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현지탐방] “좌-우 공감 北인권 과제 찾아야 한다”

▲ 2004년 ‘북한자유의 날’ ⓒ데일리NK

데일리NK는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2일까지 영국을 방문, 정부 관리 및 인권단체 관계자들과 북한인권에 관해 토론하고 돌아온 <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사무총장의 영국방문기를 소개했었다.

하 사무총장의 두 번째 영국방문기를 싣는다. 그는 한국이 경제력과 민주화 수준에 비해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적다고 지적하며 한국정부가 적어도 아시아 지역, 가장 중요하게는 북한 지역의 인권 개선과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북한인권운동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좌, 우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문제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된다고 제안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 문제라고 하면 핵 문제가 가장 우선이었고 인권과 민주주의는 핵심적인 논의대상이 못됐지만,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지역에서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앞으로 북한인권문제가 국제사회 큰 이슈로 자리매김 하길 바란다는 희망으로 방문기를 마쳤다.

◈ 3월 1일- NGO 방문

오늘은 먼저 “Article 19”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단체를 방문했다. 이 단체의 이름은 세계인권선언 19조(Article 19)에서 빌려온 것이다. 19조는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free flow of information)을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단체의 주 활동도 표현의 자유, 정보의 자유 증진에 맞추어져 있다.

이 단체의 활동 영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라틴 아메리카, 중동 등 5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아시아 담당인데 이름은 ‘디니’, 인도네시아 출신이었다. 디니는 우리의 방문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자기는 아시아 담당이기는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 ‘Article 19’의 웹사이트

사실 별로 듣기 반가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제 무대에서 이는 엄연한 현실이다. 아시아라는 지역은 지역적으로는 하나의 단위로 불리지만 공통적 정체성이 거의 없다. 한국 입장에서 동남아 지역만 해도 지리적으로는 유럽, 미국에 비해 상당히 가깝지만 사회, 문화적 거리감은 유럽, 미국에 비해서 더 멀게 느껴진다.

국제 시민사회 영역에서 이와 같은 사회, 문화적 거리감은 우리에게 불이익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많은 동남아, 남아시아 국가 사람들이 국제 NGO에서 활동하고 있다. 큰 NGO에는 예외없이 이들 국가 출신들이 일하고 있다. 그에 반해 한국인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드물 정도다. 동남아, 남아시아 출신 활동가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끼는 것만큼 우리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그들이 생각하는 아시아의 범주에서 많은 경우 한반도는 제외되어 있고 따라서 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제 인권 NGO, 北 실상 알게되면 누구나 관심 가져

이런 현실을 그냥 방치만 할 것인가? 사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경제적으로는 일본 다음이다. 그리고 시민 사회 역량으로 보면 아시아 최고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부나 시민 사회가 아시아를 포함해서 국제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상대적으로 작다. 특히 한국의 시민 사회는 주로 국내 문제에만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 붇고 있고 국제 무대로 가면 한국의 역할은 미미하다.

이는 한국의 시민 사회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국내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국제 무대에서는 거의 역할을 못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경제 지원 측면에서 세계 최고의 제 3세계 지원 국가이다. 공식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id, ODA)에서 세계 최고 국가가 바로 일본인 것이다. 이처럼 많은 돈을 아시아에 퍼부으면서도 아시아 국가 시민들에게 전혀 그 리더쉽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일본의 시민 사회가 아시아 전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히고 아시아인들과 인간적으로 함께 일하면서 대민 접촉도를 넓혀 왔다면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국제 NGO 회의를 가보면 일본은 거의 출석률이 꼴찌이다.

한국이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변해야 한다. 특히 386세대가 아직 젋고 활동력이 왕성할 때 변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전 세계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민주화 세력도 이제는 세계로 뻗어져 나가야 한다.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한국의 386세대가 국제 무대 활동에서 취약한 점은 아무래도 외국어와 국제 표준 가치에 대한 문제이다. 정부는 NGO 출신들에 대한 국비 장학생 제도를 확충하여 이들이 늦게나마 외국어를 배우고 국제 standard를 배우고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후원해야 한다.

