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체계 놓고 美-北 치열한 신경전

미국과 북한이 북핵 검증체계 구축을 두고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에 불만을 토로하고 나서 이후 추이가 주목된다.

북한은 미국의 대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을 ‘약속위반’이라고 비난했고 미국은 곧바로 ‘핵 검증이 우선’이라고 반박해 이후 검증체계 구축을 두고 미북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고되고 있다.

18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을 파탄시키려는 도발 행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의 대테러지원국 해제 지연과 관련, “미국이 공약한 이행기일이 지났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것은 비핵화 실현에서 기본인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앙통신은 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과 태국을 방문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한 것을 두고 “6자회담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나아가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한 10·3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고의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테러지원국 해제 1차 시점인 지난 11일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난하고 나선 셈이다. 북한은 그동안 뉴욕채널이나 베이징채널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 특별히 미국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북한이 먼저 엄격한 핵검증 체계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의 핵검증 계획서 제출이 대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임을 재차 강조했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행동 대 행동을 필요로 한다”며 “우리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 현재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핵검증 패키지”라고 밝혔다.

우드 부대변인은 “북한은 미국 등이 참여하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우리는 모두 그러한 검증 패키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비판에 대해 “우리는 언론의 자유를 지지한다”며 “북한이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이든 그것은 북한의 자유지만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관망세를 유지하던 북한이 대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핵 검증체계 구축을 둘러싼 미북간 교착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협상과 신경전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지만 핵 검증을 둘러싼 북미간 교착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검증체계 구축을 위한 ‘몸값’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북한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구 가입을 위한 미국의 지원을 요구하는 등 검증체계 구축의 대가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 검증’을 주장하며 철저한 검증체계 구축이 대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임을 강조하고 있고, 북한의 IMF·ADB 가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미북간 이견차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달 내 북핵 검증체계 구축을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와 미국의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경우에 따라 북핵 6자회담도 장기 공전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한미 양국은 미국 대선 일정이 본격화되기 전에 검증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북한이 검증 이행계획서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즉시 비핵화실무그룹회의를 개최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