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식량난 진실④]對北식량지원, ‘원칙과 융통성’ 섞어라

최근 북한의 식량위기 상황과 한국정부의 식량지원 방안을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세계식량계획(WFP)은 공식적으로 한국정부의 대북식량지원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식량지원 결정에 앞서 북한에 옥수수 5만t 지원을 위한 접촉을 제안했으나 북측은 거부했다.

최근 북한의 식량상황과 관련, WFP는 “북한의 식량 부족량이 167만t에 이른다”며 “아사 위험성이 높은 취약계층이 65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좋은벗들은 “5~6월 사이 2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반면 미국의 시사주간 뉴스위크(Newsweek)는 지난달 18일 “WFP는 북한의 식량부족분이 167만t 으로 ‘열악한 기근’ 상황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뉴스위크의) 자체 분석으로는 약 10만t 정도가 부족한 상황으로 위기가 ‘시작’되는 국면”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뉴스위크는 또 “유엔 기구들이 북한의 식량 수급에 큰 위기가 있다고 반복적으로 과장,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3일 국회보고를 통해 “북한이 90년대 중반과 같이 20만 명 이상 대규모 아사자 발생이 우려되는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현재 북한의 사정이 ‘긴급지원’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정부의 판단에 변함이 없다”며 북한의 상황을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평가하는 견해를 경계했다.

이와 관련, 북한의 기아문제를 연구해온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정광민 선임연구위원은 ‘대중(對中) 수입 곡물가 변동과 북한의 시장가격 동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5월 들어 북한의 식량가격이 오히려 큰 폭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며 “북한의 식량 시장가격 상승이 반드시 식량의 절대적 부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현상은) 20~30만 명의 아사설 등 북한의 식량사정이 매우 긴박한 것으로 보도되어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가격 변화”라며, ‘대량 아사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최근 북·중 국경지역에서 만난 탈북자들과 ‘데일리엔케이’의 내부 소식통들은 “전체적으로 식량사정이 매우 긴장하고(어렵고), 일부 지역에서 소수 아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시에 몇 천명, 몇 만 명씩 죽어 나가는 대량아사 사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식량지원, 조급함 버리고 원칙 지켜야

북한의 식량위기에 대한 진단이 상이한 것처럼 식량지원을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다.

좋은벗들은 “북한의 요청이 없이는 식량도 지원하지 않겠다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인도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더 큰 인명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신속히 인도적 지원을 단행해 대량아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의 이영훈 박사는 “긴급상황에 대한 평가는 정보의 차이에 따라, 심지어 정보가 동일하더라도 평가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전제한 뒤 “북한의 곡물 가격이 요즘처럼 오른 예가 없으며 아무리 소수라도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긴급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와 민간단체의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다.

또 한편 과거 10년과 같이 서두르지 말고 원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조급성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정부의 옥수수 5만t 지원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먼저 제의했기 때문에 북측으로서는 충분히 ‘남한 길들이기’를 한 후에 받아들일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남북대화 단절에 초조감을 느껴 조급함을 보이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우리 정부의 지원이) 북측에게 ‘압력을 가하니까 순응한다는 자세를 보인다’는 잘못된 메시지로 전달되면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이라며 “과거 정권과 같은 방식으로는 지난 10년과 같은 남북관계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지원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북식량지원이 주민들의 생활개선에 기여하기 보다 결과적으로 김정일 체제 유지를 돕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는 “북한의 식량난은 10년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반복되는 일로, 북한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대표는 “최근 일부 대북지원단체들이 무조건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고 김정일 체제 유지를 돕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북한이 ‘남측에서 식량을 준다면 안 받을 이유야 없지만, 절대 먼저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고자세를 유지하는 한, ‘先요청 後지원’ 원칙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원칙을 지키고, 투명한 모니터링과 북한주민 접근을 약속받은 후 북한의 요청 하에 지원을 재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기구 통한 지원에 융통성 가져야

이와 같은 상황에서 북한에 필요한 인도적 지원은 WFP를 비롯한 국제기구들과의 공조를 통한 지원에 나서는 것이 가장 합리적 방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 통일부는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대북 지원은 검토되거나 추진되고 있지 않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6월 중 WFP 등 국제기구의 북한 식량 실사보고 후 식량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 판단해보고, 거기에 따라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라며 다소 융통성 있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김윤태 사무총장은 “대북지원을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려는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며 “하지만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식량지원에 좀더 융통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국제기구와 연대하면 모니터링에 더 힘을 받는 장점이 있다”며 “한국정부는 지금과 같은 원칙을 지키며 북의 요청을 받은 후 직접지원에 나서고, 단기적으로 긴급한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면 WFP와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 방식을 택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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