국제 무대에는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다. 현재 국제 NGO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는 한국 국내 인권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이다.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다. 유엔 인권위에 가보면 그 사실을 바로 직감할 수 있다. 유엔 인권위에는 전 세계인들이 자국의 인권 현실을 토로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 집결한다. 거기 앉아서 한번 각국의 인권 현실을 들어보라. 한국의 인권 상황에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그 자리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런 나라들에 비해서 너무나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감히 인권이 침해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민망할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북한의 인권 침해 정도는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때문에 당연히 세계 인권 활동가들이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실상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 실상을 전해 주면 관심을 표명한다. 내가 만난 “Article 19″의 아시아 담당도 그랬다. 국제 NGO 들은 관심을 가져야 할 나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름의 우선 순위를 정한다. 이 우선 순위는 대개가 각 지역의 NGO들이 얼마나 열심히 홍보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국제 사회에도 적극적인 로비가 필요한 것이다.

“Article 19″을 만나고 나서 엠니스티 인터내셔널 동아시아 담당자 라지브 나라얀을 만났다. 라지브는 인도 출신이다. 엠니스티는 아주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북한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단체이다. 따라서 라지브는 북한 문제에 대한 배경 지식도 꽤 많았다.

北인권 활동 단체, 몇년 후 많은 수 늘어날 것

라지브와의 대화는 주로 북한의 인권 문제 중 어떤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좋겠는가였다. 우리는 한국의 좌파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가 좋지 않겠느냐로 의견이 모아졌다. 여태까지 한국의 좌파 인권 단체들은 북한 문제에 침묵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인권 문제 중 북한의 “시민, 정치적 권리”보다는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며 어쨌거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발언들을 하기 시작했다.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좌, 우파가 함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조사, 연구한다면 북한 인권 운동의 한 단계 높은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대략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고용의 자유” “법치주의” 등의 주제에 대해 논의가 오고 갔다. 라지브는 올 6월이 되면 아마 북한 조사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엠니스티가 어떤 주제를 확정할지는 몰라도 한국의 좌, 우파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해본다.

저녁 시간에 ‘반노예연대’의 노르마(Norma Kang Muico)를 만났다. 노르마는 한국인 어머니와 필리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여성이다. 노르마는 한국말도 꽤 잘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주최한 북한 인권, 아시아 인권 회의에 참가한 적도 있다.

▲ 국제 반노예연대의 노르마 강 뮈코

노르마는 최근에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조만간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 전도사가 될 정도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열정적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탈북자 인신 매매 관련 리포트를 끝냈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주제로 “북한의 강제 노동”을 생각하고 있으며 조사 펀드도 확보했다고 했다.

영국 NGO 중에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던 단체는 세계기독연대, 엠니스티 인터내셔널, 휴먼 라이츠 와치, 반노예 연대 등 크게 네 곳이다. 이번 방문에서 이 네 곳 중 휴먼 라이츠 와치(Human Rights Watch)를 빼고는 모두 만나본 셈이다. 이 단체들의 현재 북한에 대한 관심과 활동은 몇 년전에 비해 훨씬 강해졌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지금보다더 훨씬 많은 관심과 많은 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 채덤하우스 발표

이번 영국 방문의 하이라이트는 영국 채덤 하우스(Chatham House)에서의 발표였다. Chatham House는 영국의 국제 문제 관련 연구소이다.

필자는 외국에서 여러 번 발표해본 경험이 있었다. 때문에 큰 부담없이 발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 하루 전날 반노예연대(Anti Slavery International)에서 일하는 노르마(Norma Kang Muico)가 채덤 하우스는 영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국제 문제 연구소라며 거기서 발표하는 것은 아주 큰 영광이라고 전해주었다.

그 말 덕분에 전날 새벽 두시 반까지 다시 발표 자료를 손봐야 했다. 발표 주제는 ‘북한 민주화 전략”으로 잡았다. 발표를 준비할 때 채덤 하우스보다 더 신경쓰였던 것은 혹시 북한 대사관에서 오지 않을까였다.

