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7.1조치 6년] ‘시장의존’ 심화

‘북한 주민의 삶은 배급소를 떠나 장마당으로’

북한이 2002년 7월1일 임금과 가격을 현실화하고 생산 현장에서 성과보수와 독립채산제를 확대한 7.1경제관리개선조치(이하 7.1조치) 후 주민 생활의 ‘시장화’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극심한 경제난과 대량 아사를 겪으면서 현실적으로 생계를 정권에 기대할 수 없고 스스로 꾸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데 이어 7.1조치로 음성적인 시장 기능이 일부 양성화된 이래 북한 경제의 시장의존 심화는 되돌리기 힘든 대세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지난 6년간 북한 사회에서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의 의식이 시장 친화적으로 바뀐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30일 “북한 주민들이 과거 평균주의적 사고, 국가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로 경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며 “이제는 북한에서 시장과 계획이 공존하는 경제시스템이 정착됐다”고 말했다.

홍 연구원은 식량난을 겪는 북한에서 쌀값이 4천500원(북한돈)까지 치솟다가 최근 중국으로부터 곡물 수출허가와 미국의 식량지원이 발표되자 2천원대로 떨어진 점을 국가 공급과 시장가격이 연결된 ‘공존’의 사례로 꼽았다.

북한 주민들이 국가에서 지정한 명목상 일자리에서 이탈해 장사에 뛰어드는 사례가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은 물론 무역업을 중심으로 한 ‘권력형 자본가’가 출현하고 대남 공작기구나 군부까지 외화벌이에 뛰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이미 구문이다.

북한 소식지 ‘림진강’ 최근호(3월호)에 따르면 북한의 한 경제간부라는 사람은 7.1조치로 장마당이 급속히 늘어난 데 대해 “선군정부는 장마당 지각생들인 중하층 간부들과 핵심계급 진지를 버리고 장마당 최우등생들을 선택했다”며 “이로 인해 ‘계급 성분주의’로부터 ‘황금 만능주의’로 가치관이 확고히 변한 이 사회에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싹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의 이승용 사무국장은 “2002년 이후 돈과 정보가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북한 사회 전반에 정착되고 있다”며 “주민들은 물가 동향을 비롯한 생활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를 생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 뿐 아니라 생산현장에서도 당이나 정부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한편 전문기술자나 경영인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공장장이 실무능력을 인정받은 40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등의 변화가 일고 있다.

북한 당국 역시 이전의 고립적인 ‘자립적 민족경제’에서 탈피해 현대 과학기술과 국제협력을 강조하고 신진 기술관료를 대거 기용하는 등 ‘신(新) 자력갱생론’을 펴고 있다.

7.1조치가 발표된 이후 신의주특구, 금강산관광특구, 개성공단 지정과 외국인투자은행법 제정(2002), 농민시장을 종합시장으로 확대(2003), 공장.기업소 지배인의 권한 강화(2004), 수입물자 교류 시장 운영(2005), 상업은행법 제정(2006) 등 후속조치들도 나왔다.

북한은 그러나 이러한 ‘아래’와 ‘위’로부터 변화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심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지속과 잇단 자연재해 등으로 만성적인 경제난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07년 북한 경제성장률 추정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2.3% 줄어 2006년(-1.1%)에 이어 2년 연속 하강곡선을 그렸다.

여기에 사회 양극화의 확산과 부패 만연, 인플레 심화, 무역적자 확대 등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제.사회적 부작용은 커지고 있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 북한의 경제시스템은 외부로부터 투자나 물자 지원이 없으면 작동하기 어렵다”면서 “7.1조치에도 불구하고 그후 교통, 통신, 에너지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또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7.1조치는 대외관계 개선을 전제로 한 경제개혁 안인데 외부로부터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 활성화에 따른 유동성 증가로 겨우 버티는 중”이라며 “향후 북미관계가 풀리면 외부 자원을 끌어들여 내부 동력을 찾는 것이 숙제”라고 지적했다.

북한 당국이 경제개혁 조치를 내놓다가도 시장이 너무 크게 확장될 경우 사회주의 체제가 이완될 것을 우려, 주기적으로 시장에 대한 통제에 나서는 것도 북한의 경제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홍익표 전문연구원은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는 한 이같은 긴장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북한 당국은 기본적으로 계획 부문을 확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문을 시장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장과 공존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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