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사진작가北방문기①] 중국사람 ‘北 어떻게 보나’ 관심집중할때

▲ 中 인터넷 사이트 싱다오 환구망(www.singtaonet.com)에 실린 관련기사

중국 관광객들이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일이 최근 부쩍 늘었다.

핵과 미사일, 탈북자 문제 등으로 중국인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사태 후 북한에 대한 중국 네티즌들의 비판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사이트에 북한방문기와 사진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전통적인 북중관계에 대한 인식이 중국 대도시 거주자들을 중심으로 많이 바뀌었다. 이들은 북한의 굶주림과 김정일 정권의 폭압정치에 매우 비판적이다. 개혁개방으로 나오면 인민들이 살 수 있는데, ‘수령'(김정일)이 자기 배만 채우려 개혁개방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물론 현재의 중국은 한국, 미국, 유럽 등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여론 정치’를 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올라 있지 않다. 그러나 중국사람들이 북한인민과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향후 북중관계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또 이에 따라 북한정권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또 한반도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중국인민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데일리NK는 그동안 중국 네티즌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보도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보도할 계획이다. 중국인들의 관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방문기와 사진설명, 네티즌의 댓글 등을 되도록 의역(意譯)하지 않고 직역한다.

아래의 북한사진과 방문기는 카메라 동호인회 사이트인 ‘가우재선'(佳友在线)과 북한전문 사이트인 ‘금일 북조선'(今日北朝鲜)에 실린 것으로, 최근 중국의 대형 포탈사이트 ‘망역'(網易)과 중국관영TV (CCTV.com) 인터넷판에도 올라 있다.

이 사진은 아이디 ‘쇼쇼'(晓晓: 새벽)인 가우재선 회원이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해 촬영한 것이다. 이 사진들은 또 중국의 인터넷 랭킹 5위권에 들어있는 싱타오 환구망(www.singtaonet.com)을 비롯해 대만의 인터넷 매체 수백 개에 게재돼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네티즌들의 댓글이다.

한 네티즌은 “북한의 현실은 중국의 20년 전과 같다. 인민이 너무 고생한다”(朝鲜现在是中国二十年前, 人民很苦)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백성이 고생한다. 북한은 응당 개혁개방해야 한다. 중국과 한국에게 좀 배워라”(苦了老百姓 朝鲜应该实行改革开放,向中国和韩国学习)고 촉구했다.

김정일에 대한 비난도 높았다. “김뚱보 독재통치를 뿌리뽑고 민주조선을 실현하자, 그래야 인민에게 출로가 있다”(铲除金胖子独裁统治,实现民主朝鲜,人民才有出路) 등의 댓글 수백 개가 잇따랐다.

가우재선 ‘쇼쇼'(晓晓)의 방문기와 사진 설명을 소개한다.

데일리NK 기획실

“비밀스런 국가의 문을 열다”

북한은 가깝고도 잘 알 수 없는 국가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북한에 관한 정보는 점점 적어졌다. 북한은 내부의 비밀스런 면모를 일체 숨기고 있다.

▲ 평양 개선문 옆에 세워진 김일성 조국개선연설 유화판

금년(2005년) 국경절에 북한의 초청을 받아 조선노동당 건당 60주년과 조국해방전쟁(6.25전쟁) 60주년을 기념한 ‘아리랑’공연을 보기 위해 방북했다. 이전에는 북한영화를 보고, 한국전쟁 참전 지원군 출신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북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이 나라를 찾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다. 아래의 사진들과 글은 3박 4일간 보고 들은 것이다.

9월 30일 오전 11시 30분. 우리가 탑승한 고려항공기는 1시간 30분을 날아 평양 비행장에 도착했다. 평양 비행장은 크지 않고 아주 조용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대합실에 있는 김일성의 초상화였다.

▲ 공항버스의 운전자.

비행기에 탄 승객 대부분은 중국 여행객들이다. 손님들은 비행장 구내버스에 올라 대합실에서 세관통과 준비를 했다. 이 사람은 비행장 구내 버스 운전기사다.

▲ 공항 보안요원.

이 여성은 비행장의 공안원이다. 차안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흘겨보았다. 베이징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휴대폰을 북한에 가지고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통보받았다. 때문에 비행장 세관을 통과할 때 여행객들은 세관원에게 고스란히 핸드폰을 바쳤다. 사진 기자재도 종류에 따라 불허된 것은 휴대하지 못했다.

▲ 최 가이드(왼쪽)와 이 가이드(오른쪽). 최가이드는 정보요원으로 보였다.

북한은 외국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불허하는 국가로 유명하다. 우리는 북한측이 지정한 여행회사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비행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관광버스에는 벌써 우리를 안내할 두 명의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준(李俊)이라고 부르는 30세 정도의 젊은이로, 북한의 제3국제여행사에 근무했다. 그는 북한에서 4년간 중국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보기에는 아주 무던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24명인데, 벨기에 사람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중국사람이다.

