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대학부 최우수상] 종북, 낭만적 레토릭의 위험성

종북, 낭만적 레토릭의 위험성


– 한기홍, 『진보의 그늘』을 읽고 –


                                                                                                         유종엽


우연한 기회로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인 여명학교를 세운 조명숙 교감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조명숙 교감은 북한과 중국사이 국경에서 직접 북한아이들의 탈북을 돕고 돌본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며칠을 굶주린 듯 보이는 조그마한 남자아이에게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한참을 경계하며 말을 않더니 “닭알! 닭알 좀 주소!”하더란다. 아이를 데리고 음식점에 가 삶은 달걀 5개를 시켜 주고 조명숙씨는 잠시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급히 전화를 받은 그 1분도 안 되는 사이 달걀 5개가 껍데기를 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아이는 소매에 달걀 다섯 개를 다 숨겨두고 있었다. 그 어머니가 북한에서 산에 난 풀을 뜯어먹다 병에 걸려 죽어가면서 “내가 닭알 하나만 먹으면 살겠다”는 말을 했단다. 그 말이 가슴에 박힌 아이는 뭐 먹고 싶냐는 말에 닭알이라고 대답했지만 막상 앞에 두니 차마 먹지 못한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대체 우리와 한 땅에 살고 한 피를 나눈 이 아이들이 무슨 죄로 이렇게 눈물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 오늘날 내 또래의 젊은이에게 북한의 인권문제는 아프리카의 기아문제처럼 먼 얘기로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의 현실에 무감각하다는 것은 그들의 폭압적 정권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이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북한체제를 논할 것도 없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자. 북한사람들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종북을 논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20년 전에는 ‘종북’이라는 말이 퍽 낭만적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책에 실린 〈민혁당〉의 당헌을 보면 ‘무엇보다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긴다.’로 시작하고 있으며,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사람의 자주성을 높이고 창조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쓰고 있다. 당시 권위정부 하에서 이 얼마나 꿈같이 달콤한 이상이었겠는가. 정말이지 북한의 진실을 목도하기 전 김영환은 이 지하조직에 목숨을 바치고도 남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대중’, ‘평등’과 같은 단어들이 여전히 진보세력들 사이에서 ‘낭만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바로 진보의 그늘이다.


진보세력의 레토릭이 얼마나 진실성을 보이는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종북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납득이 어렵다. 북한은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평등이나 대중의 가치를 상징하기는커녕 지도부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고 대중들을 억압하는 폭압적 정권을 가진 불평등 사회이기 때문이다. The Polity IV Project의 지표에 의하면 북한의 민주주의-권위주의 지표는 40년이 넘게 –9로 세계 최하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흔히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국민들의 반미감정에 호소하는데 북한을 위험한 체제로 보는 것이 어찌 미국만의 논리이겠는가? 북한이 실질적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자 후원국이었던 중국조차도 김정일의 사망 직전 잦은 중국방문에도 북한에 대한 우호적 제스쳐나 보호발언을 꺼렸던 것은 이를 반증한다. 북한은 핵을 개발하고 이를 전략적 위협수단으로 이용하여 국제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이른바 ‘벼랑 끝 외교(brinkmanship)’를 자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안보상황 뿐만 아니라 세계안보환경까지도 위협하는 이런 북한의 행태를 ‘나름의 논리가 있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그것으로 반미(反美)를 달성했다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북한정권이 비정상적인 체제이며 평화를 위협하는 것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더욱 큰 문제가 존재한다. 북한과 북한에 대한 옹호사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지극히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행정안전부에서 실시했던 국민의 안보인식 조사에 따르면, 6 ․ 25전쟁의 발발연도를 직접 물어본 결과 36.9%가 모르고 있었으며 전쟁의 성격에 대한 질문에서는 66%만이 ‘북한의 남침’이라고 응답 했다. 특히, 20대 계층에서 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한 비율이 전체의 56.5%로 30대 28.6%, 40대 23%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중 ․ 고생 56.8%가 모른다고 대답한 것과 비슷한 결과로 10명 중 6명은 6 ․ 25전쟁을 잘못 알고 있는 셈이다. 사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입대하기 전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건들과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고, 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국가안보라는 것을 학생일 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실제 국가 안보의 중심에 있는 군인이 된 지금은 안보의 위협이 매우 심각한 상태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특히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 사건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시험 등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사건들을 통해 진보라는 이름의 종북 세력은 그들이 주장하는 ‘대중’과 ‘평등’ 이라는 이상과 낭만의 그늘에 숨어 활동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진보의 그늘』이 탁월한 점은 그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진보에 대한 주관적 평가를 본문에서는 지극히 절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 남한에 존재해 온 지하혁명조직의 활동과 조직편성, 조직구성과 해체에 관한 사실들을 가감 없이 구체적으로 서술함으로써 지금껏 간과되어 왔던 종북 세력의 실재(實在)를 실감하게 한다. 막연하게나마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북한세력의 면밀함과 그에 대한 추종세력이 존재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이게 바로 사실이고,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는 충격의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6․25전쟁은 3년 뒤인 1953년 7월 27일 휴정협정을 맺었는데 ‘휴정협정’이라는 말은 말 그대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실제로 휴정협정 이후 계속해서 대남 간첩작전 및 종북 세력을 통한 체제전복의 위협을 가하고 있다. 2006년 〈일심회〉 사건에 대해 읽으면서, 불과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고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는 세력이 지하조직도 아닌 민노당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또한 〈일심회〉사건이 북한 추종세력의 소행임이 분명함에도 당시 수사가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없이 종결되었다는 사실은 그들 세력이 이미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위험성에 대한 자각이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은 적을 알고 나를 알았을 때 백번 싸우더라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최근 종북 세력에 대한 문제가 많이 불거지고 있는 현실에서 사실 많은 국민이 심지어 종북 세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관심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의 국가 안보의식 고취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종북 세력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심회〉사건이 마치 잘 해결된 것처럼 TV나 신문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 세력이 약해졌다거나 와해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며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책에서 제시하고 있듯이 그들은 휴전이후 줄곧 남한에서 지하혁명조직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며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종북 세력은 우리들 사이에 실재(實在)하고 있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세력을 형성해 나가고 있다.



