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정권 60년] 주민의식, 이념에서 돈으로

“지금 식량문제로 인민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건전한 생활기풍과 질서가 문란해지고, 전에 없던 비사회주의 요소가 자라나 우리 제도의 영상(이미지)을 흐리게 하는 가슴아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배고픈 북한 주민들이 외부인들에게 몰래 털어놓는 불만의 소리일 법 하지만 북한이 2003년 우수 작품으로 평가한 장편소설 ‘열매는 봄날에’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수백만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가운데 ‘신세대’를 비롯한 북한 전 계층 주민들에게 일어난 의식 변화를 잘 보여준다.

임순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 소설에 대한 분석에서 “식량난으로 인한 사회질서의 혼란과 주민들의 사상적 해이, 늘어나는 비사회주의적 행위 등을 지적한 대목”이라며 “새 세대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은 식량이나 생활비 조달을 위해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많은 사람과 접촉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인식하면서 의식 내지 가치관의 변화를 겪게 됐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북한 지역에서 소련 군정의 후원아래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 일제 잔재의 청산, 6.25전쟁, 사회주의 건설 등을 거치며 북한 주민들은 개인보다 체제와 이념을 먼저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미국 중심의 서방 자본주의와 소련을 축으로 한 사회주의간 치열한 대립 속에서 북한은 사회주의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배격했다.

1950년대 말 대중운동인 ‘천리마운동’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를 등장시켜 북한 주민들에게 개인의 삶보다 체제와 집단에 대한 헌신을 우선시하는 의식을 주입했다.

이어 1960년대 소련과 중국간 대립 속에서 북한 당국이 내세운 자주와 주체사상은 이후 20여년간 김일성.김정일 통치체제를 고수하는 충실한 이념으로 자리매김했고 주민들의 이념적 삶을 지배했다.

이 시기에 체계적인 식량배급과 생필품 공급, 의무교육제와 무상치료제를 바탕으로 계층간 큰 격차없이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 주민들의 이러한 사회주의적 가치관 형성에 일조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상이나 서방의 문화가 스며들 틈이 없는 것 같았던 `철옹성’ 북한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서서히 가중된 경제난의 타개책으로 북한 당국이 조총련 등 해외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외화상점과 외화벌이를 추진하면서 조금씩 외국문물과 외제상품에 대한 환상이 생겨나던 중에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촉매제가 됐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채 사회주의 문화.도덕대로만 살던 새 세대 사이에서는 외국패션 모방 붐이 일어 미국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청바지, 일본의 부패문화라던 치마바지가 등장했으며, 심지어 90년대 중반에는 미니스커트와 몸에 착 달라붙는 쫄바지까지 유행했다.

북한 당국이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체제개방 의지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킨다는 취지로 기획했던 축전은 `찰나적인’ 문호 개방이었음에도 외부 자극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새 세대들의 눈을 뜨게 했다.

서방 문물의 급속한 유입에 화들짝 놀란 북한 당국은 이른바 ‘모기장 전략’을 세운 뒤 언론매체와 내부교양을 통해 “반동적인 사상문화”와 “퇴폐적인 생활양식”, “자유화 바람”과 “날라리풍”을 질타하며 사상무장을 강조했지만 이미 무너진 방죽이었다.

게다가 밖에서 벌어지고 있던 동구 사회주의국가의 붕괴 도미노는 북한 주민들을 지배해왔던 확고한 사회주의 신념에도 균열을 만들었다.

특히 90년대 중후반 수백만의 아사자를 창출한 ‘고난의 행군’은 북한 주민들의 이념과 생활신조를 밑뿌리째 뒤흔들고 삶의 가치관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당시 국가의 식량.생필품 배급이 끊겼으나 노동당에 충실했던 하급 관리와 교사, 당원이나 성분좋은 하층 주민들은 국가만 바라보면서 스스로 살길 찾기에 않아, 아사자가 이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가에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불.탈법을 막론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시절에도 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기득권 세력과 함께 살아남았다.

이를 체험한 북한 주민들은 체제와 이념, 집단보다는 개인의 삶과 돈을 중시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됐다.

여기에다, 국제사회의 지원 덕분에 고난의 행군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북한이 경제난 타개책으로 2002년 부분적인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7.1경제관리개선 조치’를 취한 게 돈이 최고라는 배금주의와 개인주의 확산의 촉매제가 됐다.

“일한 만큼 분배”한다는 7.1조치와 자본주의 사적 경제활동의 증가는 ‘부익부 빈익빈’을 낳아, 적게는 수십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 달러를 갖고 있는, 자본주의 기업가 못지 않은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는 신흥 부유층도 생겨나고 있다.

북한 여성들은 가족 부양을 위해 장사를 하고 식량을 얻으러 북중 국경을 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은 꽃이라네’라는 북한 노래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문화에 갇혀있던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으면서 심지어 가족의 중심에서 점차 남자를 밀어내고 있다.

임순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은 경제난을 거치면서 자기의 생계는 자기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개인지향적 가치관으로 자연스럽게 무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7.1조치로 기관.개인의 무역이 확대되고 식량.생필품 구입을 위해 중국 국경을 넘나드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북한 사회에 들이닥친 또 하나의 변화는 한류 열풍.

해외에서 남한의 TV방송과 가요, 드라마, 영화를 CD 등을 통해 접한 주민들은 선진화된 남한의 실상에 눈뜨게 됐고, 이를 북한에 퍼뜨린 것이다.

북한에 확산되는 컴퓨터 붐에 힘입어 ‘겨울연가’, ‘올인’ 등 남한의 인기드라마가 방영된 지 6개월이면 암암리에 퍼지고 등장인물들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심지어 머리염색까지 패션과 말투를 모방하는 풍조가 빠르게 유행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입소문으로만 돌던 남한의 발전상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교류의 확산으로 ‘확인’되면서 남한 상품에 대한 선호도는 더욱 높아져 시장에서 흥정도 없이 고가에 거래되는 실정이다.

“남한 상품은 단속 대상이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팔기 힘들어 상표를 떼어낸 뒤 아랫동네, 아랫마을이라는 은어로 팔린다”거나 “남한 상표 부착 여부에 따라 옷 가격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상표를 붙인 채 비싼 값에 팔렸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은 상표 부착 여부를 놓고는 엇갈리지만 남한 상품의 유통 확산과 인기를 말해준다는 데선 일치한다.

남한 가수들의 평양공연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중 조용필의 공연 때는 고가의 암표가 나돌았으며, 관람권을 얻기 위한 ‘난투’가 벌어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한류 열풍의 중심에는 일제 식민통치와 6.25전쟁, 전후 사회주의 건설을 체험하지 못한 새 세대가 서있다.

북한의 신세대는 공산주의 시절의 동구권과 개방 이전의 중국만을 접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시장경제체제의 중국, 러시아와 서방만을 접한 데다 어릴 때부터 굶주렸던 탓으로 개혁.개방 의지와 자본주의적 마인드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북한체제를 이끌어갈 새 세대의 이러한 가치관은 현 북한 지도부의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은 우리의 386세대라고 할 수 있는 3, 4세대가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대표되는 1, 2세대의 ‘혁명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며 사상교육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외부세계의 문화를 접하며 충격을 받은 주민들이 체제변화를 이끌 수 있는 다수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현재 새 세대의 가치관 변화가 ‘사회변동’으로 직결되기는 어렵겠지만, 이들의 의식 변화는 ‘변혁의 조건이 축적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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