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창군기념일]북주민들, “인민군이 정말 밉다”

▲ 조선인민군의 열병식 모습<사진:연합>

4월 25일은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원래 북한은 조선인민군을 창설한 2월 8일을 ‘조선인민군절’로 기념해왔다. 그 후 1978년 김정일의 지시로 김일성이 중국 지린(吉林)성 만주 안투(安圖)에서 ‘항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를 창설했다는 1932년 4월 25일을 조선인민군절로 기념해오고 있다.

이 날 평양을 비롯한 군부대는 축제분위기에 들뜨게 된다. 현재 북한은 ‘선군정치’를 외치는 판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을 맞으며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은 군대에 대한 증오심만 더해 간다. 이유가 있다.

지휘관이 민간식량 약탈 지시

4월 25일이 다가오면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은 바짝 긴장한다. 사회 기관, 기업소들에 대한 군인들의 약탈과 절도행위 어느 때보다 많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하는 것이 협동농장들이다. ‘선군정치’를 하고 있으니 군이 제일이고, ‘김정일 군대’는 못할 게 없다는 심보가 발동한다.

북한의 협동농장들은 4월이면 파종하기 위해 벼, 콩 등 겨울 내내 보관해둔 알곡 종자들을 밖에 내놓는다. 밭에는 파, 배추 등 야채들이 푸르싱싱하게 자란다. 군인들은 이들을 마음대로 가져간다. 주민들은 이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다. 돼지, 염소를 비롯한 가축을 사육하는 주민들도 긴장한다. 언제 군인들이 잡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념일이 가까워 올수록 더 심해진다. 그것도 군인 몇명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상관)에 의하여 명령식으로 부대에 하달된다. 어느 분대 모 병사는 어느 농장 탈곡장에 가서 콩을 도둑질 해오고, 어느 병사는 어느 농장 파밭에 가서 종자 파를 도둑질 해오라는 식이다. 그 목적은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인 4월 25일을 잘 먹고, 뜻 깊게(?) 기념하기 위해서란다.

알고보면 지휘관도 불쌍해

지휘관들은 군인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면서도 조건을 부친다. 도둑질을 하되 잡히거나, 부대의 주소가 탄로 나지 않게 감쪽같이 행동하라는 것이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군민관계’를 훼손시킨 사건으로 상부로부터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마당에서 술판을 벌리고 있는 인민군 장교들을 쳐다보고 있는 꽃제비 모습(사진:RENK)

하기야 지휘관 입장에서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1년에 한번밖에 없는 창건기념일만이라도 부하들이 굶주림 속에 보내도록 하기는 싫을 것이다. 그러나 군대에 지급되는 보급품은 턱없이 부족하다.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단순한 도둑이 아닌 강도로 바뀐다. 몽둥이를 들고 협동농장 경비원에게 여러 명이 달려들어 때려눕히고 농작물을 강탈해간다.

군인들의 약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 됐다. 필자가 1986년 4월 목격한 일이다. 4월 25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황해남도 봉천군 룡천리 협동농장 기술지도원의 집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기술지도원의 집 앞의 파밭을 보며 파농사가 잘되었다고 칭찬했다. 그런데 기술지도원은 “잘 되면 뭐 합니까? 군대가 다 도둑질해 갈 텐데…” 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12시경, 마을의 개들이 왕왕 짖어 대는 소리에 마당으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가까운 파밭 한가운데서 “오기만 해봐라! 모두 죽여버릴테다”고 겁을 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밭 한가운데에 열댓 명의 군인들이 파를 뭉텅뭉텅 뽑아 자루에 넣는 모습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다.

우리는 군인들이 도둑질하면 되는가 하고 소리를 쳐 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도원과 농장 경비원들은 부들부들 떨며 군인들이 도둑질해가는 모습만 지켜 볼뿐이다. 군인들의 도둑질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곪을대로 곪은 조선인민군

이런 현상이 이미 20년이 지났다. 이러니 90년대 중반 대아사 기간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김정일이 군부대를 시찰하면 해당 부대 지휘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식량을 규정대로 채워놓는다. 김정일이 시찰하는 날만 어떻게든 ‘깨지지 않고’ 때우는 것이다. 이러니 김정일이 인민군 하급부대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 리 없다. 하급부대는 이미 곪을대로 곪은 것이다.

오늘도 평양에서는 ‘자랑스런 선군정치’니, ‘군민관계의 미풍’이니 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군인들의 약탈과 도둑, 강도행위로 증오심만 더해 갈 것이다. 조선인민군은 이미 주민들의 마음에서 떠난 것이다. 김정일은 이같은 사실을 알고나 있을까.

이주일 논설위원(평남출신, 2000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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