영국 외교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채덤 하우스 발표 안내문은 무작위로 뿌려지기 때문에 북한 대사관에서도 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의 행태를 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자못 긴장했다.

1999년 제네바에서 아시아 인권 관련 세미나가 있었다. 거기서 북한, 베트남, 중국 3개국에 대해 각각 발표가 있었다. 필자는 그 날 청중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제네바 북한 대표부 관계자들도 참석하고 있었다. 그날 북한 주제 발표자는 북한의 주요 인권 실상에 대한 설명했다.

“제발 ‘김정일’ 이름 석 자만 빼달라”

북한의 기아, 공개 처형, 정치범 수용소 등 정말 형언하기 힘든 북한 내의 실상들이 발표되었다. 필자는 북한 관계자들이 혹시나 돌발 반응을 보이지나 않을까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때까지 북한 관계자들은 별 반응 없이 잘 듣고 있었다.

그런데 발표자의 입에서 “이 모든 것의 책임은 김정일에 있다”고 김정일이라는 이름 석자가 튀어 나오는 순간 회의장이 뒤집어졌다. 두 명의 북한 관계자들이 모두 일어나 발표자에게 “왜 위대하신 김정일 수령”이름을 함부로 부르냐”며 항의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 때 북한 정부 관리들의 속성을 바로 간파했다. 북한 현실의 어떤 부정적인 측면들을 말해도 모두 용인할 수 있으나 “김정일” 이름을 거론하며 부정적인 이야기를 말할 때는 “가만 있지 말라”는 북한 외교부의 무슨 규정 같은 것이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 회의가 끝난 다음 그 북한 관계자들은 발표자에게 찾아왔다. 관심이 있던 필자도 그 자리에 가서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었다.

“남조선에서 온 선생, 다 좋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다 괜찮습니다. 다만 수령님 이야기만 빼주십시오. 저희들도 좀 삽시다. 좀 봐주십시오”하며 통사정하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내 추측이 맞았던 것이다. 북한의 인권 실태는 마음껏 폭로해도 괜찮다. 다만 수령님 이름만 빼면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혹시 모를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필자는 발표문에서 김정일 이름 석자는 모두 뺐다.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이 와서 세미나장이 난장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영국의 채덤 하우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발표장에는 대사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주최측에 과거 한반도 관련 세미나에 북한 대사관에서 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한번도 온 적은 없다고 했다.

회의장엔 20~30여 명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주최측에서 나와 같은 발표 시간에 토니 블레어 부인이 아동 인권 문제로 발표가 있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었는데 못온 것 같다고 귀뜸해줬다(토니 블레어 부인은 아동 인권 전문 변호사라고 한다).

영국 내 北인권 관심 높아진 것 느끼게 돼

회의장에 참석한 사람은 주로 영국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 북한에 오랜 기간 체류한 사람, 그리고 앞으로 체류할 사람들도 있었다. 30분 발표한 뒤 1시간 가량의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꽤 예리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발표가 끝난 뒤 아주 많은 격려가 있었다. 영국에서 북한의 민주주의를 주제로 토론해 본 것은 처음이라며 아주 의미있는 토론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중에 이메일을 보내 격려해 준 사람들도 두어명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북한 문제 관련해서는 핵 문제가 가장 우선 순위였고 식량 등 인도적 지원 문제가 그 다음 순위로 인권, 민주화 문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우선 순위가 좀 바뀌고 있다. 북한 인권, 민주화 문제도 핵, 인도적 지원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그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영국 정부 관계자와의 만남에서나 NGO들과의 만남에서나 그리고 마지막 날 채덤 하우스와 같이 권위 있는 기관에서 나를 초대해서 공식 발표하게끔 배려해준 사실은 북한 인권, 민주주의 문제가 영국에서도 그 중요성이 점점 더해지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3일 동안 아주 빡빡하게 짜여진 영국 방문 일정이 끝났다. 시내 관광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인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 시간이 유일한 여유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 저녁에 와인, 칵테일, 맥주 등 종류를 바꾸어가며 몇몇 아는 벗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런던에서 만났던 북한 인민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나중에 평양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희망해 본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 (nkradio@nkra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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