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아침이슬’ 北서 왜 금지곡 됐나?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오운 아침이슬 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김민기의 ‘아침이슬’ 中)

7,80년대 남한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불려진 김민기 작곡, 양희은 노래 ‘아침이슬’은 북한에서 1998년 공식적으로 ‘금지곡’이 됐다. ‘아침이슬’이 북한에서 널리 불려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한국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아침이슬’은 북에서 많이 불려졌다.

그런데 ‘아침이슬’이 북한에서 불려지게 된 계기는 아주 엉뚱하다.

1994년~98년은 식량난으로 주민들 300만 명이 굶어서 떼죽음을 당하던 시기였다. 구공산권의 몰락과 사회주의 집단영농의 폐해,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오래된 실정(失政), 핵 개발 집착 등으로 북한의 식량난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아침이슬’이 북에서 처음 불려진 것은 정확히 1996년이다. 당시 북한 선전당국은 식량난으로 대량아사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정권의 잘못이 아니라고 선전하기 위해 ‘안팎의 계급적 원쑤’들과 ‘미 제국주의를 비롯한 반동들의 反공화국 책동’ 때문이라며 밤낮 ‘교양 사업’을 전개했다.

공공기관, 학교, 공장, 기업소는 물론이고 집단농장에도 ‘계급교양관’을 짓고 “지금 남한 인민들은 김정일 동지를 흠모하고 북한 주체의 통일을 위해 과감히 싸우고 있다”며 녹화테이프를 틀어댔다.

바로 이 테이프에 북한 가수 이기복이 부르는 ‘아침이슬’이 등장하고, 화면에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대학생들의 데모 장면이 등장한다. 북한 선전당국은 이 데모 장면을 남한내 반미(反美)운동과 연결하면서 “남한 인민이 김정일 동지를 흠모하면서 열렬히 투쟁하고 있는 것”이라며 주민들을 ‘교양’했다. 한마디로 ‘아침이슬’이 북한 선전당국에 완전히 악용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침이슬’은 북한 당국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역효과를 불러왔다.

주민들은 여러 술자리에서, 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공연히 ‘아침이슬’을 불렀다. ‘아침이슬’을 부르면 부를수록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그 노래 속에 사회에 대한 저항의식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고, 그럴수록 사람들은 ‘아침이슬’을 더 많이 불렀다. ‘아침이슬’은 점차 북한 전역으로 퍼졌다.

이러한 사태를 알아챈 북한당국은 급기야 1998년부터 각종 강연회와 인민반 회의를 통해 ‘아침이슬’을 더이상 부르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주민들 사이에 유포된 테이프도 모두 회수했다. ‘아침이슬’을 부르다 걸리면 ‘정치 사건’으로 규정되어 노동단련대 입소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내부적으로는 ‘아침이슬’을 부르도록 못하게 하면서, 2000년 이후부터 남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해외 북한 식당과 금강산 관광, 개성관광 안내원들에게는 이 노래를 부르도록 권장했다. 말하자면 “우리민족끼리 힘을 모아 미제와 싸우자”는 의도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도 북한주민들은 몰래 ‘아침이슬’을 부른다고 한다.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도 술 먹고 ‘아침이슬’을 흥얼거리다 보안서(경찰서) 안전원에 걸리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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