이 가이드는 차에 올라 우리의 요청에 따라 ‘꽃 파는 처녀’를 중국어로 불렀고, 북한 혁명가요를 불렀다. 아주 목소리가 좋았다. 이 가이드는 차에 탄 사람들 중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다른 한 ‘최 가이드’라는 사람을 소개했다. 사실 우리는 차에 오르기 전부터 차의 꽁무니에 앉아 있는 ‘최 가이드’에 대해 궁금해 했다. 북한을 찾는 관광단마다 이렇게 말 수가 적은 ‘가이드’들이 한 사람씩 섞여 있는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행을 따라 다녔다.

▲ 지방에서 평양에 올라온 사람들

가는 동안 내내 심리적으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고층 아파트와 비교적 독특한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겉모습은 모두 회백색이고, 아파트의 외벽은 질박한 원색이었다. 아름다운 장식이 없었다.
대형 선전화와 구호판들, 정치적 선전성이 강한 선전화들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기념비들이 즐비하다. 이런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전에 문화대혁명 시기에 겪은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마치 세월이 거꾸로 가는 듯했다.

▲ 호텔 주변에서 본 평양 주민들

주민들의 옷은 색깔이 소박하고, 민속의상을 한 부녀들도 보인다. 가슴에는 모두 예외 없이 김일성 초상휘장을 달고 있다.

▲ 벨기에에서 온 관광객. 최 가이드는 서방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특별히 신경을 쓴다. 이 사나이는 최가이드를 자주 괴롭혔다.

‘최가이드’는 항상 날카로운 눈초리로 인원 수를 체크했다. 그는 중국어를 잘했다. 어떤 때는 우리의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뭔가 조사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에게 담배를 권하고, 한담도 나누었다. 그러다가도 그에게 군대에 대해 물어보면, 얼굴이 벌개지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래도 그는 ‘규정’을 잘 지키는 우리는 별로 감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벨기에에서 온 친구는 그를 시시각각 골치 아프게 했다.

벨기에 친구는 항상 가이드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자기가 호기심 나는 곳을 제멋대로 가보았다. 이 가이드는 우리에게 “경치는 찍을 수 있지만, 허락하지 않는 곳은 찍지 마세요”라고 가르친다. 좋은 곳은 찍게 해주고, 나쁜 곳은 못 찍게 했다. 이 사진들은 그의 허락을 받아 찍은 것이다. 최 가이드는 나쁜 곳을 지날 때면 빨리 차에 오르라고 독촉하곤 했다.

▲ 여성 교통지휘대원

차가 한 십자로를 지날 때 갑자기 예쁜 여성 교통안전원의 씩씩하고 늠름한 모습이 나타났다. 가이드는 평양의 주요 교통 길마다 지휘대가 서서 교통정리를 한다고 말했다. 교통경찰직은 아주 좋은 직업이라고 한다. 안정적인 직업이고, 수입이 높다고 한다. 여 교통경찰은 키가 커야 하고, 예쁘고 미혼이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 호텔앞에 주차된 고위급들의 승용차,

버스는 우리를 싣고 ‘청춘 호텔’로 갔다. 30층짜리 건물이었지만, 우리는 아주 실망했다. 중국에 있을 때 북한을 방문했던 한 친구가 “평양에 온 외국인들은 모두 고려호텔과 양각도 호텔, 묘향산 호텔에 안배된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이 3개 호텔의 시설이 중국의 3성급이나, 4성급 호텔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호텔은 보기에도 차이가 아주 많았다. 호텔 앞 주차장에 두 대의 호화 승용차가 있었다. 바로 옆에 한 대의 베이징 지프차도 있었다.

▲ 광복거리의 고속도 인터체인지(윤환선 도로)

호텔방은 호화스럽지 않았지만, 에어컨이 있고, 컬러 TV, 냉장고, 샤워실 등이 있었다. 가이드는 평양에서 1급 호텔에 해당된다고 한다. TV채널은 하나밖에 없었다.

평양은 주요거리를 내놓고, 거의 모든 가로등은 죽어 있었다. 호텔 밖으로는 혼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묵은 29층은 창문으로 멀리 평양의 고층건물과 거리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평양의 광복거리 전경이다.

▲ 평양-개성 고속도로

판문점을 구경하기 위해 평양- 개성 고속도로를 탔다. 우리와 다른 것은 차선이 없고 도로에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이다.

▲ 판문점에 대기하고 있는 베이징 지프차.

판문점 북한군 초소앞에 ‘베이징’ 짚차가 대기하고 있다. 북한에서 ‘베이징’차를 군 지휘관들에게 공급했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판문점을 지키는 군인들이다. 한국전쟁때 희생된 중국군은 모두 38만 명이고, 평양에 있는 ‘우의탑’에는 모택동의 아들 모안영(毛岸英)을 포함하여 134명의 지원군 열사들이 묻혀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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