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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2.0

“두려움 너머 ‘나’를 이길 때 진정한 南 정착 시작돼”

英대사관 초청 정착스토리 발표 탈북청소년 “두만강 건널 때 역경 생각하며 용기 얻어”
설송아 기자  |  2017-12-07 10:38



▲지난달 27일 주한 영국대사관 초청으로 영국 대사관에서 북한 실상과 한국 정착 스토리를 영어로 발표하고 있는 북한 출신 최정(가명)학생. /사진=설송아 데일리NK 기자

“1등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편견이라는 두려움 너머 나를 이길 때 진정한 정착이 시작되는 것이죠.”

최근 영국대사관에서 북한 출신 최정(가명) 학생이 영어로 발표한 한국 정착 스토리의 한 대목이다. 그는 지난 2015년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나와 한국 사회에 나온 첫날부터 ‘나’라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발표해 감동을 줬다. 

서울시 대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최정 학생은 정착 초창기부터 남북교육의 지대한 차이를 절감했다. 교육 방법뿐만 아니라 수학 논리 장벽에 부딪혀 수차례 좌절하기도 했다. 또한 탈북을 고백했을 때의 혹시 모를 ‘왕따’도 우려됐다. 스스로를 가두기도 했던 것.

하지만 오히려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역경이 용기를 북돋게 했다.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면서 실력으로 모든 편견을 이기고자 마음먹었다. 그런 결과 현재 그는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서 남한의 영재들과 경쟁하며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데일리NK는 최정 학생을 만나 영국대사관에서 발표한 한국 정착 스토리 내용을 기초로 그의 삶에 대해 들여다봤다. 

- 왜 탈북하게 됐나.

“4년 전 나는 고아였다. 10살 때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셨고, 13살 되던 해 아버님마저 돌아가셨다. 아버님이 2월 15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다음 날이 김정일 생일이라며 (북한 당국은)장례식을 그날 하도록 조치해 밤중에 언 땅을 파고 시신을 묻어야 했다. 그때 처음으로 북한이라는 사회가 무섭게 느껴졌다. 공부를 포기해야 했고 친척집에서 눈칫밥으로 온갖 일을 해야 했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외롭고 슬프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어린 나이였지만 악몽이었다. 그래서 탈북을 결심했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열차를 타고, 도보로 열흘 동안 산을 넘으면서 국경도시 (양강도) 혜산에 도착했다. 고무튜브를 타고 무사히 강을 건너 탈북에 성공했을 때 ‘살았구나’ 생각보다 ‘한국에 갈 수 있구나’라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한국에 대한 첫 인상은.

“하나원이 생각난다. 지속적으로 ‘원래 북한에서 공부를 잘했나’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북한에서 3년 동안 손에 펜도 잡아보지 못했다. 3년이라는 한국 정착 기간 교육기초를 쌓고 공부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원 교육때문이었다. 큰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하고 싶었던 나에게 하나원 선생님들은 수업시간 외에도 수학, 영어를 비롯한 기초교육을 개별지도로 밤 10시까지 가르쳐주셨다. 북한에서의 트라우마에 기를 펴지 못하던 마음이 녹아내기 시작했다. 하나원에서의 성장기간은 자존감이 형성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학교생활 시작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하나원에 나온 지 이틀 만에 서울시 전일중학교에 편입하게 됐다. 학교 선생님들은 탈북학생이 처음이라며 반가워하면서도 걱정하셨다. 편입이었기 때문에 자기소개가 필수였는데 탈북민이라면 학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왔다고 할까 생각도 했지만, 솔직한 게 정답이라고 판단했다.

“난 북한에서 왔어, 학교도 못 다녀서 공부도 못할 수 있는데 잘 부탁해, 그리고 나도 잘할게” 학우들과의 첫 약속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는데 정말 힘들었다. 수학용어도 다르고, 시험출제 방법도 생소했다. 외래어를 해석하다보면 수업이 끝나곤 했다. 역사, 사회 과목은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공부가 노가다(막일)보다 힘들다는 말이 맞다 싶었다. 일주일 정도 공부를 포기했다. 그러나 목숨 걸고 두만강을 건넜는데 이 좋은 세상에서 중심도 못 잡는 내가 싫었다. 새벽 2시 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다. 이틀에 한번씩 코피가 터졌고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죽기 살기로 공부에 몰두했다.”

-한국 학생들과 지내다 생긴 에피소드는 없나.

“기말 시험 끝나고 학급 친구들과 ‘연평해전’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의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 해상전투과정에 우리 병사들이 희생하게 된다. 영화 관람 이후 먼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친구들은 미안해하지 말라며 ‘탈북학생을 이질적으로 봤었는데 함께 공부하며 생활하니 정말 좋다’고 말해줬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대 입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하는 사회이다. 또 열심히 공부하면 남북하나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탈북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영어교육프로그램도 잘되어 있다. 통일부, 남북하나재단, 영국대사관 등이 역량 있는 탈북청년들을 발굴하여 국내 영어교육 및 영국 현지연수도 지원한다.

모든 것이 감사한 사회이다. 감사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1등보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편견이라는 두려움 너머 나를 이길 때 진정한 정착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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