쉽게 어느 쪽에 물들기 쉽다. 극좌익 언론(또는 극우익 언론)에서 정부에 대한 흑색선전을 계속하면 순진한 학생들은 그것이 진실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해 세뇌당한 것이다. 한 번 물든 잘못된 생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때도, 사회에서 생활할 때도 잔재한다. 내 친구들은 이런 선동에 넘어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전에 민노당에서 청소년에게도 투표권을 줘야한다는 취지의 피켓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만 봤을 때는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해결방안으로 보이지만, 만약에 이런 종북세력의 흑색선전에 선동된 학생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면 과연 어느 후보를 뽑을까? 보나마나 그들이원하는 후보를 뽑을 것이다. 이렇게 종북주의자들은 순진한 청소년까지 동원하여 그들의 거룩한 혁명사업에 이용하려 하고있다(물론 내 말은 민노당 전체가 종북당이라는 것이 절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종북주의를 사상의 자유가 허락되는 선까지만 청산시켜야한다. 국가 전체를 보수로 단일화시키려는 파시즘적 사고가 아니냐고? 절대 아니다. 우선, 종북주의 자체가 결코 진보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고, 이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진보의 어두운 이면일 뿐이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김씨 부자(父子)가 지배하는 3대 독재 채제와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이 아사(餓死)하고 있는 상황, 수용자에게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의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고있는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고, 수십 명의 해군 용사들이 국토를 수호하다 안타깝게 산화된 천안함 사건엔 정부의 늦장대응이 문제를 야기했고, 또 민·관 공동조사 결과에도 많은 의혹이 있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그들에겐 결코 우리의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종북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듯이, 더 이상 제 2의 통합진보당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는 종북주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진보의 그늘이란 책은 우리에게 한 가지 단서를 던져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수사기관의 사건 발표와 언론의 단발성 보도를 제외하고는 각 사건의 흐름을 관통하는 연관성이나 역사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자료나 증거, 증언 또한 너무 부족하다. 현존 질서에 대항하는 반체제 운동은 합법성을 획득하기 어려워 비밀주의가 활동의 원칙으로 되었기 때문이다.”며 책에 많은 허점이 있다고 일러두었지만, 해방 이후부터의 소위 말하는 간첩 사건에 대해서 1990년대~2000년대의 지하당 운동과 1960년대~1970년대의 좌익 지하당 운동으로 나누어 각 사건별로 그 사건의 발생, 목적, 경과들을 도표와 함께 처음보는 독자들도 알기 쉽게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특히 북한의 지하당 조직론을 함께 실어 우리나라의 지하당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주로 간첩활동인 지하당 활동이다. 간첩, 꽤 오래전에 어수룩한 간첩이 나오는 영화 간첩 리철진이 개봉하면서 간첩은 우리에게 많이 친근한(더 나아가 동정적인) 존재가 되었는데, 사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선 항상 곳곳에 간첩이 존재했다. 유신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반공·반첩 구호가 머리에 생생할 것이다. 그 만큼 간첩은 생활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또 실제로 1.21사태부터 최근의 간첩 지하당 활동인 왕재산 사건까지 간첩의 침투는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특히 이들이 참여한 지하당 활동은 활발했고, 여기 국내 자생 NL계가 참여하면서 그 활동이 커지면서 우리나라는 수시로 정부를 전복하려는 위협속에 시달렸었다.


그런데 당시 국내 자생주사파들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군부 독재 시절 북한에 대한 정보는 엄격히 관리·통제 되었고, 따라서 일부 꼭 필요한 사회서적마저 소위 빨간책이라 불려 소지하기만 해도 대학 교문에서의 가방검사에서 걸리면 호되게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의 실상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우리나라 사회가 이 사회의 유일안 대안이자 종착점인 사회주의(그 중에서도 북한(주체사상))로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지하당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도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민주화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당시의 북한은 그들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부를 만큼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수백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랬다. 과거와 달리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너무나도 커져버렸고, 북한의 참혹한 실상은 더 이상 허울 좋은 주체사상 하나로 덮을 수 없게 되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봤을 때도 과연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 시킬 수 있을까의구심을 품을 정도로 북한은 쇠퇴하였다. 그러자 많은 NL파들은 그 실상을 보고 그들의 유일 사상에 등을 돌려버렸다. NL계의 대가이자 민혁당 사건을 주도 했던 김영환씨도 이 시기에 방북하여 북한의 실상을 보고 크게 실망하여 전향을 선택했다.


그런데 일부 NL파들은 많은 객관적 정보가 있었음에 불구하고 이런 정보들 마저 의심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열렬히 주체사상을 신봉했다. 그들은 왜 아직도 지나가버린 무지개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말로 주체사상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거라 생각하고 자기의 생을 조선 노동당에 바치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숨겨둔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NL계들은 아직도 이런 시대역행적 사고를 하며 우리나라에서 진보의 탈을 쓰고 활동하고있다. 그들이 진정한 진보인양. 이런 종북을 우리는 그냥 방치해야하는가?


며칠 전,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안타까운 희생자 한 명이 나왔다. 중앙위원회의 당 혁신안에 반대해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통합진보당 당원 박영재 씨가 622일 병원에서 결국 별세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사상에 동의하진 않지만, 죽음은 결코 우리가 바랐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흔히들 진보와 보수를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두 수레바퀴라고들 한다. 그렇다. 이 둘의 조화야 말로 수레가 가장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요건이다. 한 쪽 바퀴가 너무 크거나 작으면 그 수레는 엎어진다. 박영재씨는 그런 심하게 흔들리는 수레에서 타고 있다가 수레는 엎어졌고, 절명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가난한 덤프트럭 운전자는 영영 떠났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몸부림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행복. 우리는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따지고 보면 진보든 보수든 양 쪽 모두 사람이 잘 살고 행복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닌가. 이 행복은 결코 어느 거창한 이념이 만드는 것은 아니다.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닌, 그저 잠시 서로 양보하고 대화를 하면 서로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무시하는 종북주의는 과연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상으로 한 고등학생의 소론을 마친다. 더불어 삼가 고인 박영재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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