그 논리가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종북 세력이 여전히 그 세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고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앞에서도 암시했듯 나는 그것이 우리나라의 진보정치세력이 권력추구를 목적으로 ‘종북’을 일종의 강력한 레토릭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국제사회가 지적하고 있는 북한의 실체에 대해서는 쉽게 인지하고 비난에 동참하면서도 북한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종북 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대하다. 이유는 종북 세력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소위 보수에 대항하는 논리로서 북한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보수 세력의 정책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에게 ‘평등’, ‘대중’, ‘모두가 잘 사는 사회’라는 매혹되기 쉬운 이상적인 단어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옹호적이고 동정적인 입장들을 한 데 섞어 설득하려 하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는 종북 세력을 거치면서 오히려 그들의 입맛과 의도에 맞게 왜곡되고 포장된 셈이다. 북한정권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고 지지한다는 의미의 ‘종북(從北)’이 현재는 그들이 원하는 북한의 이미지를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력이 좇고 있는 북한은 그들이 과장하여 꾸며낸 허상이고 그래서 국제사회가 공공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실체로서의 북한 그 자체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더 위험하다. 북한은 우리의 ‘안보’만을 위협하지만 종북은 우리의 ‘안보의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에 대한 국민들의 안일한 태도는 종북 세력의 위험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왜냐하면 종북 세력이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원천이 국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국민들이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이 낮거나 종북 세력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다면 그들의 활동에 가장 큰 제약이 없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종북 세력의 확대를 막고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종북 세력의 실체와 우리 안보의 현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이 책 『진보의 그늘』은 역사의 과정에서 우리의 체제전복을 위해 시도했던 사건들과 사건의 주역들이 현재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기에 국민들의 안보의식 고취 혹은 종북 세력을 이해하는데 좋은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덮어 두기 급급했던, 하지만 대한민국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한 추적은 그들이 우리 가까운 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할 것이다. 진보라는 근거 없는 낭만의 그늘에 숨어있는 그들을 볕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높은 수준의 안보의식밖에 없다.


‘평등’과 ‘대중’이라는 진보가 줄곧 내세우는 가치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 분명히 이같은 가치들은 우리 모두가 마음을 합쳐 이루어야 할 대한민국의 목표이자 꿈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것들을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지를 알고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자들을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이름뿐인 가치들은 겉으로는 대단히 매혹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터무니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종북 세력의 단결력, 조직력과 그들이 주창하는 대중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이념과 사상은 그들 특유의 레토릭으로 현재 우리는 대단히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상황에 있다고 설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국민들의 안보의식 고취와 종북에 대한 냉철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종북 세력의 의도와 현황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혜안을 갖출 수 있으며 그들에게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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