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 수십만톤 식량지원 왜 거부하나?

북한이 최근 미국의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거부한 데 이어 5개 국제 구호단체에 대해 이달 말까지 철수할 것을 통보하고 나서 그 배경을 둘러싸고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미 국부부는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이 아무런 이유 없이 미국의 추가적인 식량지원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17일자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의 5개 구호단체에 대해서도 이달 중 북한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남북 대결국면 조성과 ‘대포동 2호’ 발사 움직임으로 국제사회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북한이 돌연 이 같은 행보를 보여 해석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분배 투명성’ 강화 요구에 대한 반발 가능성이 크다.

북한과 미국은 그동안 한국어 구사요원 증원 등 미국의 모니터링 강화 조건을 놓고 협상을 벌여왔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해 세계식량계획(WFP)를 통한 미국의 식량지원은 지난해 9월 이후 중단된 상태다.

부시 전 행정부는 지난해 WFP를 통해 40만t, 머시코 등 5개 구호단체를 통해 10만t을 분배토록 했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이 가운데 현재까지 북한에 16만9천t의 식량이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동안 WFP에 대해선 모니터링 요원 59명중 3명, 5개 구호단체에 대해선 모니터링 요원 16명중 6명을 한국어 구사요원으로 허용해왔으나, 미국이 WFP 한국어 구사요원을 12명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 미국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협상에서 모니터링 요구가 더 강화되는 것을 염려해 ‘어차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심정으로 ‘선수’를 친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데일리엔케이’와 가진 통화에서 “미국이 분배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도 내부적으로 부담이고, 또 지금 당장은 대량 아사자가 나오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긴급하지 않다고 판단해 ‘버티기’로 나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도 “미국의 모니터링 강화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거부 표시”라면서 “특히 전년에 비해 식량사정이 좀 더 나아진 측면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31만t, 부족량은 117만t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수해가 심했던 2007년(401만t)을 제외하면 평년 수준이다. 때문에 북-중무역이나 대외 원조 등을 감안한다면 심각한 식량 악화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또 ‘대화’가 전제 조건이긴 하지만 언제라도 수십만 톤의 식량을 지원할 수 있는 ‘남한 정부’가 있다는 것도 이 같은 강수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이지만 북한이 대화만 수용하면 인도적 지원은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북한 출신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과거에 비해 식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면서 “다만 구조적 식량난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6~7월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즉 6~7월까지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간이 있는(?) 북한이 ‘강수’를 둘 수 있었다는 의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의 대화 및 협상을 앞두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도도 내포된 것으로 관측된다.

오바마 새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대포동 2호’ 미사일을 발사하려 하는 것이나 ‘키 리졸브’ 한미연합훈련을 문제 삼아 ‘군통신선’을 차단하고,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타진을 거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한미 ‘키 리졸브’ 연합 연습을 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를 만만히 보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임연구위원도 “오바마 행정부가 ‘대포동 2호’에 대해 안보리 제재를 언급하고, 인권 문제도 지적하는 것 등이 북한으로서는 거북스러웠을 것”이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이 식량 지원 거부의 빌미가 됐을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한편, 만성적인 식량 부족을 겪고있는 북한 입장에서 미국의 분배 투명성 강화 요구를 이유로 수십만톤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 것은 주민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정치적 도박을 벌인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